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살롱 2016 후기

by YeonSun

2016년 9월 30일부터 2016년 12월 20일까지, 13주 동안 진행된 '칼 세이건 살롱 2016' 취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꽤 된 이야기네요. 13주의 강의록을 정리하고, 언제나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도 입체적으로 공부했죠. 이 멋진 강의록을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었는데요.(판매는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닫는 글을 썼었어요. 우주와 지구, 생명의 비밀과 우리의 미래를 깊이 생각하게 했던 13주의 여행을 끝내면서 쓴 글이라 어느 때보다 마음이 많이 담겨있어요. 외롭거나 우울할 때 혼자 꺼내보곤 했는데요. 그러면 기운이 났습니다. 그 글을 여기에 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에요. 자기 글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자니 민망합니다. 그럼, 즐겁게 읽어주세요.



<칼 세이건 살롱 2016 후기>


1.


책은 아주 세밀하게 짜여진 것이오. 아주 작은 숨구멍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소. 자기 나름의 뚜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단 말이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여전히 짜임새가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엮인 것이오. 현미경을 통해서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오. 끊임없이 넘쳐 나는 이야기와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오.(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136쪽)


언제나 책을 좋아합니다. 잠깐 친하게 지내지 않는 순간에도.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이로운 진실. 인간과 삶과 불합리와 투쟁과 발견과 진보와 어둠, 그리고 빛. 그 모든 것이 그려내는 세상의 정체를 꼭꼭 채워둔 책,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맹금류를 경계하느라 바쁘게 주변을 살피는 미어캣처럼 서서 행여 놓쳐버린 이야기가 없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늘 책을 살폈습니다.

느리고 게을러 아직도 알지 못하는 책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항상 초조한 마음이 됩니다. 과학이, 우주가 저에겐 그런 존재였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많은 책들을 만났습니다. 먼저 사람들.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 자체로 감명 깊은 책이었습니다. 애니 점프 캐넌,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 세실리아 페인이 떠오릅니다. 남자들의 세계였던 20세기 초의 천문학에서 차별과 불합리에도 그저 묵묵히 서로와 연대하며 연구하고 마침내 엄청난 발견을 해낸 여성 과학자들 말입니다. 제도 혹은 지배관념이라는 틀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지나치게 크고, 짙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또한 지독하게 단단하기도 해서 그 그림자에 지워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 사실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서글퍼집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저는 이 이름들 앞에서 그것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이 이름들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겁니다.

기억할 이름에는 프라운호퍼도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유리 작업장에서 일하던 어린 프라운호퍼는 작업장이 무너지는 사고로 삶의 전환을 맞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조된 후 눈 밝은 선제후 막시밀리안 4세 요제프의 지원을 받아 공부를 시작한 것이 태양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프라운호퍼선’ 발견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마이클 패러데이. 그 역시 가난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성장했습니다. 우연히 험프리 데이비의 과학 강연을 듣게 된 패러데이는 그 강연을 꼼꼼하게 기록한 노트를 정성껏 제본해 책을 만듭니다. 그렇게 데이비의 조수로, 왕립연구소의 화학 조수로, 그리고 과학자로 지금껏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마치 인상 깊은 소설을 읽는 듯 머리가 어질한 이야기들입니다. 제게는 이들의 이야기가 우주의 비밀만큼이나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들을 알고 난 후에야 삶의 가능성, 미세하고 희미한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합니다. 6강 손승우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발견한 『10의 제곱수』라는 책은 정말이지 멋진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거리가 10배 달라지는데요. 시작은 10의 25승 미터입니다. 10억 광년의 거리, 그곳에서는 은하도 먼지처럼 보입니다. 몇 장을 넘겨 10의 21승 미터에 이르자 비로소 은하가 익숙한 나선형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10배 줌을 당기면, 폭발하는 별들이 보이고요. 10의 13승 미터에서 태양계가, 10의 8승 미터에 와서야 우리가 사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0의 0승 미터, 그러니까 1미터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크기이지요. 이제 시선은 깊은 곳을 향합니다. 이 책의 진짜 감동은 여기서부터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시각의 끄트머리’인 10의 -3승 미터는 ‘현미경의 세계’입니다. 책장을 넘겨 점차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놀랍게도 다시 우주를 꼭 닮은 광활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10의 -8승 미터에서 발견하게 되는 DNA의 풍성한 이중나선 구조가 마치 은하처럼 느껴지고, 10의 -11승 미터에 이르러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그야말로 완벽한 우주가 나타납니다. 이 놀라운 여행은 “다음 단계로 가면, 무엇을 보게 될 것이고, 무엇을 이해하게 될 것인가?”라고 묻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 대목에서 4강 김창규 작가님의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미지의 영역에 두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칼 세이건의 이 말도 함께요.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682쪽)


이 이야기들을 너무나 좋아하게 된 지금, 다시 조금 서두르는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합니다. 『에덴의 용』, 『여섯 번째 대멸종』, 『리비트의 별』... 목록은 계속 이어지겠지요.


2.

열대 바다에서 극지역 바다까지 유영하는 혹등고래와 안개를 먹고 사는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를 좋아합니다. 백 년을 넘게 산 엄마 거북이, 엄마 거북이의 얼굴 위에 있는 갓 태어난 새끼 거북이를 함께 찍은 사진을 좋아해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정어리 떼와 몸을 밀착한 채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허들링하는 황제펭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크기를, 시간을,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을 열망했습니다. 그 존재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일이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달콤한 낮잠처럼,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아들과 해변을 산책하며 한 말이 크게 울린 이유도 그것입니다.


“저 위를 보렴, 유령이 가득하지 않니? …… 멀리 있는 별들의 빛이 지구까지 오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래서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할 쯤에는 별은 이미 죽고 없단다. 결국 우리는 별의 유령을 보는 거지.”(「코스모스」, ‘밤하늘의 유령(A Sky Full of Ghosts)’ 부분)


저는 이 감정의 정체를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가 경이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주의 나이, 빛으로 알게 된 사실들, 뇌 과학의 가능성과 인류 문명의 미래를 상상하며 언제나 가슴이 설레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태도로 과학을 실천한 과학자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는 인류를 전보다 조금은 신뢰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회의주의자가 되자는, 당돌한 마음도 먹었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을 함께 따라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우연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돌아보면, 그 우연은 이미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하나의 단초인 것이지요.”

1강에서 홍승수 교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는 지금 같은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저와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우연과 필연을 생각합니다. 정중하지만 유쾌한 통화, 놀랍고 반가운 만남, 성실함, 열기와 환대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우연이 아니”라고 하신 홍승수 교수님의 말씀은 진실인 것 같습니다. 이 필연이 다시 어디로 자리를 옮길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곳에서 분명 반가운 악수를 나누게 되리라 믿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3주의 강의록은 사이언스북스 출판사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https://goo.gl/uQN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