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빵지 순례를하는 게아니야
서울에 살 때에는 항상 집 근처 어딘가에 파리바게트가 있었다. 위치도 꼭 집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서 식사빵을 사기에 좋았었다. 토요일 오전은 거의 구운 빵, 샐러드, 계란, 베이컨 등으로 아침을 먹었기에 냉동실에는 항상 식빵이 있었고 정기적으로 파리바게트에서 식빵을 구매했다.
강릉에 와서도 처음에는 동네 차 타고 지나가다가 파리바게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식빵을 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동짬뽕을 먹으러 교동 사거리에 갔다. 교동짬뽕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길 건너에 '교동빵집'이 있는 게 아닌가. 일단 겉보기에 간판이 크고, 뭔가 강릉에서 오래된 전통이 있는 동네 터줏대감 빵집 포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왠지 팥빵, 소보루, 감자빵 등을 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도 동네 유명한 빵집이니 한번 가볼까 싶어서 앞에 갔더니 응? 페이스트리라고? 여기서부터 약간 의외였다. 들어가 보니 예상했던 팥빵, 감자빵 등은 아예 없었고, 오직 '데니쉬 페이스트리'만 판매하는 곳이었다. 데니쉬 식빵 플레인부터 치즈, 메이플, 초코 등등 얼핏 봐도 종류만 10가지는 넘어 보였다.
오 그렇다면 뭔가 진정성이 있어 보이니까 하나 사보자 싶어서 플레인을 구매했다. 보관 또는 먹는 방법이 쓰여있다고 해서 보니... 교토마블 창업주이자 파티쉐가 직접 운영하는 빵집이라고?
교토마블은 과거 회사원일 때 최측근 경쟁사였던 '마켓컬리'가 한때 주력으로 밀던 상품 브랜드였다. 교토마블의 데니쉬 식빵으로 온라인 광고를 한참 돌렸고 '새벽배송'과 '맛있는 아침식사빵'의 컨셉이 잘 맞아 컬리 포지셔닝에 큰 기여를 한 상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교토마블을 여기서 또 보다니!
교토마블과 교동빵집의 관계도가 궁금해 조금 찾아보니, 현재 대표는 각각 다른 사람이다. 현재 교토마블 대표가 강릉에 지점을 냈다면 '교토마블 강릉점'이 되었겠지? 아마도 교토마블 창업 멤버 파티쉐 중 한 명이 나와서 독립적으로 만든 빵집이 교동빵집인 것 같다. (저의 개인적인 추측이니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확인하고, 상온에서 3~4일까지 보관해도 된다는 내용을 보고 또 한 번의 인생 빵을 만나는 건가 기대감이 살짝 올라갔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경험상 상온 또는 냉장 보관으로 3~4일 동일한 맛을 유지하는 빵은 지금까지 살면서 '에쉬레 밤식빵' 딱 1번 봤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빵으로 데니쉬 식빵을 열었다. 우선 그냥 뜯어먹었는데 맛이 너무 부드럽고 고소하고 풍미가 있는데 손에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즉, 맛은 버터 같은 것이 손에 묻어 나올 것 같은 고소함인데 인위적으로 뭔가를 넣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갓 나온 식감을 살려보기 위해 설명대로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보았다.
완성된 아침 식사.
잼이나 버터가 딱히 없어도 훌륭한 맛이었다. 강릉에서는 파리바게트를 가려고 해도 어차피 차 타고 5분 정도는 나가야 하니 이왕이면 교동빵집의 데니쉬 식빵으로 아침 식사빵을 바꾸게 되었다.
빵을 먹고 보니, 처음 가게 외관을 보고 느꼈던 이미지들은 이 브랜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부터 시작했으면 그리 오래된 가게도 아닌데 이미 전국구 택배배송을 하고 오후 5시 정도면 하루 물량이 모두 솔드아웃되니 말이다. 그냥 상품의 승리다.
만약 이렇게 포지셔닝을 하면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2018년 오픈 당시, 덴마크 빵인 데니쉬 페스트리 이미지처럼 북유럽 느낌의 세련되고 깔끔한 외관으로 인테리어 해서 유명 파티쉐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다. 교동이라는 지역과 이질적인 느낌을 줘서 단번에 핫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역효과였을까. 내 생각에는 굳이 지역에 스며들려 하지 않았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강릉이라는 도시는 이런 이질적인 요소도 매력적으로 품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덧)
참고로 '교동빵집 포남점'이라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 곳은 내가 방문한 교동빵집의 지점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한다. 강릉에 와서 이런 상표권 이슈를 종종 접하는데 지역명만 상호로 쓸 경우 상표권 등록이 되지 않아 분쟁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교동반점'. 현재 상표는 '원조강릉교동반점 본점'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바로 뒷집 '이만구교동짬뽕'을 가면 그 히스토리가 붙어 있다. 즉 원래 '교동반점'을 운영하셨던 창업자 분이 이만구 님 이신데 상표등록이 되지 않았고, 그동안 수많은 교동반점들이 생겨났고, 그래서 수년이 지난 후 '이만구 교동짬뽕'으로 가게를 새로 내셨다.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업체들이 있고, 경쟁자들이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이로 인한 억울한 피해는 많이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