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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18. 2020

디지털 시대의 작업자

외장하드를 보내는 길

정확하게 4주 전.

최종 저장용으로 사용하는 외장하드가 꺼졌다.

4 테라 정도 되는 양, 총 12년 동안 모은 데이터가 사라진 것이다.


오류일 거라고 생각하고 데스크톱에서 빼서 노트북에 연결해봤지만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고 추천받은 프로그램(이지어스)으로 돌려봤다.

대략 10시간 정도 뒤에 결과가 나왔지만, 수십 개 사진이 반복적으로 나올 뿐 데이터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외장하드가 날아간 첫날 밤을 괴롭게 보냈다.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것은 의뢰받은 영상 작업이었고, 마감을 한 달 앞두고 최종 편집을 진행 중이었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지난 두 달간 여러 번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불 꺼진 방에 주저앉아 제발 그 프로젝트 파일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결국은 텅 빈 외장하드를 들고 가까운 업체에 찾아갔다.

고장의 원인은 역시 생각하던 것이 맞았고, 월세에 두 배가 되는 가격을 내고 수리를 했다.

90퍼센트를 살렸지만, 프로젝트 파일은 없었고, 지난 두 달의 시간이 삭제됐다.


생각해보면 백업을 게을리했다.

외장하드와 관련된 사건은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랩실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저장하지 않은 채 프로젝트 파일이 멈추거나, 외장하드가 인식을 못하는 사고도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작업자 특히 사진이나 영상 매체를 다루는 작업자라면

데이터를 3중, 4중으로 백업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이를 위해 거금을 들이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겪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작가 Arif Al Nomay 역시 같은 악재를 겪었다.

2014년 예멘이 전쟁을 겪기 1년 전, 그는 수도 Sanaa에서 열린 여름 축제를 촬영했다. 그 후 정전으로 인해 그의 컴퓨터에 생긴 오류로 인해 대부분의 데이터가 손상되었다. 손상된 픽셀로 뒤덮인 사진과 내전을 시작한 예멘. 그의 사진은 마치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예멘인들의 일상과 행복처럼 보였다. 그리고 데이터 손실로 입은 좌절감은 새로운 작업이 되었다.

작가  Arif Al Nomay의 작업
https://wepresent.wetransfer.com/story/arif-al-nomay-corrupted-files/


디지털 시대에 예술가는 작업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 하는 욕망은 끝없는 백업으로 현실화된다.

손바닥에 오롯이 놓인 네모 박스 안에 누군가는 자신이 존재했던 그 순간을 담아 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생의 기록을 담아 놓기도 한다.

그 불안정한 박스가 읽히기를 거부한다면, 그때 예술가와 작업의 의미는 어떻게 변형되는 걸까.


악몽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욱 궁금해졌다.

디지털 시대의 예술가와 작업은 무엇인지, 어떤 공생 관계인지 하는 물음이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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