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혼자 눈 구경 갈 땐, 하코다테

나 홀로 하코다테 여행기

by 고광


새하얗게 쌓인 눈을 푹푹,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에는 새파란 하늘이 보였고, 하얀 눈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머리까지 두른 목도리를 여미며, 하얀 눈의 세상 한가운데 멈춰 섰다. 차갑고 하얀 입김이 나의 벅찬 숨과 함께 빠져나왔다.


나의 이번 여행지는 하코다테. 일본 홋카이도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에 개항한 도시 중 하나로, 2020년도에 이른 지금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자그마한 전차가 동네를 돌아다니고, 곳곳의 건축물들은 일본과 서양이 절묘하게 섞인, 묘한 느낌을 준다. 내가 하코다테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이 묘하고 레트로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겨울에 눈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삿포로처럼 많이 알려지진 않아서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하코다테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삿포로 근교의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여, 하코다테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하코다테는 3시간 정도로, 어두운 밤이 되어야 하코다테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 올라타, 입구에 있는 짐칸에 28인치짜리 캐리어를 밀어 넣었다. 두터운 패딩점퍼를 한껏 움츠리며 열차 중앙에 있는 지정석으로 찾아갔다. 다행히도 창가석이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플랫폼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객들은 백팩을 메고, 기차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어린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풍경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덜컹,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천천히 기차가 움직였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눈을 감았다. 하코다테는 어떤 풍경일까. 나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해 줄까. 싸릿눈이 창문을 때리고, 홋카이도의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혼자 여행 가면 심심하지 않아요?”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원래 혼자 가는 걸 좋아해요.”라고 대답하면, 음, 좀 고독한 사람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그냥, 시간 맞는 친구가 없어서요.”라고 대답하면, 음, 친구가 많이 없구나. 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좋다. 고독한 사람인 것도 맞고, 친구가 많이 없는 것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고요하다. 특히, 합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동시간은 더더욱 고요를 즐길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창 밖으로 바뀌는 풍경을 바라본다. 날씨가 바뀌는 것을 구경하고, 해가 점점 뜨는 것이나 해가 점점 지는 것을 바라본다. 비행기의 작은 소음,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듣는다. 이 조용한 시간, 정당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다.

기차가 하코다테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창 밖은 어두워져, 마치 은하철도 999의 한 장면처럼 어둠을 뚫고 나아갔다. 점점 눈이 두꺼워지더니, 함박눈이 창 밖으로 내리고 있었고, 창틀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새로 지어진 듯 깨끗한 하코다테 역 밖으로 나오니, 눈이 종아리 높이까지 두텁게 쌓여있었다. 이렇게 많은 눈도 부족하다는 듯, 세찬 눈보라가 눈앞을 가리며 내리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패딩부츠로 눈을 푹, 푹, 밟으며 10분 거리의 호텔로 가는 길, 피곤하고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항구도시가 주는 묘한 편안함이, 우산을 쓰고 환하게 웃는 하코다테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해 주었다.

아침이 되자, 세찬 눈보라는 멈추고, 따뜻한 햇살이 눈이 가득히 쌓인 하코다테를 비추고 있었다. 히트텍에 경량패딩. 그 위에 두터운 패딩. 기모바지와 패딩부츠. 후드로 만들어 머리까지 뒤집어쓴 목도리. 한치의 추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두텁게 껴입은 내 몸은 걸을 때마다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렸다.
전차를 타고 야치가시라 역으로 향했다. 다치 마치 곶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와 달리 가볍게 입은 출근길의 현지인들이 중간중간 내리더니 야치가시라 역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전차에 나와 한 노부부만 남게 되었다. 야치가시라 정류장에서 내리니. 눈이 가득 쌓인,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한 작은 동네가 보였다. 상점에는 오래된 느낌의 바랜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주택들의 지붕, 나무, 표지판 할 것 같이 뭐라도 올라갈 수 있는 곳에는 스쿱으로 가득 퍼낸 아이스크림 같은, 두텁고 하얀 눈이 올라와 있었다.
두꺼운 패딩부츠를 신은 발으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얀 눈이 포슬하게 밟혀 발자국을 냈다. 조용한 마을과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공동묘지를 지나고, 다치마치곶에 도착하였다. 작은 정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드넓은 새 하얀 평원이 보였다. 그 앞에는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는 새파란 바다, 쓰가루 해협이 넘실대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 보였다. 절벽의 옆면에도 눈에 쌓여있어서 회색의 바위와 하얀 눈, 그리고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철썩, 철썩, 하고 강한 파도가 절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있는 세상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는 하얀 눈밭에 뒤뚱거리며 들어가 눈밭 한가운데 멈춰 섰다. 차갑고 하얀 입김이 나의 벅찬 숨과 함께 빠져나왔다. 눈은 아슬아슬하게 패딩부츠를 넘지 않는 곳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곳에 서서, 온 사방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 아름다운 곳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나. 이 지구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무한한 자유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곳에 한 참 서서, 발과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드넓은 바다과 눈의 세상, 아찔한 절벽을 어디 한 곳이라도 놓칠 새라, 끝도 없이 쳐다보았다.

혼자 여행하는 것의 장점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세상 속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쓸 수 있다. 너무나도 멋진 절경 앞에 서서, 무한한 바다를 바라보거나, 아름다운 윤슬과 철썩이는 파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을 내가 원하는 만큼 바라볼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머무를 수 있는 자유, 내 마음대로 느낄 수 있는 있는 자유,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마음껏 웃을 수 있고, 마음껏 울 수도 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그 해방감과 자유로움 안에서 진정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전차를 타고 하코다테 시내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온화한 날씨에 벗어버린 경량패딩을 손에 들고, 하치만자카 언덕으로 향했다. 조금씩 관광객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함께 걷다 보니, 하치만자카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다. 도로와 인도의 눈은 밟혀 녹아버렸고, 갓길에만 덩어리 진 눈들이 쌓여있었다. 하치만자카 언덕의 메인 도로 앞에 서니, 그 넓은 일자의 도로 끝에 항구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항구의 왼쪽에는 붉은 벽돌의 아카렌가 창고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내리막에 서서, 이 하코다테를 대표하는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밝은 표정들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그 이후, 하코다테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별 모양의 고료가쿠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고료가쿠 타워. 빨간 벽돌의 아카렌가 창고의 귀여운 소품들. 65년 전통 화과자집인 센슈안 본점에 가서, 부드럽고 달콤한 도리야키를 맛보고, 120년이 넘은 스키야키집인 아사리에 들어가, “코상”이라는 낯선 호칭으로 불리며, ㅡ 제 성씨는 고(高)입니다.ㅡ 뜨끈한 스키야키와 레몬사와로 몸을 녹였다. 레몬사와로 취기가 올라 조금 붉어진 볼으로 하코다테 산에 올라가 일본 3대 야경을 구경하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 저 멀리서 불꽃놀이가 보였다. 하코다테의 크리스마스 판타지 기념 불꽃놀이었다. 예상치 못한 불꽃놀이에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짧은 여행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삿포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올렸다. 어느새 날씨에 적응하여, 첫날과 달리 뒤뚱거리는 두터운 차림이 아닌, 편한 차림이었다. 하코다테 역에서 통오징어가 들어간 에끼벤을 사고 기차 안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삿포로로 향하는 기차의 종점이다 보니, 하코다테로 올 때와 달리 기차 안은 조용했다. 창 밖으로는 어제와 같이 맑은 하늘에, 포슬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풍경을 하염없이 보다 보니, 덜컹, 거리며 기차가 출발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하코다테의 풍경을 스쳐 지나가며, 기차는 삿포로로 향했다.
짧지만 행복했던 하코다테, 나에게 고요함과 자유함, 들뜬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까지 보여주었던 곳. 웅장한 절경과 새하얀 눈으로 나를 황홀경에 이르게 했던 곳. 이곳에서 나는 평생 꺼내볼 빛나는 순간, 행복한 기억들을 선물 받았다. 이 기억으로, 나는 또 남은 날들을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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