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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케이 Jan 08. 2024

유학일기 #4:
미국 유학 정말 힘든가요?

나의 미국유학이 힘든 이유 3가지

미리 말하자면, 미국에서 유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큰 행운이고 감사한 기회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더더욱 불평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내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한국에서는 전혀 겪을일 없는 많은 불편과 억울함에 마주치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에게 유학은 큰 혜택이기에 고마운 가족과 주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괜찮은 척하지만 혼자 타지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치고, 충격을 받게 된다. 가장 마음이 복잡한 순간은 그러한 일들을 겪었다고 해도 주저 앉아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여유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은 아무래도 외국인이 겪는 불편함을 겪는 일이 잘 없을테니 내가 그런 일들로 인해 뒤쳐진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그냥 나만 낙오되는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그 모든 수모와 어려움들을 뒤로하고 앞에 주어진 일을 하기가 바쁘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베이스로 한 이야기들 이지만, 유학을 할 계획이 있는 독자에게 언젠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첫 번째,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


미국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다. 실제로 매일같이 햄버거, 치킨, 피자, 과자, 아이스크림, 탄산음료를 먹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런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미국에서 외식을 하면, 대부분의 식사가 아주 짜고 달다. 기본적인 간이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많이 놀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양도 엄청나게 많이 줘서 보통 한번 외식을 나가면 반정도 먹고 나머지 반은 집에 들고 와야 할 정도이다. 그런데 외식을 나가다 보면 처음에는 양이 많다고 느끼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 양이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 한 그릇을 다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살이 찌는 게 너무 당연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고, 장을 봐와서 혼자서 매 끼니를 건강하게 해 먹으면 된다. 그런데 하루에 15시간 정도 학교 공부에 매달려 사는 학생에게는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매일같이 요리를 해서 챙겨 먹으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일정의 변동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도 많다. 학교에서 사 먹을만한 음식을 찾기 어려울 땐 하루종일 굶고 집에 가서 쫄쫄 굶은 배를 달래야 할 때는 폭식을 하게 되기도 한다. 



두 번째, 나는 어쨌든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다.


학교 안에서 지내는 유학생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인종차별이 심하거나 외국인이라서 불편을 겪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마주했을때,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 나라에, 이 학교에, 이 문화에 절대로 일부가 될 수가 없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학업적인 면에서 하나도 문제가 없다가도 괜히 의기소침한 자세를 가지게 된다. 


학교에서 게시판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안내문을 올려서 나는 너무 기대가 큰 마음으로 담당자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에게서 온 답장은, '이 장학금 프로그램은 미국 시민권이 있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는 거야.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를 알아보렴'이었다. 미국 시민만 지원하라는 정보가 게시판에 쓰여있지는 않았고, 나는 몰랐으니까 이메일을 보낸 거기도 하지만, 답장을 받고 나서 내가 지원할 수도 없는 장학금에 부푼 기대를 가지고 지원했다는 것에 대해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순간이야말로 '아, 내가 외국인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가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친구도 만들고 공부도 잘 해내고 있지만, 결국 나는 여기에 완벽히 속할 수는 없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환경에서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아까 얘기했던 씁쓸한 마음은 미국사회에 완벽히 속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도 역시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것 같다. 한국에서 고둥학교까지 다녔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국제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한국스러운' 마인드는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었던 것 같다. 모국인 한국사회에서도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질 못하는데 외국에 와서 나름 정을 붙이며 지내고 있던 학교 안에서 마저 주기적으로 아까와 같은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때면 정말 이 드넓은 지구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



세 번째,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쌓아온 나의 방식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방금 전 한국에서 남들과 비슷한 학창시적을 보내지 못했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나의 공부방법은 국제학교에 가기도 전, 초등학교 때 이미 한국스럽게 형성이 되었던 것 같다. 개념을 정리하고, 문제를 열심히 풀면서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익히면서 학습을 하고, 그런 연습을 통해서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대비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나는 매 학기 반복해 오고 있었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아니, 아시아 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공부방법에 익숙할 것이다. 내가 이러한 공부방법에 정착한 이유는 간단하다. 여태껏 이 방법을 사용했을 때 실패확률이 가장 작았기 때문이다.


3학년 봄학기에 이산수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이 수업의 교수님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미국팀 코치고, 유튜브 채널과 비영리 단체를 국제적으로 운영하시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가지고 계시다. 앞전 이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이 이산수학은 이 교수님 강의를 듣는 게 좋다고 몇 번씩이나 강조해서 너무 기대되는 마음으로 수강을 하게 되었다. 


첫 2주 수업을 듣고 나서 건물을 부수는 철거용 쇠구슬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3년 내내 내가 옳다고 알고 있었던 공부법을 가지고 별일이 없었고 잘해왔는데, 이런 공부법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생각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수업은 생각의 도구를 많이 알려주는 아주 특이한 수업이었는데, 문제를 보고 이런저런 도구들을 대입하면서 머리를 창의적으로 굴리는 훈련을 하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답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생각의 타래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지, 필요한 도구들을 재 때 재 때 잘 쓴 건지를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의 힘으로만 해내는 게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답을 찾는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막힌 거지 생각을 통해서 극복할 수가 없었다. 문제의 본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이런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고민을 해보고,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점점 정답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까지 해내는 게 모범적인 문제풀이 과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앉아서 진득하게 이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생각을 할 인내심이 부족했다. 학교 생활은 바쁘고, 나는 얼른 답과 풀이과정을 파악해서 문제의 유형과 풀이 방법을 숙지하고 익히는 게 짧은 시간에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구나 생각을 깊이 하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으나, 너무 한 문제 한 문제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렇게 해서는 제시간에 시험준비나 과제를 해내기 어렵겠다 싶었다. 


너무 당황했다. 이러다가 망하겠다 싶은 마음이 든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내 방식대로 고집을 피우다가 첫 시험을 봤는데 너무 망쳤다. 내 방식의 문제점은 아주 새로운 상황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시나리오의 문제가 펼쳐지면 전혀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내가 아는 방법은 다 갈아엎고 가만히 문제를 보고 골똘히 고민을 하는 연습을 시간이 날 때마다 했다. 처음엔 너무 더뎠는데, 가면 갈수록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수업 때 배운 테크닉들을 언제 써야 하는지 그 타이밍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내가 열심히 외우고 연습하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컸는데, 이제는 이 자신감이 조금 다른 종류로 변형했다. 내가 아는 것을 믿는 것보다 내 뇌에 저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오직 생각과 논리로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해피엔딩이어서 너무 다행이지만, 내가 10년 이상 알아왔던 공부법이 생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던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여태까지 무엇을 한 건가 하는 회의감이 넘쳤다. 나는 결국 로봇처럼 외우고, 반복적으로 정보를 들이붓고, 그걸 제때제때 인출해 내는 기계와 같은 공부만 해왔던 것이다. 같은 수업에서 나보다 어린 1학년 학생들이 너무 풍부한 사고능력을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또 즐겁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더욱더 나 자신이 못나보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수학 부전공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건지 스스로 확신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 공부법이 상위 차원의 문제해결력을 요할 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도 시험결과로 마주해야 했다. 눈물을 머금고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부정하고 기본부터 다시 쌓아갈 때는 불안감이 너무 심해서 앞이 깜깜했던 것 같기도 하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태껏 너무 익숙하고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던 습관적인 방법들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를 당황시키고 내가 거기에 맞게 변화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들이 생긴다. 유학생이라면 나와 같은 이런 부딪힘을 똑같이 경험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이렇게 힘든 점이 많은데도 여전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생각보다 많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 유학 일기에서는 이런 생각들을 좀 나눌까 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댓글로 소통 해요!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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