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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리 Jul 26. 2020

코로나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 1

저는 이태원에서 떡볶이만 먹었는데요

발열, 구토, 기침, 가래, 근육통 등의 증상이 있으세요?

-네. 발열하고 근육통이요.

최근 2주 이내에 이태원 방문하신 적 있으신가요?

-네. 이태원이 직장이에요....

그러면, 정식 예약은 불가능하세요. 코로나 검사를 받으시고...

-바로 어제 두 번째 코로나 검사 받았고, 두번 다 음성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당일 진료나 예약은 안되세요.

-.......



수화기 너머의 두 가지 질문 앞에

난 유죄였으며

해열제도 듣지 않는 고열이

나흘 동안 지속되자

이게 바로 사형선고구나, 생각했다.




코로나19 시국에 급성폐렴이라니-1  


신천지 전수조사를 마치고 코로나 확산을 어느정도 막은 듯 보였던 5월 초.

한국의 과감한 행동력과 기술력을 칭찬하는 뉴스들로 티비 신문이 연일 도배되던 때였다.

사람들은 간만에 찾아온 석가탄신일부터 가정의 달 휴일까지 붙은 긴 휴가를 만끽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무척  달콤했을 바로 그 무렵....




5 1 금요일

이태원 인근 작업실에서 여느 때와 같이 늦게 일을 마친 터였다.

같은 구의 회사에서 일하는 친한 동생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노동절 퐁당퐁당 휴일을 쉬지 못한 노동자의 애환을 달래자는 취지의, 잠깐의 휴식이었다.

불금+노동절 휴일이라 조금 불안했지만,

9시가 넘은 늦은 저녁이기도 했고

경리단 거리는 평소와 달리 사람이 없어 방심하기 딱 좋게 한산했다.

한참 쑥쑥 자랄 성장기 (30대) 라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팠다.


녹사평역 인근의 한산한 레스토랑에서

시장했던 요기를 끝낸 우리는

적막이 가득한 유령도시같은 이태원의 밤거리를 걸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의 거리가 조금은 낯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람들이 매우 잘 지키는구나!

불안감이 내심,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한 정거장 사이를 걷는 동안

이미 앞선 요리를 모조리 소화시킨

장대한 소화력의 우리는

2차 식사를 향한 거센 욕망에 사로잡혔다.

허기 앞에 관대한 우리는

간단한 합리화로 전우애를 다지기로 마음 먹은 참이었다.

“간단히 먹으면 되지!”

“30대때 잘 안 먹어 두면 손발이 떨린다”


그렇게 우린 ‘간단히’ 먹을 곳을 찾아

이태원역 근방에 음식점이 가장 많은 해밀턴 호텔 뒤로 들어섰다.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으로 걸어오며 전혀 느끼지 못했던

코로나 이전의 시대가 온거리에 펼쳐졌다.

뼛속까지 울릴 듯한 거대한 음악소리,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한손엔 생맥주를, 한 손엔 담배를 든 채로

서로를 훑어보며 구애의 눈빛을 주고받는 청춘의 남녀...

우리를 감싸는 화려한 조명들...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이미 환락의 던전으로 들어선 우리 앞에

드물게 사람이 거의 없는

떡볶이 집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저기다!”

우린 기쁜마음으로 들어가 차돌 떡볶이를 시켰다.

만족스러운 먹방을 마치고

사람이 더 많아지기 전에 일어나

집으로 와 잠을 청했다.

.

.


8일 뒤,

5월 9일 토요일

이 때부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이태원 클럽관련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재난문자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쏟아져 오기 시작하더니

“이태원 클럽 출입자 코로나 검사 필수”에서

“이태원 인근 식당/주점 출입자 모두 검사” 로 기준이 바뀌어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내가 코로나 검사 대상자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설마, 나도 자가격리 대상자 되는 거야?

순간 지난 9일 간의 내 이동 동선과

나와 스쳤던 수많은 인물들이 뇌리에 필름처럼 지나갔다.


함께 떡볶이집에 방문했던 동생과

공포에 떨며 톡을 주고받았다.

우린 아닐거야,

클럽도 안 갔고 !

밥만 돼지처럼 두 번 먹고 조용히 집에 왔잖아!


그러나 마냥 안심하기엔,

우리가 방문했던 떡볶이 집이

문제의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과 멀지 않았다.

불안함에 잠에 쉽사리 들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 9시,

보건소에 연락해 보니

대응팀 직원분이 전화를 받으셨다!

“이태원을 가긴 갔는데요..

떡볶이집인데..술도 파는 그런데였구요.

클럽은 진짜 안갔어요!!”

횡설수설하는 내 얘기를 들으시곤

대응팀 직원분은 안심을 시켜주시며

늦은 시간이라 피곤하실 텐데도

매우 친절하고 빠르게

당장 다음 날인 일요일에

검사예약을 잡아주셨다.



5월 10일 일요일

예약시간 오후 두시.

넉넉히 12시 반부터 보건소로 출발했다.

대중교통은 타지 말라고 하셔서

걸어서 약 1시간 거리의 보건소를

잘 타지도 못하는 언니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비틀비틀 넘어져가며 1시간 반 만에 도착.

AC, 이럴거면 걸어올껄!!

간신히 시간에 맞춰 들어온 난

속으로 상욕을 하며 땀범벅이 되어 검사를 받았다.

방역은 듣던 대로 철저했으며

검사소 천막 안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콧구멍과 입 안을 길쭉한 면봉이

거칠게 들쑤시고 나갔다.

뇌까지 찌르는 듯한 아픔에 비명을 지를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인생에 한 번은 있을 수도 있는 해프닝이라 여기기로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땀에 흠뻑 젖으며 온 것에 비해

생각보다 검사가 빠르게 끝나 허무한 감도 들었다.

대한민국 검사키트의 능력에 감탄,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하며

망할놈의 바람빠진 자전거는 역 근처에 묶어두곤

걸어서 집에 왔다.


결과가 나오는 하루 남짓의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던지.......

하지만 난

당연히 음성일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당당했다.


우린 그날,

어느 누가봐도 금요일 격무를 마치고

그저 배가 고파 걸쭉하고 얼큰한 국물을 마시고픈,

철벽 kf94마스크를 착용한 롱원피스 차림의 30대 여성 두명이었을 뿐이었다.

오죽하면 그날 밤 이태원 거리를 수놓았던

다양한 인종의 20대 핫가이들조차

우리들을 보자마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주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난다)


누군가와 얽혀 부비부비를 했다거나

애틋하게 손터치를 했다거나

서로 끈적한 호흡을 주고받을 일 없는

건전한 곳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기에

이렇게 힘들게 코로나 검사를 했다는 것에

약간의 억울함도 있었다.

내가 클럽 문턱에서 줄이라도 서고

뺀찌라도 먹었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매우 먼 사람이었다는 걸

그 누구보다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만에하나” 라는 변수를 머리에 두고 나니

당당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콩알만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5월 11일 월요일

-띠링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

“음성!”

그 두 글자 앞에

불안했던 마음은 폭포수에 씻겨간 듯

말끔히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예견했던 결과였지만

 막상 텍스트로 “음성”이라는 글자를 보니

안도감에 가슴이 뛰었다.

음성통보를 받자 마자

다시 이태원으로 출근했다.



5월 12일 화요일 

그 다음날인 5월 12일은

평소와 달리 이상하게 아침부터 몸이 좀 무거웠다.

.

머리를 흔들자 관자놀이부근이 깨질 것 같았고,

배란통같은 복통도 있었고

몸살기운 같기도 한데 묘하게 근육통이 있었다.

급히 출근중 작업실 인근 약국에서 체온계를 사 혀뿌리에 대고 열도 쟀는데 37.5도...



헉, 증상이 매우 낯익었다.

설마...이게 말로만 듣던 코로나인가.....!

음성 판정 받았다가 양성으로 바뀐 사례가

앞서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었던 터.

말끔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불안감은

또다시 스멀스멀

고열과 함께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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