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4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영 Dec 02. 2021

조선에서 양장본 책을 읽는 사람들

<옷소매 붉은 끝동> 낭독회 티져 영상에서 찾는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

 콘텐츠의 풍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뭘 봐야 할까’라는 문제는 꽤 중요해진다.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방송국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봤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프로그램 감상 여부를 결정한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대부분 방송사에서 드라마 방영 전부터 티져 영상을 공개하고 각종 방식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주 유튜브를 보던 중, 조금은 특이한 티져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원작 낭독회 영상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배우들이 나와 딱딱하게 원작을 읽는 정도이겠거니 생각하였는데, 반전이었다. 실제 드라마 세트 환경에서 배우들이 배역의 옷을 입은 채 낭독을 하고 있었다. 조선의 궁과 옷, 그리고 오늘날의 빳빳한 양장 책의 오묘한 조화를 보고 있자니 이질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그 요묘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내용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로맨스 소설의 한 가운데 들어온 것 마냥, 두 주인공의 서사에 완전히 빠져들어 버렸다.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낭독회 영상을 통해 알아보자.


#케미 맛집

 영상 첫 챕터는 두 인물의 성격 및 외모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큰 눈망울, 복숭앗빛의 홍조, 밝고 활기찬 모습의 덕임과 굵은 얼굴선, 다부진 체격의 이산의 모습이 대조되며 제시된다.

 사실 굉장히 전형적이기도 한 캐릭터 설정이다. 밝고 티 한 점 없는, 여리여리한 궁녀와 세상 근심을 혼자 안은 채 매서운 표정을 한 군주, 로맨스 소설에 빠질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인물의 대조되는 모습이 화면으로만 제시되었다면 오히려 프로그램의 특색이 떨어지겠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강미강 작가의 섬세하고 간질간질한 문체, 그 매력을 더하는 두 인물의 대조되는 목소리가 합쳐지며 사극형 로맨스가 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아련한 사랑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시점에서 전형적 인물의 설정은 뻔하디뻔한 소재가 아닌, 로맨스의 필승 공식으로 변모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면서도, 로맨스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인물 설정인 것이다.        


       

#서로 다른 ’ 기억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두 인물의 서사를 추적해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두 인물의 첫 만남을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장면과 기억을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산에게 덕임의 첫인상은 순진함을 지우기 위해 드센 척하던 눈망울로 기억된다. 이와 함께, 이산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며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덕임의 모습, 그러한 눈망울에서, 그리고 감촉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산의 모습이 차례로 제시된다. 덕임과 이산의 첫 만남이 일반적인 궁녀와 왕의 관계에서 와는 달랐음을 추측하는 한편, 이산에게 어떤 이의 아픈 기억이 있는 것인지, 그 기억이 덕임과 어떻게 관련되는 것인지 시청자들은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반면, 덕임은 남들은 모르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해 이야기하며, 첫인상을 털어놓는다. 냉철한 군주라는 대외적 이미지와는 달리, 쉽게 욱하고, 또 그러고서는 금방 상대에게 미안해하는 인간적 모습을 지녔다고 말하는 덕임의 독백에서 덕임과 이산이 남들은 모르는 모습을 공유할 정도로 깊은 관계임을 추측하는 한편, 차분하면서도 아련한 덕임의 목소리는 둘의 사랑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알려준다.          



 #달콤하지만은 않은 사랑

  영상이 끝을 향해 달려가며, 둘의 관계가 심화되었음을 알려주는 대사와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상에서 ‘밀고 당기기’라고 담백하게 묘사된 이 챕터에서 두 인물의 감정은 매섭게 몰아친다. 같은 화살을 잡은, 꽤 가까운 거리에서도 이산은 덕임과 가깝지 않음을 느낀다. 인물 설정만 보고도 쉽게 예측했겠다만은, 궁녀와 왕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크게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은 사극 로맨스의 단골 등장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그 ‘애틋함’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드라마의 성패를 결정 짓는다. 대사 한 줄, 배우들이 주고받는 눈빛, 분위기의 연출 등 한 끗의 차이로 시청자는 뻔함과 애틋함을 넘나드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청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드라마의 킬링 포인트 대사 한 줄로 영상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선뜻 붙잡지 못할 붉은 옷소매가 달콤할 수만은 없고 

오히려 그 끝동은 오래도록 빌려온 양 새침하게 밀고 당길 따름이었다.”

 이산의 묵직한 중저음과 덕임의 몽글한 목소리가 대사를 주고받으며, 슬픈 사랑의 애틋함을 더한다. 이 지점에서 조금은 생소했던 드라마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며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을 둘의 사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전형적 인물 설정과 소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극 맛집 MBC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설 원작의 강점인 감성적이고 섬세한 대사를 가져오면서도, 두 인물의 케미를 통해 텐션을 유지한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놓칠 수 없는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포왕 고영배> 고란의 소영배, 마침내 DJ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