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똑같은 밀크티는 단 한잔도 없습니다.
이 글 제목이 '000 방법'이라고 되어 있어 마치 밀크티를 맛있게 만드는 레시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알쓸밀잡' 정도의 글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밀크티 잡학내용).
따라서 '레시피'를 기대하고 클릭하신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래 내용을 보고 나면 '아~ 그래서 밀크티 1잔을 만드는데 100개가 넘는 레시피가 나올 수 있군!'이라는 생각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년간 밀크티 덕후로 살아오면서 내가 정리한 밀크티 맛의 변수는 총 5가지이다. 그 변수란 차, 설탕, 우유, 시간, 열 or 온도 이렇게 5가지로 각 변수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차'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차'라고 불리는 모든 음료가 리얼 '차'는 아니다. 차의 정의는 '차나무'에서 시작되며 이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 '차'라고 할 수 있다. 즉 '차'는 6대 다류로 분류되는 녹차, 황차, 홍차, 흑차, 청차, 백차만 해당되며, 그 외에 보리차, 우엉차, 자몽차, 대추차, 캐모마일차 등등 수많은 것들은 모두 '대용차'에 해당된다.
물론 '대용차'로도 밀크티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밀크티의 역사적 유래로 볼 때, 홍차에 우유를 부어 마시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밀크티의 차는 기본적으로 '홍차'이고, 최근 티 베리에이션 음료가 늘어나면서 보이차, 우롱차로도 밀크티를 만든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서 - 범위가 넓어지면 끝도 없기에 - '홍차'로 만드는 밀크티 얘기를 해 보자. 그렇다면 어떤 홍차가 있는가? 가장 기본적으로 홍차의 종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산지별로 구분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홍차 산지로는 인도, 스리랑카, 중국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참고로 그 외 아프리카도 대규모 다원이 있어 차 생산을 하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티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홍차들도 결국 이 산지의 차를 가지고 각 회사별 제조 / 가공 / 블렌딩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밀크티를 만들기 위해 어떤 홍차를 선택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티 음료에 '우유'가 들어가게 되면 이 우유의 맛과 향이 아주 강한 편이라 이걸 뚫고도 살아남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차가 필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맛이 강한 홍차들이 선택받는다. 인도의 아쌈 홍차, 스리랑카의 우바 홍차를 일반적으로 많이 선호한다. 중국 홍차를 비롯한 아시아권 홍차의 경우 차나무의 품종 자체가 잎이 작고 섬세한 향을 지닌 것들이 많아 밀크티보다는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여기서 또 한 번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다. 홍차의 경우 잎의 등급이 여러 단계로 구분되는데 인도 아쌈 홍차 중에서도 SFTGFOP를 쓸 것인지, CTC가공 찻잎을 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처하게 된다. 밀크티 한 잔 만들어 마시려다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 그러면 머리도 식힐 겸 밀크티를 잘하는 카페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1. 자체 블렌딩 홍차 베이스 사용 (연희동 - 시간이 머무는 홍차가게 / 이대 - 티앙팡)
추천하는 티 전문점으로 2곳 모두 자체적인 블렌딩 홍차 레시피로 만든 밀크티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으셨지만 인도 or 스리랑카 홍차 블렌딩이라 생각되고 특정 브랜드 홍차를 사용하는지, 현지 다원과 직거래로 수입하시는지는 모르겠다.
2. 아쌈 홍차 밀크티 vs 우바 홍차 밀크티 (티에리스 티스탠드 / 헤르만의 정원)
두 곳 모두 차업계 관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전문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왼쪽 사진이 티에리스의 '아쌈 밀크티'인데 아쌈 홍차의 쌉쌀한 몰트함이 우유를 뚫고 나올 정도로 차맛을 잘 잡으셨다. 오른쪽 사진은 서촌의 데이트 핫플 헤르만의 정원 밀크티로 '우바 홍차'만을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좀 더 고소한 풍미가 아주 좋다.
3. 브랜드 홍차를 사용하는 차 전문점
왼쪽 이미지는 2~3년 전 일본 여행을 가서 찾아간 티룸. 이곳에서는 영국 브랜드 '포트넘앤메이슨' 차를 스트레이트로도 판매하고, 로열밀크티 베이스로도 사용하고 계신다. 차가 포트넘앤메이슨인데 밀크티의 맛이야 뭐 굳이 설명할 게 있나? ㅎㅎ 심지어 일본 여행 중에 만난 로열밀크티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맛은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강릉에서 방문한 카페인데 프랑스 브랜드 '마리아주프레르'의 LOVE SONG 시리즈 홍차로 만든 밀크티이다. 티 시럽을 만들어 차가운 우유를 부어주셨는데 프랑스 홍차의 향긋함이 무척이나 황홀했다.
이렇게 브랜드 홍차를 사용하면 단가는 높지만, 브랜드 로열티로 인한 셀링 포인트를 만들 수 있고 독특한 캐릭터의 밀크티를 만들 수 있다.
4. 홍차와 우유의 조합, 밀크티의 본 고장 영국의 포트넘앤메이슨 본점
홍차의 본 고장, 영국은 밀크티를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런던에서 티룸을 약 4~5곳 갔었는데 런던의 티룸 메뉴판에는 '밀크티' 메뉴가 없다. 단지 홍차를 주문하면 우유를 함께 줘서 tea with milk를 즐길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밀크티를 위한 '차'를 선택하기 위해 6대 다류 중 '홍차'로 선택의 폭을 좁히더라도 어떤 산지의, 어느 다원의 홍차인가에서 수십~수백 개의 선택지가 나올 것이고 여기에 생산되는 찻잎을 등급으로 나누면 또 종류가 세분화된다. 추가로 브랜드 홍차 종류까지 더하면 이미 밀크티 베이스가 되는 차의 선택지만 100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디저트에서 '설탕'은 단맛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 맛의 핵심이 소금이라면, 디저트 맛의 핵심은 설탕, 즉 당이라고 할 수 있다. 디저트에서 당을 줄이면 단지 단맛만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향, 풍미, 전체적인 맛이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출처 : 책 '맛의 원리' / 최낙언 지음)
밀크티에서도 설탕은 '차'와 '우유'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밀크티에 사용하는 설탕의 종류를 나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보았다.
1. 마스코바도 사탕수수당
2. 유기농 일반 비정제 사탕수수당
3. 백설탕 (정제 설탕)
4. 갈색설탕 (정제 설탕)
5. 흑설탕 (정제 설탕)
우선 비정제 설탕을 먼저 알아보자. '마스코바도' 설탕 같은 경우 특유의 향이 있어서 청을 담그거나 티 음료에 넣었을 때 색과 맛을 약간 변화시킨다. 또한 백설탕보다 덜 달아서 똑같은 당도를 맞추려면 좀 더 많이 넣어야 한다. 따라서 마스코바도는 목적에 따라 잘 사용함이 필요하다.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당' 같은 경우 건강상의 이슈로 가장 선호되는 설탕이다.
정제당의 대표적인 '백설탕'의 경우 함께 사용하는 과일, 차의 맛과 향을 가장 또렷하게 표현해 주고 색에도 지장을 주지 않아 이것 또한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갈색설탕 또한 무난한 편이고 흑설탕은 특유의 향과 색이 있어서 티 음료에는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밀크티 설탕으로는 2,4번이 무난하고 1,3,5는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 될 것이다.
헉헉.. 벌써 글이 너무나 길다 ㅠㅠ 내용이 방대하리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우유는 간단히 써 보자.
- 서울우유 : 가장 무난. 차맛도 잘 살려주고 구하기도 쉽다.
- 매일우유 등 지방 함유량이 높은 우유 : 아무래도 고소함과 꽉 찬 맛이 올라온다. 단 베이스 차 종류에 따라 자칫 느끼해질 수도 있고, 차맛을 가릴 수도 있으니 캐릭터에 맞게 사용이 필요하다.
- 피해야 하는 우유
(1) 칼슘 함량이 높은 우유 : 맛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 우유를 넣고 밀크티를 불에 끓이면 회색빛의 밀크티를 만나게 된다 ㅠㅠ 거의 흙탕물 수준의 요상한 컬러가 나와서 매우 당황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무지방, 저지방, 저온살균 우유 : 고온에서 팔팔 끓이는 과정을 거치는 밀크티 우유로는 적합하지 않다.
밀크티를 만들 때 시간은 제조 방법에 따라 몇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차를 우려서 우유와 끓이는 경우 '베이스 차를 우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홍차는 일반적으로 3분 우림이 기본인데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적정량의 카페인, 아미노산, 폴리페놀 등이 추출되어 음용하기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크티 베이스로 차를 우릴 경우 3분 이상 우림도 허용된다. 3분 이상 홍차를 우릴 경우, 떫은맛의 원인인 탄닌이 과다 추출될 수 있는데 밀크티의 경우, 바로 이 홍차의 떫은맛이 우유와 만나면 고소함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밀크티를 만들 때 홍차의 우림 시간은 3분~7분까지도 무방하다.
둘째, 냉침 밀크티일 경우 냉침 시간이다. 병 밀크티 유행이 한창일 때, 24시간 냉침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떠 올랐다. 그런데 최근 차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12시간 이상 냉침할 경우 쓴맛이 강해지고 차맛이 안 좋아진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기본적으로 홍차의 성분 중에는 아미노산이 있다. 이 아미노산과 당이 만나 150도 이상으로 가열이 되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서 새로운 풍미가 만들어지게 된다.
끓이는 방식의 로열밀크티를 만들 때, 홍차를 진하게 우려서, 찻물에 설탕을 넣고 끓이다가, 우유를 붓고 확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잔에 담아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때도 사실 '열'이 가해지면서 물성이 변하는 과정이 일어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열하는 시간과 온도가 맛에 영향을 미친다. 홍차의 양과 종류가 동일하고, 불을 가해 끓이는 변수만 달리해도 완전히 다른 밀크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열은 큰 영향을 미친다.
식음료 제조 종사자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지만, 음료를 즐기는 대중들까지 다 알 필요는 없는 내용이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다 정도로만 마무리한다.
밀크티 한 잔에는 홍차, 설탕, 우유 이 3가지 재료로 만들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파고들어 보면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끝없이 빠져들게 된다. 밀크티 레시피는 이제 온라인상에 많이 알려져 내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만, 만드는 모든 과정의 변수가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참 신비롭고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그래서 요리도 마찬가지이지만,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결국 똑같은 밀크티 한잔이 나올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밀크티를 수없이 마셔오면서 지인들에게 항상 이런 얘기를 해왔다. 밀크티는 맛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고.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는 지인은 거의 없었고 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유별나게 밀크티를 만들고, 마시는 사람이 훨씬 적을 테니 말이다. 밀크티 애호가로서 홍차와 밀크티가 지금보다도 더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