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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an 16. 2019

선릉역 스시 산원, 두 번째 방문

맛의 세계를 알아보기 (2)

지난번에 스시 산원을 다녀왔던 게 1월 7일이었습니다. 꼭 일본주와 함께 초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글을 남겼던 게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적어도 반년, 길면 일 년? 아니, 솔직하게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기회라는 게 정말 생각보다 빨리 오더군요.


정말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에도 친구에게 얻어먹었습니다. 지난 리뷰 ( 1월 7일에 작성된 리뷰, 이하 링크를 https://brunch.co.kr/@shinezeron/1 를 참고해 주십시오.) 를 작성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했던 친구가 또 사준 거죠. 불과 일주일 만에!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제가 정말 친구를 잘 뒀다고 이야기하실 것 같지만, 얻어먹는 입장에서 마음이 아주 편치는 않다는 것도 알아주십사 합니다. 물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음식을 즐기는 게 가장 좋지만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은 마음 한 편으로 고이 모셔두기만 하고, 즐기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갚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지난번에 이런저런 이야길 많이 했으니 이번엔 질질 끌지 않고, 본격적인 후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잊지 않고 촬영한 스시 산원의 입구.


두 번째 방문은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워낙에 짧기도 하지만, 한 번이라고 해도 와봤던 곳이다 보니 두 번째는 익숙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스물여덟 살이지만, 뭐든 한 번 해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니 '처음'이라는 걸 그렇게 강조하는 게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잘 정돈되어 있는 테이블과, 요리가 만들어질 개방식 카운터


저녁 6시에 예약을 했기에 근처에서 시간을 죽이다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자리도 손님을 맞을 준비로 만반이었습니다. 6시면 이른 저녁이고, 본격적으로 개시 하기 이전이라 카운터는 잠시 비어있었습니다. 틈을 노려 잽싸게 카운터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드디어 영접(?)에 성공한 쿠보타 만쥬.


오늘의 자리를 빛내줄 술, 쿠보타 만쥬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제야 후기를 쓰며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아주 유명한 일본주라고 하네요. 한 리뷰에 나와있는 데로, 은은한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적이었습니다. 평소에 일본주를 접할 기회가 없어 그 맛을 정확히 비교할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제가 일본주를 좀 더 자세히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형형색색의 잔.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습니다.


잔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알록달록해서 절로 시선이 갑니다. 아마 이 술잔도 특별히 주문제작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언젠가 또 일본주를 마실 기회가 되면, 그때는 물어봐야겠네요.


쿠보타 만주를 따라놓은 유리잔과  채워놓은 잔.


따르기 쉽도록 유리잔에 조금씩 따라주시더라고요. 잔에 따라 놓고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술로 채워진 잔 내부가 엄청나게 화려하네요.


가리비 관자와 연어알, 트러플이 올라간 차완무시(일본식 계란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 메뉴 구성이 달라지지 않았겠거니, 생각했는데 괜한 오산이었습니다. 시작이 일본식 계란찜, 차완무시라는 건 똑같았지만 그 위에 올라간 건 가리비 관자와 연어알이었습니다. 트러플은 이번에도 올라가 있네요. 이번엔 트러플의 향을 최대한 느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트러플이 비싼지 알 것 같더라고요. 냄새만으로도 식욕을 돋우는, 엄청나게 강한 향이 납니다. 1월 7일 날 왔을 때는 구운 장어 때문인지 트러플의 냄새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했었는데, 사실 그게 트러플 향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봅니다.


시작은 도다리

자연산 도다리입니다. 잡내나 흙내가 전혀 없어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쿠보타 만쥬가 술 자체의 향이나 풍미가 강하지 않아서 생선의 맛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점은 소금에, 한 점은 고추냉이만, 한 점은 간장에 찍어서 먹었습니다. 네 점이었다면 고추냉이에 간장까지 먹어봤을 텐데...


쥐치 간(좌), 쥐치 회(우)


쥐치의 간과 회, 항상 후기를 쓰면서 정보를 찾아본다고 글을 쓰는 동시에 생선에 대해서 찾아보는데 쥐치 간을 바다의 3대 간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바다의 푸아그라라고도 하네요. 푸아그라를 먹어봤으면 그 표현이 과장인지 아닌지 검증을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쥐치 회를 간에 찍어먹으라고 하시던데, 저는 쥐치 본연의 맛이 궁금해서 먼저 소금에 찍어먹었습니다.


함께 찍어 봤습니다.


도다리 회하고는 또 다른 식감이더군요. 간에 찍어먹었을 때 좋았습니다. 간은 엄청 크리미 해서, 간 자체만으로 술 한 병은 비울 수 있겠더군요. 눅진한 데다 감칠맛이 일품입니다.


방어 뱃살


겨울 생선의 대명사, 방어입니다. 뱃살 부위는 흔히 먹는 회하곤 또 다른 맛입니다. 이 기름진 맛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습니다.


문어


간장에 절인 문어입니다. 처음 먹었을 때는 간장 맛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문어의 감칠맛과 단맛을 간장이라고 착각했다는 걸 마지막 한 점을 먹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더욱이 쫄깃한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질기진 않은 식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돼지비계 같은 비주얼을 자랑하는 것의 정체는 무입니다. 무는 씹을 것도 없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더군요.


복어 정소와 연어알 덮밥.


소동파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식은 복어를 두고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했다던데 그 말의 진위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심지어 복어의 정소라니. 아마 복어에게 인격이 있다면, 자신의 정소를 먹는 인간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싶었습니다만. 연어알과 어우러진 복어 정소의 맛은 한 마디로는 형언하기 힘들지만, 아주 각별했습니다. 생식을 위한 부위에 이렇게나 맛이 응축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복어 정소만 먹었더라면 조금 느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짭짤한 연어알 덕분에 물리는 일 없이 마지막 한 입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초밥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맑은 국.


지난번 맑은 국에는 대구살이, 이번에는 노루 궁둥이 버섯과 모시조개가 들어있었습니다. 노루 궁둥이 버섯은 식용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을 해보게 됩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동시에 신기한 경험까지 할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행운이네요.


그 정체가 너무나 비범했던 옥돔


먹을 때는 몰랐는데 찾아보고 나니 그 정체가 매우 비범한 옥돔. 옥돔은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회로 먹기 어려우며 아주 비싼 생선이라는데 먹을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와, 옥돔이구나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었습니다. 심지어 메모에는 '흰 살 생선은 정말 맛이 연약하구나'라고 적어놓았으니...


디지털 제주시 문화대전에 따르면 제주에서는 옥돔만 '생선'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바닷고기라 할 만큼, 옥돔을 제일로 친다고 하네요. 엄청나게 귀한 생선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새삼스레 감개가 무량합니다.


돔 중의 돔 참돔


참돔입니다. 지난번과 다르게 껍질은 없이 보드라운 살이 뽀얀 자태를 유감없이 뽐내네요. 저는 초밥을 먹을 때마다 어떤 아쉬움이 있습니다. 입안에 넣는 순간, 밥맛이 입안을 먼저 채우고 생선의 맛은 하나도 안 느껴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서서히 생선의 감칠맛이 퍼지다가 그 맛을 알아챌 즈음에는 이미 목으로 넘긴 뒤입니다. 한 점이 아니라 두 점을 연속으로 먹으면 알 수 있으려나요?


참치 중뱃살


참치 중뱃살입니다. 역시 참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입안에 넣자마자 참치가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다는 게 느껴집니다.


정말 소고기 같은 외관을 보여주는 참치 대뱃살


참치 대뱃살. 오늘은 유난히도 참치 대뱃살의 외관에 눈이 가더라고요. 분명 생선일 텐데, 머릿속에는 소고기가 절로 연상됩니다. 입안에 넣으면 정말 눈 녹듯이 사라지네요. 그 맛도 일품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참치 초밥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훈연한 갈치


훈연한 갈치입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훈연이 되어있는데, 그 향이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훈연된 초밥은 하나인 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분명 훈연은 맛을 돋워주는 정말 좋은 조리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맛이 너무나 분명하고 재료의 특징까지 지워버려서 한 점 정도가 적당하겠더군요. 갈치보다 훈연에 너무 집중해서 묘사했지만, 갈치 자체도 맛있습니다. 갈치 살이 이렇게 존재감이 확실한 부위라니.


볼 때마다 감격스러운 피조개


피조개입니다. 피조개를 볼 때마다 저는 머릿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만화 <미스터 초밥왕>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워낙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초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해 줬던 만화인지라 제가 초밥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지식도 <미스터 초밥왕>에서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나 피조개에 관한 내용은 해당 에피소드 자체도 엄청 재미있어서, 과연 내가 맛있는 피조개 초밥을 먹을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지금이야 맛있는 피조개 초밥을 먹는 숙원을 이루긴 했지만, 피조개를 실물로 접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어릴 때가 떠올라서 그 감동이 한동안 사라지질 않네요. 오늘 역시도 바다향과 함께 조개의 식감 그리고 감칠맛을 아주 즐겁게 느꼈습니다.


새끼 전어


새끼 전어입니다. 새끼 전어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다시 한번 만화 <미스터 초밥왕>이 떠오르더군요.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별명이 새끼 전어였거든요. 이름이 신고라, 싱코(새끼 전어)라 불렸는데 그 별명에 맞게 새끼 전어로 초밥을 만드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것도 초절임이냐고 여쭤보니 애초에 새끼 전어는 초절임으로만 먹는다고 하시더군요.


더욱이 전어는 작으면 작을수록 비싸고 1kg당 10만 원 가까이한다는데, 저는 전어가 그렇게 비싼 생선이라는 걸 처음 알았네요. 초절임의 산미가 적당해서 비릴 수 있는 전어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산미가 조금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샛돔 튀김


샛돔 튀김입니다. 생선의 가시를 일일이 발라내지 않고, 살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생선을 마다할까요? 거기다 튀기기까지 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술을 부르는 이 맛. 하나는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나머지는 간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훌륭하네요.


성게


성게입니다. 역시 성게. 입에 넣자마자 그 맛에 절로 행복해집니다. 이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네요.


황금팽이버섯이 들어간 된장국.


황금팽이버섯이 들어간 된장국(미소시루)입니다. 버섯의 정체가 황금팽이버섯이란, 이전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버섯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맑은 국에서 노루 궁둥이 버섯을 먹었을 때처럼 맛있는 걸 먹으면서 신기한 경험을 다 해본다 싶었지요.


칼집을 넣은 청어


청어입니다. 칼집이 들어가 있는 외관이 엄청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비리지도 않았고, 식감도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구운 꽁치와 성게


구운 꽁치와 성게입니다. 자칫 비릴 수도 있는 꽁치를 살짝 구운 후에 성게까지 더해서 전혀 비리지 않고 아주 맛들어지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 조합이 이렇게 훌륭할 줄이야.


김으로 한 번 감싼 고등어초밥


고등어 초밥입니다. 김으로 한 번 싸주셨는데 지난 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주시더군요. 김으로 한 번 겉을 싸서 건네주셨는데 김 덕분에 고등어의 비린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백다시마와 함께 나왔던 고등어 초밥도 좋았지만 이번 고등어 초밥이 더 좋았네요.


대미를 장식한 장어


마지막은 장어. 입안에 퍼지는 구운 장어의 맛은, 오늘도 훌륭한 식사를 헀다는 걸 실감케 해줍니다.


술이 약간 아쉬워 마신 에비스 생맥주


입가심으로 마지막에 시킨 에비스 생맥주. 마시고 생각이 들어 뒤늦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맥주와 함께 초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에 가볍게 한 잔 하는 게 훨씬 좋더군요.


전갱이가 들어간 메밀 소바.


마지막 식사인 메밀 소바입니다. 메밀을 못먹는 친구는 우동으로 바꿨는데, 우동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아마 면만 다르고 국물은 같은 것 같더군요.


계란말이(교꾸)


계란말이입니다. 만드는 데에만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데, 이렇게 한 입에 먹어버리면 만든 시간과 노력이 너무 무색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는 거겠지만요.


줄무늬 전갱이(시마지) 어포


술이 조금 남아서 내주신 줄무늬 전갱이(시마지) 어포입니다. 쥐포답게 쫀득쫀득한 식감, 응축된 맛이 술안주로 그만이었습니다. 맥주와 함께 맛나게 먹었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딸기와 모나카


이번엔 딸기도 찍었습니다. 딸기가 아주 맛나더군요.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모나카로 개운하게 입가심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이 왔던 또 다른 한 명의 친구가 초밥 요리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 물어보더군요. 그 질문과 답이 인상에 남아 글을 조금 더 이어나가겠습니다.


셰프 분께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인상이 깊었던 건, 어떤 초밥집에서 일했느냐가 초밥 요리사의 실력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시 산원처럼 오마카세가 기본인 초밥집과,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초밥집이나 회전초밥집 각각에서 요구하는 능력도 다르고, 배우는 것도 다르다고 하더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왜들 그렇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목표로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겠더라구요. 초밥집만 그런 게 아니라 현실부터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가 어떤 사람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정해버리지 않습니까. 지연, 학연, 혈연이라 하는데 그 모든 걸 관통하는 게 인맥이고,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다들 안간힘을 쓰죠.


요즘 유행이라는 드라마도 진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데, 이른바 SKY라 불리는 대학교들에 대한 욕망에는 아마 이런 현실이 있는 게 아닐까요. 성공을 위해선 좀 더 좋은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하여간, 이번에도 정말 즐거운 식사였습니다.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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