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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16. 2024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옳은 거야

휴지를 걸 때 제대로 걸어야 합니다.

내가 한참 의학드라마에 빠져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픈 아이를 24시간 돌보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병들어 있을 때였다.

어느 날은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미친 듯이 책을 읽기도 했고, 글자가 꼴도 보기 싫을 때는(세종대왕님, 죄송!) 넷플릭스를 켜고 볼 만한 게 없나 뒤적거리다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 발견한 게 바로 '굿닥터'였다.

2013년 시즈 1부터 시작해 작년에 시즌6, 올해 시즌7이 배포될 예정이라고 하니, 넷플릭스 시리즈 치고, 아니 의학드라마 치고 꽤 인기도 있고 롱런한 케이스다.

사실 굿닥터는 한국드라마를 원작으로 (정작 원작 드라마는 못 봄) 자폐증과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천재 의사 숀의 성장기 드라마이다.

물론 병원이라는 특성상 수많은 의사들 사이의 갈등이 매 화마다 등장하고, 다양한 사례의 환자들의 응급한 의료상황이 매 화마다 발생하는데(왜 그렇게 크고 힘든 질병들과 수술들은 주인공이 일하는 병원에서, 주인공이 일할 때만 나타나는지 늘 의문이지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부분의 의학용어들을 알아들을 수 있기도 했고, 우리 아이와 비슷한 질환을 가진 케이스가 나오기도 해서 꽤나 몰입할 수 있었다. 작년에 나온 시즌6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의 상황을 반영한 첫 의학드라마인지라 더 집중하게 되고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사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숀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말이 길어졌는데 앞서 말한 대로 숀은 자폐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비범하지만 비정상적인 행동양상을 보이고, 집착하는 대상이 있으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얼굴이 붉어지도록 같은 말을 반복하고 어린아이처럼 화를 낸다.

시즌1에서 만난 '리아'와 우여곡절 끝에 함께 살게 되면서(셰어 하우스, 룸메이트) 자유분방한 캐릭터 리아와 종종 다투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거는 방향을 놓고 옥신각신 하는 장면이다. 숀의 사전에 대충이란 없고, 늘 정해진 위치에 물건이 놓여 있어야 했는데, 화장실의  휴지 역시 정확한 방향으로 걸려있어야 한다. 그게 숀에게는 규칙이다. 그런데 리아는 휴지를 바르게 거는 방법 따위는 관심도 없다.

어느 날 아침 숀이 리아에게 휴지를 거는 올바른 방향을 설명하자, 리아는 대답한다.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 줄 몰랐네'


별일 아닌 듯 생글생글 웃어넘기지만, 숀은 정색을 하고 말한다.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옳습니다
이미지캡처. 굿닥터 시즌2. 넷플릭스

사실, 숀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 역시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를 아무렇게나 걸어두었다. 그런데 휴지의 첫 장이 덮개가 있는 뒤쪽으로 가 있을 때, 서너 칸만 떼려고 했는데 두루마리가 우르르르 풀려 바닥에 닿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은 샤워하다가 물이 튀어 휴지가 젖기도 하고, 젖은 벽에 달라붙기도 했다.

첫 장을 덮개 앞쪽으로 두면?


덮개가 두루마리가 우르르 풀리지 않게 눌러 고정시켜주고(필요한 만큼 깔끔하게 뗄 수 있다), 물이 튀어도 휴지가 젖지 않는다.


유레카!!!! 는 무슨... 또 나만 몰랐지. 나만 몰랐어.

이미지출처. https://janet.co.kr/bbs/board.php?bo_table=life_tip&wr_id=542


생각해 보면,  모든 만물이 '그렇게 창조된'이유가 있듯 별거 아닌듯해 보이는 것들도 그게 거기에 그렇게 있는 이유가, 그렇게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었다.

숀의 말처럼, 두루마리 휴지의 첫 장이 바깥쪽으로 가게 두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도록 만들어졌기에 그렇게 사용해야 편리하고 위생적이다.

그걸 모르고 에라 그냥 아무렇게나 놓고 쓴 과거의 나를 크게 반성한다.

렇게라도 알았으니, 이제라도 옳게 사용하는 게 맞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엇! 혹시 나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어서 화장실로 달려가 올바른 방향으로 휴지를 걸어두시기를. 살포시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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