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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Jul 31. 2023

001. 내 시계


  괴산 집에는 시계가 셋 있었다.

하나는 한국, 하나는 독일, 하나는 집주인도 무엇을 나타내는 시간인지 잊어버린 시계. 잊혀진 시계는 멈춰있었다. 독어를 배우러 간 그집에서 시계를 세개 보곤 그냥 받아들였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한국에서 독일의 시간이 궁금한 이유가 뭘까, 요즘은 핸드폰으로 다 볼 수 있는데 물리적인 시계를 하나 더 둔 이유가 뭘까, 독일에서 살고 있는건 그 집 딸이지 부모가 아닌데 왜 한국 거실에... 까지 생각이 미치고 아하 했다. 부모님은 항 상 자식들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런 연유에서일것이다. 객지에 있다면 더욱이. 지금 몇시야, 아유 벌써 시간 이 이렇게 됐네 하면서 슬쩍 독일 시계도 같이 보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딸이 지금 자겠 네, 밥은 먹었으려나, 일하고있겠네 하고.


  일주일 이라는 시계는 참으로 빠르다. 저번 일을 할 때 고정 휴일이 화요일이라 객지에 있는 나는 조부모님께 화요일 마다 전화하겠노라 약속했었다. 나는 한국에서 일해서 할머니 집에는 시계가 하나밖에 없지만. 일 하는 동안 화요일은 너무 빨리 돌아왔다. 오는 줄도 모르고 보내 버리면 화요일 지킴이가 친히 전화를 주신다. 오늘이 수요일이라고 금요일 이라고 벌써 이주가 지났다고. 할아버지는 화요일을 기다린다고. 일이 끝난 지금도 암묵적으로 화요일마다 전화를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전화를 드는것은 어쩐지 잘 안된다. 내일은 하게될까. 요즘은 카톡을 배우고 계신다. 더 이상 지키 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화요일의 시계는 달력. 그래서 할머니 집에는 여기저기 달력이 있나보다. 아하.


  시계와 시간을 분간해 내려고, 혼동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보는 바와 같이 잘 되진 않는다. 시간과 시계, 노래와 악보. 막내동생은 아직 시계 볼 줄 모른다. 시침과 분침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하루는 잠을 자야 넘어가는게 아니라는것 을. 구구단 오단과 시계의 상관관계를 아직 모른다. 오단은 오단 시계는 시계. 응 언니 네시 반에 방과후 끝나 하고 말은 하지만 네시 반이 무엇인지 모른다. 시간은 시간 시계는 시계.


  저번 일요일은 부활절이었다. 2000년간 흘러온 시계. 지켜온 시계라는 표현이 맞을듯 싶다. 어떤 정파가 세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각기 다른날에 부활하신다. 정교회는 율리우스력, 로마 가톨릭은 그레고리력, 개신교는 또다른 날. 전 세계 기독교가 같은 날 부활절을 지킨 건 2017년 4월 16일 이라고 한다. 시계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기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있다. 사실은 담겨있다기 보다, 시간을 읽는 이로써 기준된 이의 권력을 높여보이기 위함일것이다. 단기 4356. 수많은 왕조의 n년. 예수 탄생 2010년 후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나는, 내가 일 기장에 쓰는 년도가 그런 의미인가 했다. 나도 모르게 예수를 기리고 있었네. 누가 동의한것일까 그 시계는. 당혹스러 웠다. 서기는 참으로 밀여붙여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구의 시계를 지배한 기독교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날 은 또 각자 다르구나.


  성무일도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시계. 지구에선 그를 찬미하는 노래가 쉼없이 흐른다. 기도하는 자가 사는 곳에서 돌아 가는 시계에 맞춰 이어달리기 하듯이. 성무일도를 처음 바칠때였다. 수녀님하고 놀고싶어서 점점 미사 시간보다 전에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따라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따라했다. 그래봐야 기도 뿐이지만. 저녁 6시가 되자 일시에 모두가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꺼내더니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좌우 분단을 나눠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수녀님 그 책 뭐 예요? 성경도 아니고 성가책도 아니고 매일미사도 아닌 그 거. 성무일도. 성경이 교과서라면 성무일도는 문제집, 정해 진 시간에 드리는 시간경, 나라마다 시간이 다르니 기도가 끊이질 않지. 그 쯤 들으니 시간이 나라별로 다른 이유가 기 도하기 위함인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 됐다. 성무일도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노래. 지구에선 그를 찬미하는 시계가 쉼 없이 흐른다.


  만났던 날로 부터 날을 거꾸로 세는 것은 사랑일까 존경일까 그보다도 미련일까 그전에 미련함일까. 이젠 절실하지 않 아도 만날 수 있고, 꼭 성당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좀 덜 비장해도 되는데. 같이 성무일도 말고도 많은 것을. 시간을 자꾸 그로 맞추려 함은. 내 시계는 아무도 볼 수 없고 권력이랄것도 내비칠 마음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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