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파리 여행기
앵발리드 역에서 도보 8분 거리, 숙소로 구한 한 스튜디오의 벙커 침대 위층에 앉아있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노란 햇빛이 비스듬히 방 안을 비추었다. 한쪽 구석에서 푹신한 베개 두 개를 쿠션 삼아 폭 안겨서 뜨개질을 하던 참이었다. 후드가 달린 붉은 목도리. 그것을 위해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가볼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뻐근한 몸을 풀어주며 벙커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트밀 색 맨투맨과 편한 청바지로 갈아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비니를 대충 쓰고는 밖으로 나왔다.
파리에 오게 된 것은 사실 런던 여행에 대한 부록이었다.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런던 여행. 그리고 꼽사리 낀 파리. 그 정도였다. 런던 여행을 마치고 잠시 쉬어가는, 유럽에 왔으니 에펠탑은 봐야 하지 않겠냐 싶은, 그런 곳이었다. 파리로 향하는 유로스타를 탔을 때 보인 끝도 없는 평원의 풍경. 그것이 처음 본 프랑스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봐도 산이 보이지 않아 생경했던 그 풍경. 무한한 바다의 수평선 같은 푸르른 지평선을 바라보며 이곳엔 산이 없네. 참 신기하구나, 했었다.
파리는 참 차갑고 불친절한 동네였다. 유로스타에서 내려 파리에 도착한 후, 파리 북역에서 혹시나 누가 가방을 채어갈까, 크로스백을 온몸으로 안고, 캐리어를 꽉 잡은 채 지하철로 향했었다. 짧은 거리를 가는 도중에도 지하철 조명은 이유 없이 꺼졌고, 중간에 아무런 공지 없이 멈춰 서기도 했다. 숙소가 있는 앵발리드역에 도착해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 몸만 한 캐리어를 지고 계단을 올랐다. 끊임없이 나오는 계단을 오르며, 아니 이 동네는 왜 엘리베이터가 없어,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속으로 별말을 다 했다. 그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도착했던 숙소. 숙소 대문을 여니 또 보이는 계단에 모든 의욕을 잃어 하, 하며 한숨 쉬고는 층계참에 털썩, 하고 앉아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후 시작한 여행 첫날,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에서 한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로 호통을 쳤고,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길을 건너는 중에 한 차가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빵빵댔다. 그날 밤, 나는 잔뜩 화가 나고 우울한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왔다. 이렇게 첫날의 파리는, 너무나도 미운 동네였다.
방 밖으로 나가 열쇠로 문을 잠갔다. 열쇠가 끝까지 다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오른편의 벽을 더듬어 복도의 조명을 켰다. 파란색의 한 사람의 몸만 들어갈만한 크기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띵동, 하고 소리가 들리자 묵직한 철제의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당겨 열었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파리는 어두워져 있었다. 밖에는 노란빛의 가로등이 줄지어 있었고, 맞은편 노상 카페에는 사람들이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 서 무선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5분 정도 걸으니 넓은 도로와 버스정류장, 그리고 금색과 하얀색의 화려한 조각상으로 장식된 앵발리드 다리가 보였다. 화려한 조각상과 달리 다리의 노란 조명은 쓸쓸하고 아련해 보였다.
절대 파리를 좋아하지 않으리. 첫날부터 나의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었다. 외딴 관광객에게 너무나도 차갑고 불친절한 도시. 이런 곳이라면 나도 무참히 차가워지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 다짐은 하루 만에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온 날 둘째 날 저녁, 파리에 사는 지인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랐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저녁에 가고 싶었는데, 여자 혼자 오기에 치안이 안 좋다고 해서 걱정했어요. 일행이 있어 다행이네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저는 뭐, 혼자서도 밤에 잘 다녀요.’ 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녀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을, 밤의 파리를 거침없이 걸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뒷모습을 따라, 나도 몽마르트르 언덕을 걷기 시작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꼭대기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 웅장한 파란 벽화를 구경하고, 해가 지는 파리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자유롭고 행복한 표정으로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뒷모습 뒤로, 몽마르트르의 작은 기념품 가게들의 불빛과 흥겨운 음악이 들려왔다. 그 너머로 파리 시내의 전경이 별가루 같은 잔잔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에펠탑이 보였다. 때 마침 정각이었는지, 평소에는 은은히 빛나는 에펠탑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은 분홍색과 보라색, 그리고 남색이 그러데이션처럼 펼쳐져 있었다. 남색의 깊은 밤하늘에는 몇몇의 별이 흐릿하게 반짝였다.
관광객들을 따라 몽마르트르 언덕의 가로등이 켜진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오른쪽에는 벽에 그려진 귀여운 낙서들이 보였고, 내 앞에는 붉은 목도리를 함께 한 커플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광장으로 내려가니 작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볼펜의 한 선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한 작가에게 캐리커쳐를 받았다. 계산을 하고, 무심히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정성껏 쓴 나의 이름과, 나를 그려줄 때 사용한 볼펜이 담겨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놀란 표정의 나를 보고 ‘Special gift!’ 하며 웃는 그에게 나는 ‘메르시 보꾸!’라고 대답하며 환히 웃었다.
그 후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가, 파리의 이곳저곳 탐험했다. 생 미셸 거리에서 시끌벅적한 프랑스인들과 섞여 녹인 치즈와 감자, 야채를 같이 먹는 Raclettes를 먹고, 팡테옹,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등 대표적인 명소들을 따라 파리의 구석구석을 걸었다. 활기가 넘치는 생 미셸 거리에서는 대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야외에서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그곳을 벗어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처럼 나를 낭만의 시대로 데려가 줄 것만 같은 조용한 골목이 나왔다. 또 바쁜 걸음의 현지인들과 관광객을 따라 걷다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가 들려왔고, 또 그렇게 걷다 보면 아름다운 조명이 펼쳐진 센강이 나왔다. 밤의 파리는 활기가 넘쳤고, 동시에 고요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렇게 파리를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첫날의 파리에 대한 미움은 잊어버리고, 진심으로 파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외딴곳에서 온 외부인이 아니었고, 파리, 그 아름다운 도시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진정으로 파리를 즐길 수 있었다. 어디서든 보이는 에펠탑은 어린 시절 가족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차에서 나를 따라오던 보름달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흐린 날씨의 파리는 흑백의 몽환적인 꿈만 같았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녹색의 의자에 앉아 하나의 나무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쉬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곳에는 활력과 음악이 넘쳐났다. 공원과 센강에 돗자리도 없이 철퍼덕 앉아 윤슬과 오리를 구경하였다. 카페나 비스트로에서 눈을 맞추며 ‘봉주아’ 하고 인사하면 누구든 밝게 웃어주었다. 나는 그 순간들에 진심으로 행복감을 느꼈다. 첫날에 느꼈던 감정과, 내 최애 도시 런던을 배신한다는 생각이 들어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큰 도로에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옅은 조명이 켜진 버스정류장에는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며, 앵발리드 다리 맞은편 횡단보도에 섰다. 차들이 도로를 지나갈 때마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파란불이 켜지고, 횡단보도를 건넌 후 왼쪽의 내리막길로 향했다. 내리막을 내려가니 센 강과 에펠탑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밤의 센 강이었다. 숙소에서 나가 5분 정도 걸어 센 강에 도착하면, 에펠탑과 센 강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담을 수도 없는 커다란 에펠탑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센 강을 따라 있는 다리들과 가로등의 조명은 주황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그 주황색의 조명은 센 강 물결에 비쳐, 센 강을 황금색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검은색과 깊은 남색. 그것이 섞인 오묘한 색으로 만들어주었다. 널찍한 강변 산책로에는 러너들이 거친 숨을 쉬며 경쾌하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센강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뭉클해지면서 평화로운,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강에 가까이 다가가 까만 물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에펠탑을 향해 걷기도 하고, 러너들을 구경하다 보면 이 도시에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음에는 나도 러닝화를 가져와서 뛰어봐야지, 하고 다시 파리에 올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이 파리와 사랑에 빠져, 다음 만남을 상상하게 되었다.
파리의 마지막 날, 행복했던 며칠간의 여행은 지나가고, 다시 첫날과 같은 감정으로 돌아왔다. 더 무거워진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끝없는 계단을 내려와 숙소에서 나왔다. 앵발리드역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서, 또다시 지하철 역사 안으로 캐리어를 지고 들어갔다. 이 무거운 짐을 끌고, 우여곡절 끝에 공항행 기차를 탔다. 기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30분 동안 멈춘 동안, 비행기를 놓칠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구글 지도와 시계를 계속 새로고침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 ‘아, 파리 다신 안 와.’ 이렇게 다시 파리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다시 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가득한 거리. 미술관에는 보기만 해도 황홀한 작품들로 가득하고, 차가워 보이고 솔직하지만 정겹고 따뜻한 사람들. 금색과 남색으로 일렁이던 밤의 센 강. 그리고, 혼자라서 자유로웠고 혼자라서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던 기억들. 나는 계속해서 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정말로 미웠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