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요일, 엄마의 휴무에 맞춰 때마침 엄마의 생신이었다. 매번 그러했듯, 외식으로 기념일을 때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른들 말씀에 딸자식 키워놔봐야 소용없다고 하던데, 나를 두고 태어난 말이 아닐까 싶다.
시댁에서 결혼 1년 만에 분가하고 내 집 마련한 뒤로 나는 만삭의 몸으로 왕복 3시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당시, 지금처럼 주 5일제가 만연한 시기가 아니었던 터라 토요일은 격주 휴무였다.
2주에 한 번씩 쉬는 토요일을 반납하고 만삭의 몸으로 시댁 식구 성인 7명과 아이들 5명 음식을 혼자서 만들었다. 정말 하루 종일 주방 싱크대에 서서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둘째 민이를 임신하고 그때는 시어머니 칠순이었다. 그날도 다섯 살 엽이 데리고 만삭의 몸으로 어머니 칠순상을 차려드렸다.
그러나 정작 친정 식구들을 위해서 그럴싸한 음식을 대접해준 적도 없고, 결혼한 지 13년 차 주부가 되도록 엄마 생신 상 한번 차려본 적 없는 그런 딸.
키워 나봐야 소용없는 딸이었다.
시댁에서는 맏며느리에 외며느리라 효도에 대한 당연한 의무만 가득한 처지이고, 친정에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효도는 선택이었다.
왜?
'나는 며느리이기 전에 딸입니다.'
이번에는 모처럼의 마음을 먹었다. 나의 업무는 25일 마감일인데 직장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연차를 제출했다. 목구멍에서 체할 것 같은 눈칫밥을 선택했던 건 우리 엄마 생신 상을 차려드리고 싶어서다.
일요일 오전에 만든 밑반찬
토요일에 남편과 장을 봤다. 나와 똑같이 맞벌이하는 동생 네에 밑반찬도 넉넉히 챙겨주고 싶어서 일요일에는 밑반찬을 만들고 월요일 아침부터 남편과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었다. 혼자서 만들었다면 손이 느린 나는 아마 친정 식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끝내지 못했을 거다.
밑반찬부터, 갈비찜, 잡채, 고추잡채, 동그랑땡, 맛살전, 미역국, 샐러드 등 스스로 뿌둣할만큼 생신 상을 차렸다.
갑자기 생각나 급 출력해서 만든 셀프 축하 가렌드
일렬로 멋없이 붙이려던 찰나, 동생이 예쁘게 배치했다. 우리 엄마는 딸들이 엄마를 부를 때 "임 여사!"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손발 오글거리게 "엄마 생신 축하해요"보다는 "임 여사 생신"이란 문구가 나은 듯. (나 그렇게 싹싹한 딸이 아니라서......)
엽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이 축하 파티에 제외되었다. 유치원생들끼리 7세, 6세, 5세들만 모여 할머니 생신 축하 노래 떼창!
다들 허기가 진다 해서 밥상 차리다 말고, 촛불 파티가 먼저였다.
음식 먹다가 상차림 사진을 안 찍어서 급하게 찍었는데 영~ 모양이..... ^^
상 치우다 마시고, 또 상 좀 치우다 마시고, 또 다 치워놓고 마셔서 밤 12시까지 마셨다는...
동생이랑은 단둘이서 맥주 한 병을 더 마무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잠이 들었다. 같은 성별에다, 같은 며느리에다, 같은 부모에다, 같은 워킹맘에도 공통점도 많고 통하는 것도 많은 우리 사이. 각자 출근만 아니면 더 놀고 싶었는데 피곤함이 몰려와 숙면을 취했다.
형부랑 언니가 고생 많았다며 동생도 감탄하고 친정 엄마도 고마워하는 걸 보니 내심 행복했다.
회사에서는 마감일에 연차 쓴다고 비록 눈칫밥을 먹었지만, 난 가정도 소중하니까. 그래도 나는 소용 있는 딸이 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