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의 맛] 11. 나의 바디 프로필 도전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을 동경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소년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에서 강조하듯이, 자신의 인생에서 '우정, 노력, 승리', 이 세 가지를 거머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부러워했습니다.
소년만화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개중에서도 손에 꼽는 작품이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특히나 인상 깊게 기억하는 장면을 하나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토가시 요시히로라는 만화가가 그린 작품 <헌터 X 헌터> 25권에 수록된 에피소드입니다.
정작 작품의 주인공 '곤'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게 좀 특이한데요. 작중에 등장하는 가상의 조직인 '헌터협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 '네테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큰 틀의 내용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인 네테로, 그가 아직 젊었을 때 속세와 인연은 끊고 산에 틀어박힙니다.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준 무(武)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루에 1만 번씩 정권 지르기를 한다는,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일화가 소개됩니다.
네테로는 3년에 걸친 수련 끝에,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초인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그 과정을 그려낸 만화의 연출도 좋았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극기라는 스토리텔링이 몹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음 한 편에 나도 이런 종류의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런 감정을 품게 되었죠.
그럼에도 만화가 아닌 현실의 인간, 아니, 저라는 사람은 너무나 나약했습니다. 당초 만화에 등장하는 일화와 자신을 비교하는 일부터 어찌 보면 망상에 가까운 노릇이고요. 그래서 네테로처럼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크로스핏을 시작했습니다. <크로스핏의 맛>이라는 매거진에 글을 실어오면서, 가장 많이 써왔던 내용 중 하나가, 어째서 크로스핏을 시작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글을 보시게 된 분이라면 이전에 썼던 글을 읽지 않으셨을 테고, 제가 왜 크로스핏에 대해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는지 모르실 테니 최소한의 설명은 하는 게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번에도 도저히 그 이야기를 빼놓아서는 안 될 것 같아, 짧게라도 정리하려 합니다. 서론은 이렇게 길어만 지는지.
제가 크로스핏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네테로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사소한 바람으로 첫발을 디뎠습니다. 일단 일상생활을 하며 골골대는 일이라도 없으면 바랄 게 없겠더군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수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작년 9월에 또다시 크로스핏에 도전했습니다. 이제는 1년이 넘게 이어와, 습관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했지요. 체력뿐만이 아니라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복근이 생긴 거죠. 아니, 나타났다고 해야 정확하겠군요.
어디까지나 운동을 계속한다는 게 주된 목표였기 때문에, 몸이 좋아지는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욕심이라는 게 있다 보니 '아무래도 좋았다'는 말로 퉁치기는 민망하군요. 아무래도 신체의 변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니까요.
이쯤 되면 한 번쯤 바디 프로필을 찍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올해 중순부터 했습니다. 막연한 계획 같은 것이어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2020년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즈음, 군대 동기로부터 11월 즈음해서 함께 바디 프로필을 찍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번 기회까지 놓치면 올해, 아니 앞으로도 제대로 찍을 일이 없을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승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15일, 인생 첫 바디 프로필을 찍었습니다. 보정 하나 없이 찍은 사진이지만, 몹시 만족스러웠습니다.
20대의 마지막에, 이렇게 무언가 남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동안 운동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너머에 복근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아마도 바디 프로필만을 목적으로 운동을 해야 했다면 즐겁지 않았을 겁니다. 바디 프로필도 찍지 못했을 거구요. 어디까지나 크로스핏을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덕분에 몸도 좋아져서 겸사겸사 바디프로필까지 찍을 수 있었던 게 아닌지.
그래서 나, 바디 프로필 준비했어요! 이렇게 준비하시면 돼요!라고 말하기에는 그럴 깜냥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반 정도는 자랑, 반 정도는 크로스핏을 해보는 게 어떻냐는 홍보성 글에 가깝습니다 (...)
요 몇 년 사이에 직장인들이 바디 프로필을 위해서 몸을 만드는 게 나름대로 핫(?)한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것도 같습니다.
비용이 만만치는 않지만, 인생에서 한 번 정도 도전해봐도 좋은 일이라는 데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한 번에서 그칠 게 아니라, 평생이 가는 습관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는 김에 바디 프로필도 찍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제대로 준비하려면 바디 프로필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는 그렇네요.
꾸준한 운동 끝에 뭔가 곁다리로 한 가지 더 얻었다는 느낌이 더 좋을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해봅니다. 뭔가 더 득을 본 것 같고 운동을 이어나가는 데에 소소한 즐거움 뭐 그런 걸로 말이죠.
물론 바디 프로필 자체로도 쉽지 않은 일이니, 도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평생 가져갈 습관을 얻는다면 최고라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복근이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복근이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라구요? 이번 기회에 그 당연한 일에 한 번 도전해보시죠 :)
이래저래 두서 없는 글이 되어버리고 말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꼭 한 번은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글이라서 미루고만 있느니 이렇게라도 끝을 내려고 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선뜻 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멋진 사진을 찍어준 군대 동기 C와 같이 바디 프로필을 찍자고 제안해준 군대동기 J에게도 이 글을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