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해요. 그 정도면...
넘버 2의 고민
충분해요. 그 정도면…
그는 언제나 단정하고 멋이 있었다. 다림질이 잘 된 밝은 색깔 셔츠를 입었고, 잘 웃지는 않았다. 가끔 마음이 놓일 때는 짓궂은 표정이 드러났는데, 긴장이 풀린 순간이라고 해야 조금 더 정확할 듯하다.
큰 매출을 견인하는 브랜드를 관리하며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였다. 오랜 세월 묵묵히 일 해온 그는 노련했다. 본인의 기준이 합당한 지 늘 성찰했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 말을 아꼈다.
회색지대로 느껴지는 판단 기준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는 세션들이 이어졌다. 몰라서가 아니라,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더 나은 기준을 고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런데요, 코치님. 제가 조금 더 전략적으로 대표님과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날도 큰 흐트러짐 없이 세세한 부분의 명확성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대표님과 전략적인 대화요? 접근 방식이나 의견 조율 부분에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전략적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전략’이라는 단어는 너무 당연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
(코칭을 배우고 활동하면서 참으로 획기적으로 배운 것이 있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실제 쓰임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지하고 적절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납득’이 와야 한다.)
다시 물었다.
“대표님과의 대화를 어떻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대표님이 ‘편하게 피드백 주세요’라고 하셔서 정말 편하게 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편하게 하라고 하셔서 편하게 했는데, 막상 하고 나면 영 별로예요.”
“뭐가 별로신데요?”
“너무 적나라하게 말씀드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을 다시 검토하세요. 리스크가 있는데 왜 모르세요?’라든가, ‘마음이 그렇게 약하셔서 어떡해요. 결정하셨으면 다들 지시에 따르라고 하셔야죠.’ 그리고… ‘좀 잘하세요. 똑바로 요.’ 이런 식으로 말씀드린 거예요.”
“어느 부분이 별로이신 건가요?”
(두 번 물었다.)
“너무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솔직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는 스스로 답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형제들 중 맏이예요. 부모님도 늘 그러셨어요. ‘네가 맏이니 의견을 강하게, 뚜렷하게 말해라. 본보기를 보여라.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가족 모임에서도 제 주장이 가장 크고 세요. 회사에서도 대표님께 그런 태도가 묻어 나오는 걸까요?”
“환경이나 구성원에 의해 자라면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끼치기도 한다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본인이 솔직하게 말씀하신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 솔직함이 거슬리신 걸까요?”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답을 찾지 못할 때 짓는 표정이다. 잠시 기다린다. 기다림이 길어질 때는 질문이 적절하지 않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답니다!! 다르게 묻는다.)
“본인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린 목적이 뭐였을까요? 대표님께 상처를 주기 위해 그러신 건 아니겠죠?”
(대략적으로 바운더리를 좁혀준다. 나쁜 의도, 좋은 의도, 혹은 그냥 눈치 없음 그 어디쯤 일 것이다.)
“아뇨, 상처를 왜 드리겠어요. 대표님과 일하는 거 좋습니다. 제 관점에서 리스크를 포착한 부분을 말씀드린 거예요. 누구 탓이나 잘못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살펴보시면 더 좋은 방향과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죠. 그런데 영 찜찜해요.”
“방금 말씀하신 걸 정리해서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코치, 네가 정리 좀 해주면 안 돼?' 하는 신호였다. 모르는 척 물 한 모금을 넘긴다.
(버텨라, 오 코치. 넘어가지 말고. 고객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나도 그냥 정리해 주는 게 훨씬 쉽다고요!)
“진심이었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린 거예요. 저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황 설명하신 걸 들으니 저도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표현하면 그 진심과 배려가 더 잘 전달될지 말씀해 주세요.”
*** 강하게, 크게 표현하는 것이 곧바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언어로 해야 한다. 연습하면 된다. 먼저 뱉지 말고, 연습한 대로 하자. 상대가 자주 쓰는 단어를 활용하고, 얼마나 따끔한 말인지 언급한 뒤 담백하게 전하면 된다. 치과에서 긴 의자에 누워 의지할 곳이라고는 내 두 손뿐일 때, 주사가 얼마나 따끔할지, 드릴이 얼마나 시끄러울지 미리 알려주면 버틸 수 있는 것처럼.
***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건, 상대가 그 말을 다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준비시키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게 목적지다. 혼자 떠드는 건 연습할 때 하자.
*** 당신의 멋짐이 있는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건 당신이 가진 통제권 안의 일이다. 그렇게 합시다, 좀! 아자!
‘낀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학교 교육을 마치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돈벌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돈벌이의 중심, 바로 ‘회사’라는 조직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낀 자’는 회사라는 조직 안의 모든 구성원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조직의 구조 안에 끼어 있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문제와 문제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끼어 있는 건 알겠는데 어렵고 힘도 들지요.
그 안에서 웃고, 울고, 또 울고…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나아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조금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낀 자’에게 그 작은 조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응원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한 편 한 편 쓰고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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