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슬픔과 기쁨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넣어 출근한다.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오직 폰에 집중하는 직장인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우리 사회 아침 출근의 모습은 이리도 힘겹다. ‘오늘은 또 어떤 다이나믹 한 일이 있을까' 겨우 제쳐두었던 회사일을 머리속에서 꺼내어 정리하며 10시쯤 맞추어 출근한다. 건설업, 제조업 노동자들이 해가 뜨는 6,7시부터 일하는 것에 비해 두, 세시간이 늦다. 그들은 해가 지면 퇴근하지만 머리좋고 능력놓은 광고인이라도 퇴근 시간을 가늠하지는 못하고 해가 져도 회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들어오긴 쉽지만 문을 열고 나가는 일은 하루를 멀다하고 고되다.
오전 시간, 클라이언트 메일을 확인하고 진행중인 사안에 맞추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맡겨놓은 제작물의 단계를 체크하고, 협력사들과 통화, 메세지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기나긴, 멈추지 않는 야근의 여파로 입맛은 하나도 없다. 어제는 뭘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래도 살거라고 들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커피를 마시면 그제서야 바이오 리듬이 겨우 돌아온다. ‘이제 일 할 준비가 되었구나' 하고. 점심부터는 미팅의 향연이다. A건의 미팅을 들어간다. 프로젝트 담당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모니터 자료와 말들이 섞여 허공에 떠 다닌다. 핵심만 간단히 정리해 메일 공유를 부탁한다. 자리로 돌아가기 무섭게 30분 뒤, B건의 회의를 한단다. 그 30분 사이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온다. C건의 일정을 조금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이사님께 보고를 해야하니 자료 준비를 해달란다. 땅이 꺼질듯 한숨이 나온다. 대표가 웃으면서 방을 나온다. 그가 웃을때가 가장 불안하다. 또 새로운 일이 들어오는 건가.
클라이언트 잡과 회의를 마치면 등 뒤에서는 아주 예쁜 노을이 지고 있다. 근처 사무실 여기저기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 시간에 퇴근해 본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퇴근하는 직장인 인파속에 잠시 속했다가 식당으로 빠지거나, 사무실에 음식을 시킨다. 모두가 다 입맛이 없어 떡볶이, 순대, 튀김의 뒷처리가 간편한 분식을 시키고, 패잔병처럼 모여 살기 위해 먹는다. 그 뒤가 어엿한 메인스테이지. 저녁 7시, 클라이언트가 퇴근하는 그 시간이 우리의 자유시간이자 해방의 시간.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니 이제서야 기획서를 쓰고, 아이디어 디벨롭 회의를 진행한다. 프리젠테이션 장표를 채우려고 적절한 이미지를 가공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렇게 일하다보면 새벽 2-3시가 된다. 현재 우리의 여정, 오늘까지의 여정을 마크하고 겨우 퇴근한다.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건지 의문은 가시지 않는' 하루는 그렇게 허망하게도 지나간다. 업태와 직종을 따라 하는 업무도 세부내용도 다르지만 광고인의 하루는 거의 이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 땅에서 광고하시는 분들 모두 오늘도 수고가 많다. 작은 응원과 존경을 보낸다.
일본의 광고회사 ‘덴츠'에서 2015년 여직원이 운명을 달리했다. 한 달 평균 105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무를 하다, 사택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했다. 그는 평소에도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지속적으로 고통받았다. 덴츠의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라고 다를까. 야심한 시간 책상에 앉아 근무하다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한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광고업의 잘못된 관행을 이야기하자면 밤을 샐 수 있을 정도다. 전형적인 갑,을 문화를 기반으로 아니 갑,을이면 다행인 병,정까지 나오는 대대행 방식도 존재한다. 이 구조에서 성장한 자들은 자기 존재의 전복처럼 느껴질까봐 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스트레스는 일상이고, 우울증, 대인기피,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있다. 타 회사와의 경쟁에서 팀별 경쟁으로 팀의 경쟁에서 개인의 경쟁으로 프레임은 쉽게도 변한다. ‘모두가 버티는데 너는 왜 못 버티냐', ‘힘들게 일 안 하는 사람이 어딨냐, 다 힘들다’ 라는 저변에 깔린 인식이 은연중에 모두를 침식시킨다. 대중들을 설득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고, 몰아가는 것은 그들에겐 일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