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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Oct 11. 2022

Ep.14 - 죽거나 혹은 살거나 DOA (2)

업의 슬픔과 기쁨





광고회사의 신입채용은 이제 거의 볼 수 없다. 비단 광고회사 뿐이겠냐만은, 신입을 뽑아 가르치고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대부분 퇴사 한다는 기사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MZ세대가 주를 이루는 신입사원들의 퇴사이유를 몰라 기업들은 허둥지둥이다. 86세대의 핵심인 상무, 부장들은 아들, 딸 같은 신입사원들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다. 회사는 하루가 바쁜 업무에 바로 일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고, 그 경력도 쉽게 믿을 수 없어 지인의 지인, 인맥까지 동원한다. 회사, 팀 분위기와 핏하게 맞고 같이 갈 수 있는 직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 중 다수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직을 하거나, 업계를 떠난다. 3년도 길다, 2년만 있어봐도 바뀌지 않는 업계 관행, 납득할 수 없는 회사의 방향과 결정, 매일 보아야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300%까지 채워준다. ‘머리속에 아직 아이디어라는 게 남아 있을 수 있구나' 할 정도로 즙을 짜내는, 밤 10시에 마쳐도 ‘대중교통 타고 퇴근 할 수 있겠어', ‘친구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이야' 라고 느끼며 올빼미가 되어가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광고인의 애환이 있다. 그런 애환을 꾸역꾸역 치환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텔리'로 자위하기도 한다. 동료가 의자에서 끝내 일어서지 못하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들이 그 세계에는 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는 사람들은 또 있기 마련이다. 배운게 도둑질이라 철판깔고 버티는 사람과 광고를 정말 좋아하는 사랑꾼 두가지 부류로 쉽게 나뉜다. 광고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앞서 말한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도 그들에게는 뛰어넘기 좋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보다 할 수 있는 방법과 솔루션을 찾아, 무던하게 장애물을 뛰어넘어 달콤한 성취를 달성한다. 앞서서 끌어주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며, 아예 비켜주기도 하면서, 궁극의 목표를 달성한다. 언제나 그랬듯, 해답을 찾는 것처럼. 단단한 신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시도하는 정신, 맡은바에 대한 책임감과 갈고 닦은 능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동원해 즐겁게 일하고 상황을 즐긴다. 세상에 불평불만 하지 않고 마주치는 문제를 속속들이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게 수 많은 광고인 중, 단 하나의, 단 한명의 고유명사가 된다. 한 때 나의 꿈이었던것들은 어느덧 모래처럼 손을 모아도 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결국, 나는 그 단계를 밟지 못했다. 다수가 하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을거라 굳건히 믿었던 알량한 자존심과 함께 바닥 깊숙이 가라앉았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유지하지 못했다.’ 는 핑계로 패인을 분석한다. 더 좋은 방향,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구덩이처럼 뻔히 보이는 그 과정속으로 완연히 나를 던지지 않았다. 한 발 뒤에 머물러 눈치를 보고, 계산을 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나와는 쉽게 타협해버리고는 타인과 그렇게 쉽게 타협할 수 없다는 것에 분개했다. 다른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엄연한 내 기준 속에서.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짤 때마다 실제 진행할까봐 전전긍긍하고, 편하고 어렵지 않은 방법을 가장 먼저 찾으면서 내 자존감을 스스로 똘똘 구겼다. 나오는 아이디어는 족족 뻔하고 신선하지도 않고 형편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정신 뿐만 아니라 몸과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십분 느꼈다. 내 몸의 컨디션을 최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유지했었으면....하루를 멀다하는 밤샘 야근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비루한 몸이었다. 피곤하고 몸이 무거우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그 데미지는 업무에도 자연스레 영향을 끼쳤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커져가면서 버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했다. 주말 이틀을 쉬어도 머리속에 업무로 잠식당한것 같이 답답하기 일쑤였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출근할 생각에 몸이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정신과 몸은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지쳐갔고, 횟수로 2년이 되는 달이 돌아오자 더 이상 재기를 하고 싶은 마음까지 싹 가셨다. 그렇게 나는 링위에 흰 수건을 던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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