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영 Apr 15. 2021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개 멋진 나를 위하여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검블유는 존나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착한 여자도, 배려심 넘치는 여자도 아니다. 똑똑한 여성을 그리는 미디어의 방식은 지나치게 왜곡되었다. 뚜렷한 목표 지향성, 강력한 자기 주장 등은 똑똑한 남성의 캐릭터에서는 매력을 더하는 요인이 되지만, 여성의 캐릭터에서는 '드센' 이미지로 치환되며 매력을 감퇴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워커홀릭 편집장을 세디스토로 폄하하는 이들에게 앤 해서웨이가 '그녀가 남자였다면 일을 잘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했겠죠' 라는 일침을 날리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로 인해 똑똑한 여성들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기 위해 이 외에도 배려심, 수려한 외모, 둥근 성격 등의 장점을 가져야만 했다.  모델과 몸이 뒤바뀐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Drop dead Diva>에서도, 충분히 유능한 주인공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기 위해, 노래, 춤, 사교성 등 불충분하게 많은 재능을 부여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뚱뚱한 외모' 하나로 이 모든 장점을 갖지 못한 타 변호사에 비해 낮게 평가받는 것은 정말이지, 코미디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검블유의 여성들은 결코 '착한' 여성은 아니다. 여기서 굳이 '착하다'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듯 싶지만, 남을 위해 성공을 양보하고 배려를 퍼붓는 그런 캔디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야망넘치고 자기의 목표를 위해선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아, 다만 욕망을 위한 불법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며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자기 의식이 확고한 여성이다. 첫 회, 회사에서 잘리고 모든 커리어를 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한 타미는 청문회에서 자신을 노리는 의원의 약점을 공개한다. 결코 '선한' 방법은 아니다. 확실한 증거 없이 대중을 '현혹시킬' 정도의 증거 만을 가지고 의원을 궁지에 몰아넣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분노에 가득 찬 의원과 타미, 청문회가 끝난 후 둘의 대화가 이어진다. 








 -난 너 같은 년이 제일 싫어. 지 욕망에 눈 멀어서 지 살길만 강구하는.


 


-왜? 그럼 안 돼? 내가 개새끼면 안 돼?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되는데?


 


- 뭐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


 


- 뭐 부모님 원수를 갚거나 전 남편한테 복수하거나 그런 이유 기대하는 거야?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근데 니 욕망은 불법이야. 부디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길 바래. 






욕망엔 이유가 없다. 욕망이 이유가 될 순 있다만, 욕망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한없이 배려심 넘치는 착한 인생을 살아 오던 중,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녀가 되는 캔디와 달리, 우리의 욕망에는 이유가 없다. 하고싶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그 욕망이 불법적이지 않은 한, 그 누구도 이를 비난할 수 없다. 욕망에 눈이 먼 누군가의 모습이 거슬린다면, 제대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의 잘못이 아닌, 그에게 질 것 같다는 당신의 찌질한 욕망에 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드세다라는 말로 폄하되어 온 여성의 능력은 그의 대사를 통해 드디어 면죄부를 부여받는다. 게임 끝. 어딘가 부족하지만 착한, 웃는 모습이 예쁜 캔디형 캐릭터로부터의 결핍을 느껴왔던 시청들은 이제 드라마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장면의 가장 큰 결함이 있다. 바로 '표절' 의혹이다. 비슷한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영화 '미스 슬로운'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첫 두 회의 구성이 미스슬로운의 청문회 장면과 완전히 겹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이 리뷰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꽤 컸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 장면이 표절이라면, 전체적인 드라마의 가치가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결국 쓰고 있는 이유는 ' 내 욕망에는 가치가 없다'는 타미의 외침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결함을 알고 보더라도 권도은 작가의 대사는 정말 쫄깃하다. 김은숙 작가 밑에서 오래 일한 덕인지 머리를 맴도는 막연한 생각을 시 한줄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면서도 무척이나 담담하게 대사를 풀어낸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대사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감성적이다. 너무나 ‘세련되게' 대사를 쓸 줄 안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이다.


유독 명장면, 명대사가 많은 것도 그런 탓인지 모르겠다. 항상 옳았으면 하는 타미에게 '내가 항상 옳다고 할 지라도, 남에게는 개새끼일 수 있다'라고 알려주는 브라이언의 대사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프다. 타미처럼 살아가고 있을, 혹은 타미처럼 살아가고 싶은 모든 사람이 느낄 만한 고민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너의 욕망이 누구에게나 답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개의치 말라는 것. 단순히 여성 서사로 소비하기에, 이 드라마는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결국 모든 집단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그래서 때로는 욕심쟁이라는 비난을 받는 모두에게 심심한 위로를 준다.


그러나 드라마 전반에서 보여주는 미러링의 모습( 동백꽃 필 무렵 리뷰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때문인지, 넓은 시청자 층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충분한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며, 드라마의 표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그동안의 결핍을 느껴온 나와 같은 시청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드라마일 수 없다. 넓은 시청자 층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매니아 양성은 확실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 역시 그 매니아이며, 그래서 속으로는 동백꽃 필 무렵보다 이 드라마에 훨씬 더 강한 끌림을 느낀다. 나는 존나 멋지고, 앞으로도 존나 멋질 것이기 때문이다. 10년후의 내가 이 글을 보며, 난 여전히 멋지다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속으로 되뇌이어 본다. 내 욕망에는 계기가 없다고.




작가의 이전글 영화 [헤어화]: 너도 예쁘고, 나도 예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