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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Nov 24. 2022

꺽이지 않는 마음 - 변방의 아시아 축구(1)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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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이 막이 올랐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는 개최국인 카타르가 자동진출을 했고, 나머지 5팀이 본선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이, B조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순위대로 진출을 확정지었다. 각조 3위끼리 결전을 치르는 플레이오프는 사커루 호주가 아랍에미리트를 잡고 막차를 탔다.


개최국 카타르는 6개월 합숙 등 오일머니로 엄청난 후원을 했지만서도 1차전 에콰도르에게 무기력한 경기로 패한 후 무슨 수를 써도 결국 넘지 못하는 실력의 한계를 지적당했고, 아시아의 무대를 호령하던 탈 아시아급 전력의 이란까지 잉글랜드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카타르는 개최국 어드벤티지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날카롭지 못한 축구로 자국 팬들에게 외면 당하며 패배했다. 중계에 잡힌 여러 카타르 국민의 표정이 그날의 결과를 참혹하게도 말해주었다.


이란은 9월 대회 2달전 또 그 감독, 케이로스로 수장을 바꾸고 자국의 흉흉한 정치 분위기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지 않자 국내 중계를 급하게 끊어버리는 등 경기 시작 전 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링 위에 오르자 마자 속절없이 두들겨 맞았다.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지는 경기를 시작해보니 바로 알 수 있었으며, 유럽 피지컬에 아시아 축구 특유의 끈끈함을 갖추었던 이란의 모습이 무너지기 까지는 1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고, ‘원정의 무덤’이라는 해발 1270m 아자디 스타디움의 주인으로 만날때마다 우리가 두려워했던 이란의 강력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고,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고,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물론 지고 있으니 침대축구를 시전할 시간도 없었다. 부상당한 골키퍼의 상태를 알고도 빠른 교체로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 점은 경기 후 뭇매가 되어 돌아왔다. 월드컵 때마다 매운 고춧가루를 뿌려대던 중동의 강력한 모래바람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흐트러졌고, 마당쓸고 동전줍듯 이란과 1차전을 치른 잉글랜드는 무난한 조편성의 행운에 더해 모든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며 월드컵 우승을 위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반코트 게임을 하며 몸 풀듯 90분 동안 좋은 스파링 파트너와 경기했고 선수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뻥축구‘의 오명에 휩싸이던 잉글랜드는 새로운 팀으로 변모했고, 이란은 잉글랜드의 분위기와 전력을 올리는 경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시아 2개 팀의 졸전이 이어지자 언론에서는 남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축구의 체급차이를 운운하며 한계를 명확히도 집어내기 시작했고, 뒤 이어 이어질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일본 한국의 경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모두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우루과이 축구 강호들과의 1차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시아 국가는 월드컵 승점 자판기가 되어야 하냐는 듯 아시아 참가국을 싸잡아서 때리기 시작했다.


아시아 국가가 줄줄이 무너져 내려가면서 희망을 잃어가는 찰나 역시나 공은 둥글었고 대회의 가장 큰 변수가 생겼다. 마지막 퍼즐 월드컵을 들어올리려는, 메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많은 스포츠 관계자들이 우승후보로 꼽은 아르헨티나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잡아낸 것. 마침내 코파아메리카 우승을 해내기도 했고, 최고의 분위기로 36경기 무패행진을 이어온 상대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잡을거라 생각한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말 그대로 언더독의 승리. 사우디아라비아는 끈질긴 수비에 이은 깔끔한 공격 두방으로 거함 아르헨티나 침몰시켰다. 강팀을 상대로도 라인을 내리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선수들의 응집력으로 극복하며 대등하게 맞서 싸워 ‘원팀’이 되었기에 얻고자 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것을 노력과 땀으로 몸소 보여주었기에 감동은 배가 되었다.


수비에서는 뒷공간을 파고드는 상대 공격수들의 스타일을 예측하고 예리하게 오프사이드 전술을 사용했고, 공격에서는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 여러 루트의 공격으로 크랙을 내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가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을 투입해서 성공한 첫 골과, 사이드에서 시작해 헐거워진 상대 수비 사이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두번째 골을 보면서 그들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가상의 훈련을 얼마나 잘 진행했는지 과정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결국 약팀은 간결하게 그들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내려고 계속 시도 해야 하고, 많지 않게 오는 찬스에서 결정타를 날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진출하면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여준 그들은 더욱 발전해 세계의 무대에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해내었다. 가져온 무기를 꺼내어 보여주기가 힘들 뿐 사우디가 갈아온 그 창은 아르헨의 방패를 뚫기에는 날카롭기 그지 없었고, 두 번의 카운터 펀치를 맞은 아르헨티나는 정신을 차리고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급한 마음이 더해진 나머지 그들의 공격에서 디테일이 떨어져 버렸고 그렇게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월드컵에서 우여곡절 없는 팀이 어디 있으랴. 비록 패했지만 첫 경기가 아르헨티나에게는 큰 보약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르헨티나는 가장 멀리 있는 가능성을 잡기 위해 카타르로 온 팀. 시련을 겪은 아르헨티나는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들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것이다. 실수를 인지하고 만반의 준비를 통해 환골탈태 하여 돌아오는 것, 그리고 당당하고 멋지게 다시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강팀의 무서움이고 모든 팬들이 그런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터이다.


우리와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서아시아 3개 국가가 1차전을 마친 후 패배와 승리가 공존했다. 승리를 거둔 사우디에서는 경기 다음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기적의 날을 축하했다. 왕세자도 어깨동무를 하고, 엎드려 신께 기도하는 사우디 선수의 승리를 지켜보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지만 매번 아시아 국가들의 승리는 왜이리 슬픈지 반문했다. 축구에서 아니 축구를 넘어 언제나 세계의 변방이었던 우리는 우승이라는 꿈은 쉽게 꿀 수도 없고, 세계 무대에서 단 한 경기 이기기만 해도 마치 그 대회를 우승한 것 마냥 모든 선수와 스태프들이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다. 멀리 고국에서 응원을 온 열렬한 서포터도 자국에서 간절한 응원을 하는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몇 나라를 제외하고서는 서구 열강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던 고통과 아픔의 역사를 우리 모두 나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영원한 약체는 없고, 꺽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아시아 축구를 보면서 느낀다. 우리가 폴란드를 꺾고 월드컵 첫 승리를 했던 2002년 그 당시 느꼈던, 무엇 때문이지 알 수도 없는,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던 뜨거운 응어리들을 함께 느끼고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시아 국가도 월드컵 4강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우리처럼 함께 발전해 더 이상 변방의 축구가 아닌, 이변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게 아닌, 강호들도 무릎을 꿇게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아시아 축구의 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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