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검은태양>이 작품적 허구의 세계를 넘어서는 방법
본디 비밀이야기가 재미있는 법이다. 꽁꽁 감출수록 더 궁금한 법이다. 대한민국에서 ‘국정원’이란 딱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한다. 베일에 싸여있어 궁금한 존재 말이다. 그래서인지 국정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유독 찾아보기 쉽다. 특히나 국정원이 하는 업무는 국가적 비밀로 유지되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서사가 무궁무진하고 제한이 없다는 것 또한 작품 소재로서 국정원의 매력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극복해야 하는 한계점이 하나 있다. 바로 ‘뻔함’이다. 너무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번뜩이는 참신함이나 차별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최근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MBC 드라마의 기대작 ‘검은 태양’이다. 국정원이라는 너무 비밀스럽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뻔해진 이 소재를 본 드라마는 어떻게 소화할까?
매 순간 이어지는 반전 요소들
죽은 줄 알았던 국정원 요원 지혁이 발견되며 극은 시작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을 잃은 지혁, 검사 결과에 따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장면에서 대다수 시청자는 지혁의 기억을 지운 사람이 그의 동료를 죽이고 지혁을 배신한 국정원 요원일 것으로 예측한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기억을 지웠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극의 전개는 기억을 지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예상하는 찰나, 엄청난 반전이 밝혀진다. 바로 지혁이 스스로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극 전체를 이끌어갈 수도 있는 ‘기억을 지운 자’의 존재가 지혁 자신으로 밝혀지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극의 전개는 진행된다.
이 외에도 한 회차 중간중간 작고 큰 반전이 이어지며,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끔 한다. 왜소한 운전기사인 줄 만 알았던 남자가 화양파 두목으로 등장하는 설정도 비슷하다. 본 드라마의 특성상, 지혁이 기억을 되찾고 배신한 요원을 찾아내는 극 전체의 큰 흐름은 누구든 쉽게 예측할 수 있기에 이러한 반전의 요소가 반복되며 극의 지루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 국정원에 진심이다.
장르물에 진심인 MBC 드라마답게, 국정원물 드라마도 유독 많았다. 국정원 요원들의 임무 수행 이야기를 다룬 7급 공무원,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위장하고 살아가는 국정원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내 뒤에 테리우스 등의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위 드라마들은, 사실 국정원에 대해 다루면서도 그 내막의 이야기와 국정원 조직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7급 공무원>에서는 요원 간의 로맨스와 비밀스러운 임무에 초점을 맞추었고,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는 국정원이라는 조직의 은밀함에 기대어 사실상 허구에 가까운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드라마 <검은 태양>의 김성용 PD가 자신 있게 밝히듯, 이 드라마는 국정원이라는 설정에 진심이다. 단순히 국정원이라는 설정만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에 대한 내밀한 조사와 자문을 바탕으로 현실감을 끌어올렸다. 근 10년간 국정원에 직접 방문해서 촬영한 드라마는 없었을 것이라는 김성용 PD의 발언은, 그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작품적 허구의 영역으로 재구성되었던 국정원에 대한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의 탄생을 알려준다.
전형적 인물 설정의 아쉬움
그러나 인물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전형적으로 설정된 점은 조금 아쉽다. 지혁은 내집단의 배신으로 인해 동료를 잃은 후 냉담해진 남성 요원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며, 첩보물이나 수사물에서 그려졌던 남성 주인공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에게 배정된 초짜 파트너 유제이, 지혁은 그녀에게 “못 들었나? 내 파트너 죽었어요. 일 년 전에 둘 다”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게 웃는 제이. 차갑고 상처 많은 남성 요원과 그를 돕는 티 없는 초보 여성 요원. 이 역시 여타 수사물 드라마에서 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 설정이다. 아직 극의 초반부이기에 이 둘에게 어떤 반전이 있을지, 어떻게 입체성을 보여줄지 예상하기 이르지만, 반전 맛집 드라마인 만큼 인물 설정에도 못지않은 반전이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매회 예상할 수 없는 반전과 빠른 극 전개, 배우 남궁민의 미친 연기력, 그리고 화려한 액션까지. <검은 태양>은 다채로운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장르물 맛집 MBC답게, 또 하나의 걸작이 탄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