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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케이 Oct 31. 2023

유학일기 #3:
최선을 다하면 큰일난다.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나

시험 기간이다.

사실 시험 기간이 된 지 무려 6주가 되었다.

그렇다. 6주 동안 시험이 계속해서 있었다.

내가 듣는 수업은 수학수업이 많아서 학기 중에 시험이 3개고,

심지어 학기말 시험도 있다.

성적 산출하는 기준을 살펴보면 시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0%나 된다 ㅎㅎ

(실성)


오늘 수학 시험이 2개나 있었는데,

내가 원했던 것만큼 잘 보지를 못해서

힘이 쫙 빠지는 날이다.

속상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데,

시험을 친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가 많고,

에너지를 그렇게 때려 부었는데 결과가 마음에 쏙 안 드니까

방전된 거다ㅎㅎㅎㅎ


되돌아보면, 시험과의 관계는 항상 어려웠던 것 같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고,

워낙 준비를 또 철저히 하는 편이다 보니,

다 아는 내용인데도 시험이 시작되면 글이 하나도 읽히지 않고,

머리가 백지가 된다.

생각이 느리니까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니까 마음이 급해지고,

마음이 급해지니까 실수가 많아지고,

실수를 고치느라 또 시간을 낭비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9월 말에 쳤던 시험들은 정말 잘 봤다)

오늘은 아침 8시 반 시험이어서 배도 고프고, 잠도 덜 깨서

아무래도 잘하기는 힘든 날이었다.


1년 전의 나였다면 울고불고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다 표현해 내야 직성이 풀렸고,

좌절감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하루를 정말 놓치게 되는 날들이 많았고,

주변 사람들도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까

마음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그 모든 시행착오 후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 너무 과도하게 힘을 줘서 접근하면,

쉽게 역효과가 난다는 것과,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오히려 잘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시험공부를 하다 보니, 

이만큼이나 노력을 했는데 시험을 못 보는 게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강박 때문에 아무것도 발휘를 할 수가 없었다.


이 강박이 왜 생겼나 고민해 보았는데,

나는 항상 이렇게 멀리까지 유학을 와서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심지어는 양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모두에게 항상 증명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취업을 하고서부터다.

 왜냐하면, 취업이 되었다는 것은

나를 뽑아 준 회사가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 

내가 일을 소화해 낼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증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눈에 띄게 확 줄었고,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증명에 대한

가치관과 강박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준 변화는 공부에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그 시간 동안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선 독서하는 시간, 가족과 통화하는 시간, 청소하는 시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동아리 활동하는 시간 등등을 스케줄에 추가를 해서 비교적 공부하는 시간이 적어 보이게 만들었다.

가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집중력이 아주 높아졌고, 

딱 필요한 정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하고 보니, 공부를 양적으로 많이 한다는 느낌보다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흡수한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예전에는 불안한 마음에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면,

지금은 공부에 훨씬 적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내용을 머릿속에 효율적으로, 유기적으로 저장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를 주고서 시험을 준비하고 보는 모든 과정이 많이 수월해졌지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항상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있지는 않다.

이번 시험 기간처럼 말이다.

이번엔 자신감도 있었고 나름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데,

시험날 컨디션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

피곤에 절고, 배고픈 상황에서 시험을 보려니

준비가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고

머리 회전이 둔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놀랐던 점은,

내 마음같이 시험이 흘러가진 않았지만

예전처럼 감정적으로 무너지거나, 하루를 망치지는 않았다.

물론 시험 직후에는 기분이 끔찍했지만,

5분 정도 지나서는 마음을 진정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에겐 이런 모습이 전혀 없었는데,

이젠 스스로의 감정과 마음을 여유롭고 유연한 방향으로

알아주고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생활은 참 여러 방면으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같다.

전공 공부를 하면서 전문성을 기르고,

홀로서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기르고,

수많은 자아성찰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생활이 너무 힘겨웠지만

이 시기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에 너무나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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