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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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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Sep 01. 2021

사랑의 다른 이름은미련 일지모른다

전 연인과 여행을 갈 수 있다고? - 드라마 <이벤트를 확인하세요>

 해어지기 직전의 연인들이 서로의 파트너를 바꾸고, 이미 헤어진 연인들이 같은 숙소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연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보편적인 설정이다. 듣기만 해도 ‘헉’ 소리 나는 자극적 설정에 방송 초기 시청자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곤 했다. 자극적이기만 한 이런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려와는 다르게, 전 연인과의 관계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방송은 시청자들의 엄청난 공감을 끌어내며 화제성을 자랑하고 있다. 헤어졌으면 끝이지, 뭘 저런 방송을 다 하냐는 머릿속 생각과는 달리, 가슴에서는 잊고 살았던 누군가에 대한 미련이, 아름다웠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처럼 감정은 모든 개연성을 뛰어넘는 제1의 조건이 되곤 한다. 차가운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 가능해지는 게 바로 사랑, 그리고 ‘감정’ 때문이다. 



# 전 남자 친구랑 여행 가는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여기,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 하나로, 상상도 못 할 결정을 한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전 남자 친구와 당첨된 이벤트 여행길에 오른 드라마 <이벤트를 확인하세요>의 주인공 하송이이다. 밴드 보컬인 남자 친구 도겸으로부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은 송이는,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커플 이벤트 여행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출발 당일까지 망설이던 도겸 역시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게 되며 이 기이한 여행이 서막을 올린다. 이번 여행이 도겸의 마음을 돌릴 기회라고 생각한 송이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도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말 한 치의 미련도 없어 보이는 도겸의 모습에 낙담하는 송이 앞에, 새로운 인연이 등장한다. 바로 이 여행의 가이드 지강이다.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할 생각으로 여행을 왔던 도겸은 지강과 송이의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끼고, 생각과는 다르게 송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도겸과 송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 ‘감정’이라는 개연성

 며칠 전 유튜브에서 스쳐 지나가듯 이 드라마의 티저 영상을 보고,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 아니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전 연인과의 여행이라니, 물고 늘어지는 것을 딱 싫어하는 나에게는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웬걸, 드라마를 보다 보니 이것보다 현실적인 드라마가 있겠냐 싶었다. 아름답고 깔끔하고 미친 듯 불타오르기만 하는 그런 ‘드라마식’ 사랑이 아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치졸하고 미련 가득하고 또 끝나게 되는 현실적 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거부감을 가지던 시청자들 역시, 사랑의 실패로 아파하고 이를 되돌리려고 애쓰는 송이의 행동과 감정에 이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청자도 사람이기에,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아팠던, 그리고 미련 가득했던 사랑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 없다. 

    

# 사랑은 아플수록 아름답다     

 이처럼 드라마 <이벤트를 확인하세요>는 개연성을 부여하는 장치로서 일종의 만능 키인 감정과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끌고 들어온다. 흔한 전략은 아니다. 감정선 하나로 드라마를 끌고 가기에는 극의 흥미도 떨어지기 쉽고, 보편적 경험에 치우치다 보면 일상과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본 드라마는 전 연인과의 여행이라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보편적이지 못한 이야기 전개와 헤어짐 이후 찾아오는 미련과 잔류하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매우 보편적 감정의 적절한 교집합을 통해 흥미와 공감의 요소를 모두 잃지 않는다. 긍정적 사랑의 감정보다는 현실적 사랑의 감각에 집중하며 포화된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흔히들, 아픈 감정은 아름다운 감정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들 한다. 설렘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긴 로맨스 소설 및 웹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현실적이고, 그래서 치졸하기까지 한 사랑 이야기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방송일을 기다리며, 송이의 미련한 사랑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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