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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원룸에서 남편과 둘이 신혼집을 차렸다.

<2부>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by 케푸

결혼 전 혼자 살 목적으로 집을 구했다. 87년도에 준공된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2년간 월세 50만 원에 임대했는데, 5평 원룸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오래된 아파트지만 9평이면 대궐이지 싶었다.

실제로 혼자 살기에는 9평이 대궐 같았다.


5평 원룸에서 살던 짐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가구도 짐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5평 원룸에서는 주방이 너무 작아 설거지도, 요리도 정말 힘들었는데 9평 원룸은 친구를 초대해 뷔페를 차려줄 수 있을 것 같은 큰 일자형 주방도 있었다.

IMG_4401.jpg 5평 원룸(가구는 침대와 화장대, 작은 책꽂이가 전부였다.)

9평 원룸에서 1년 조금 넘게 살았을 때 남편과 결혼했다.

처음엔 결혼하면 바로 신혼집을 구할 줄 알았는데 내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다. 결혼 전 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 꺼내기엔 조심스러웠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시부모님 왈 본인과 남편이 살고 있던 집을 팔아 신혼집 전세금을 주신다고 하셨다. 굳이 남자가 집을 해올 필요는 없는데 하며 사양했지만 극구 해주시고 싶다며 시부모님은 내 거부를 거부하셨다.

게다가 대궐 같은 9평 원룸이 있으니 여기서 당분간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9평 원룸에 신혼집을 차렸다.


혼자살 땐 9평 원룸은 대궐 같았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가구도 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흡족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 공간에 고작 사람 한 명 들어왔을 뿐이었는데 얼마 있지도 않던 짐과 가구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짐은 간소했다. 시댁에서 가지고 온 짐이라곤 약간의 옷과 약간의 생필품뿐이었는데도 그 옷을 넣을 서랍장이 필요했고, 혼자 쓰던 싱글침대에서 둘이 잘 순 없으니 퀸 사이즈로 바꿔야 했는데 퀸 사이즈가 들어갈 곳이 없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가구였던 침대도 친정집으로 보냈다.

IMG_3125.jpeg 새로 생긴 서랍장
IMG_3288.jpeg 티비장이 됐던 작은 책꽂이

가지고 있던 화장대도 화장은 책상에서 하면 되지 하며 비우고, 스툴은 협탁과 티테이블이 되기도 했고, 작은 책꽂이는 눕혀 티비장으로 썼다.


화장대를 비운 공간엔 새롭게 서랍장이 생기고 침대를 비운 공간엔 토퍼를 두어 잘 때만 펴놓고 생활할 땐 접어서 거실처럼 사용했다.


한 사람이 살던 집에서 두 사람이 살며 가구는 더 적어졌다. 집이 좁으니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때즈음 미니멀라이프를 알게 됐다.


집이 좁아서 가구들을 비우고
짐을 줄였던 게 미니멀라이프라고?


불평하기 싫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더 이상 남 탓, 세상 탓, 불우했던 유년시절 탓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돈이 없어서 남들처럼 신혼집을 구할 수도 없었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이 집엔 싸구려 가구들과 싸구려 옷들밖에 없을까 하며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작고 좁은 집이지만 영화관이 가깝게 있어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고, 싸구려 가구들과 싸구려 옷이지만 내 안목을 만들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집이 좁아서 가구들을 비우고 짐을 줄였는데 그때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게 됐네 하며 '개이득'(개이득이라는 단어를 잘 쓰진 않지만 이 상황에서 이만큼 명료한 단어도 없다.)하며 킥킥 거리기도 했다.

모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미니멀라이프는 잡지와 블로그처럼 예쁘지도 않았다.



시골 사는 미니멀리스트라는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

https://www.youtube.com/@go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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