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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17. 2019

[하루-한편] 목욕 예찬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17일, 57번째 글


지난 주말, 친구와 함께 공중목욕탕을 다녀왔습니다. 거의 반년만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샤워를 하면 그만이니까 딱히 집을 나서서 목욕탕까지 가야 할 필요를 못 느끼니다 보니, 자연히 빈도가 뜸해지더군요. 오랜만이어서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옷 한 올 걸치지 않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라니. 그러면서도 그게 얼마나 편하게 느껴집니까. 또한 몸 전체를 담글 수 있는 데다가 온수와 냉수가 쉼 없이 콸콸 흘러나오는 탕은 또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간단히 샤워를 한 후, 탕에 입수하면 극락이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물론 현기증이 일어나서 오래 앉아있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곤 했습니다. 그때는 목욕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때를 밀어줄 때마다 귀찮고 번거로웠으니까요. 가만히 앉아 몸 구석구석까지 말끔하게 씻겨나갈 때까지 밀고 또 밀고. 그걸 해야 하는 어른들도 마냥 유쾌하진 않았겠지만, 그만큼 아이 입장에서도 더더욱 힘들지만요. 그래도 서로에게 고된 때밀이가 끝나면 냉수탕에 들어가기도 하고, 하면 안 되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수영을 한다거나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지요. 천장에 고여있는 물방울이 떨어지기만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그러고 개운한 상태에서 음료수를 먹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합니다.


커서는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을 가곤 했지요. 자주 가던 목욕탕이 정해져 있었는데, 동네 가까이 살다 보니 어쩌다 모일 일이 있으면 곧잘 '목욕하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지금은 서울에 올라와 있어서 갈 일이 없어졌지만, 종종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시내 근처, 허름한 시장 안에 오래된 빌딩 3층에 위치한 목욕탕, 어렴풋이 그 모습이 떠오를 것도 같습니다. 목욕을 끝내면 다 같이 근처에 아무 식당에 가서 허기를 채우고, 공원을 경유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죠. 저녁나절에 가곤 했어서 밤공기가 선선해서 참 기분 좋았는데.


대학에 들어오고는 그런 일이 없었군요. 친구들끼리 모여 밤을 새울 일이 있으면 찜질방에 가는 정도? 그럴 때는 목욕탕에 간다기보다는 어디서든 하룻밤을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간다는 정도에 가깝죠. 피곤하니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끝내고 사람이 넘쳐나는 찜질방에서 그나마 빈자리를 찾아내 몸을 구겨놓고 겨우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코를 고는 소리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밤잠을 설치고 있으면 어느새 다음날이지요. 일어났을 때 잔 것 같지도 않고 피로하기 그지없죠. 그래도 일어나긴 해야하니 한 번 더 씻고 찜질방을 나서면 그 몽롱함과 나른함이 어쩐지 뿌듯한 느낌도 있지요.


이번에 목욕탕을 다녀오니, 종종 혼자서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전세를 낸 것마냥 욕탕에 들어가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샤워로도 충분하겠지만 어쩐지 몸 전체를 푹 담그고 아무 걱정 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건 돈도 돈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뭔가 쫓기듯 살고 있는 느낌이 들 때면 그런 상황을 그려보기만 해도 조금 기분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여러분도 여유가 되신다면 이번 주말, 목욕탕은 어떠신지? 

에반게리온의 명대사중 하나죠. ( 출처 -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3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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