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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발 이펙터 공습 #1

Aliexpress invasion

by 현진형

23년 11월 광군제. 그때부터다. 나의 지독한 알리 사랑이 시작된 것은.


광군제 얘기만 들었지 딱히 뭘 사고 싶다는 물욕자체가 별로 없는 인간이라 관심이 없었다. 이거 저거 엄청 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주위에 알리 쓰는 인간들도 없어서 나에게 11월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름 글로벌 영업마케팅하는 인간인데 중국에서 가장 성수기라고 하는 광군제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으로 알리를 깔았다. 그리고 (지름의) 신세계가 열렸다.


조잡한 물건들은 별로 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요새 보기 힘든 천 원대의 가격은 나도 모르게 몇 개씩 장바구니에 주워 담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렇게 알리산 짝퉁의 쇼핑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광군제 핫딜로 올라온 제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일렉기타용 멀티이펙터. 매트리박스라는 중국 업체에서 만든 제품인데 국내 정발가 15만원, 프로모션가 12만원, 중고가 10만원 수준의 모델을 9만원에 팔고 있었다. 광군제 쿠폰에 카드 할인까지 먹이면 7만원대. 그야말로 덜덜덜. 제대로 된 요즘 멀티 한 번 써보고 싶은 생각에 바로 장바구니로 직행. 네이버와 유튜브에 뿌려진 엄청난 유료광고들과 인플루언서들의 과도한 칭찬도 신뢰감 상승에 한몫했다. (일단 사면 망하진 않겠구나.)


하지만 진짜 시작은 그다음부터였다. 요즘 플랫폼들의 알고리즘이란. 진정 두려워해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Guitar, Pedal, Effectors 등등 내가 써넣는 검색어를 따라서 나의 물욕을 솟구치게 하는 수많은 물건들이 나의 뇌를 파도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저렴했지만 기타를 주문하긴 리스크가 있어 보였다. (나중에 공돌이파파님 유튜브 보고 알게 됐지만 그건 리스크가 맞았다.) 그리고 알리에서 비싼 거 주문하는 건 아니라고 배웠다. (스스로 독학) 그런 나에게 딱 맞는 것들은 작고 단단하고 저렴한 이펙터 페달들이었다.


신품가는 접근 불가고 중고가도 수십만원에 달하는 부띠끄 페달들의 복각제품들이 10만원 언더에 나와있었다. 특히나 요즘 유행하는 듀얼 페달(페달 2개를 1개 박스 안에 넣는) 가격도 8만원대. 볼 거 뭐 있나. 일단 장바구니로 직행.


PSK 경남 디스토션으로 꾹꾹이에 입문해서 저렴한 보스 즁즁이를 거쳐 결혼 전 나만의 페달보드를 만들긴 했지만, 결혼 이후 한 번도 보드를 개편해 본 적 없던(그러니까 10년 넘게) 나에게 알리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결혼 전 만들었던 보드도 나름 신경 써서 만들긴 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냥 각각의 위치에서 유명한 애들만 사서 넣어둔 거였다. 톤에 대한 고민도 이펙터 간의 조합도 생각하지 않고 일단 검색과 추천이 많은 제품들을 무조건 샀다. 검증된 제품이니만큼 망하진 않았지만 과연 이게 좋은 소리인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복각 부띠끄 페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알리가 열어주었다. 핫핫!


장바구니는 채울 만큼 채웠고 이제 유튜브 검증을 통해서 어느 페달을 살 지 결정의 시간이 왔다. 유튜브에는 나보다 먼저 알리의 신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컨텐츠가 이미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최종후보를 고르는 시간은 흐르고 흘러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동영상을 보며 놀랍게 발전한 이펙터 시장과 기술력 그리고 톤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으로 보는 내내 너무 즐거웠고 기타에 대한 나의 열정도 오랜만에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짧게 한 편의 에피소드로 쓰려고 했는데 역시나 나의 약점인 주저리주저리가 이어지다 보니 한 번에 마무리가 어려워 여기서 끊는다. 반성하자.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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