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
지금 나는 유럽에서 공부 중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아닌 '삶'이 가르쳐주는 인생공부 중.
나의 고향 서울은 말 그대로 급변하는 도시. 서울은 내가 살아온 만큼 아니 좀 더 빠르게 내가 다양한 변화를 겪게끔 했다. 서울, 한국도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꽉 움켜쥔 채로 마냥 바쁘게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 나라의 문화는 그곳에 속해있는 개인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한국에 살 땐 아무렇지도 않던 행동과 상황들이 종종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면 나는 이제 다른 문화에 적응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내 안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캄캄하고 무거운 무엇이, 나의 작업에 갑갑한 시야를 가져온다. 나와 나의 작업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육'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무려 24년이나 받은 교육. 나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냈던 것이다. 계속 조직생활에 익숙해지고 머물다 보면 우리는 진짜 '성장'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보수적이었고 개인(자아)이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배운 대로 하지 않는 것'이 힘들었다. 절대적인 자아를 숨기고 순종하는 착한 학생으로 살아야 내가 편했으므로.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 마음에 불만이 쌓여갔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 뿌리 깊이 한국의 교육방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유럽에 와서도 나는 끊임없이 어딘가에 속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소속감이 없으면 나는 늘 불안해졌다.
나는 나의 '마지막'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떠났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불안함도 잊고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3개월 레지던스 이후 시청에 그림도 판매되고 무언가 계속 좋은 일들만 내게 올 것 같았다. 그러나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나는 또다시 불안해졌다. 독일에 와서 쓴 일기들엔 모두 마음의 여유를 갖자.. 마음을 비우자.. 다 지나간다.. 이러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아티스트의 천국이라는 베를린. 그런데 그곳 역시 예술가들에겐 '믿는 구석'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 어디에나 그런 일이 허다하겠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 중인 외국인은 호구가 되기 쉬운 곳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독일의 작은 마을에 위치했던 커다란 아티스트 레지던스를 떠나게 되었다. 장소는 그곳을 만든 사람과 닮아있다. 나는 장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개인주의가 당연시되기에 개인이 더 소중해지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욱 필요한 이 시대에,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운영하는 장소는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서울을 떠날 때의 불안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때처럼 해방감이 훨씬 더 컸다.
예술이 가능한 문화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최근까지 머물던 장소가, 그곳의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만큼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답답하고 캄캄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그리고 그 캄캄한 공기가 내 안의 어둠과 만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뒷걸음치는 기분으로 지내왔다.
스마트 폰이 나를 이해하는 시대, 내가 평소에 듣는 음악 장르를 알아서 믹스해주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나의 취향, 데이터는 결국 마케팅에 쓰인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이 시대가 주는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귀 기울이고 공부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이렇게 매일 변화하는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리타분하고 편협한 방식을 고수하는 곳에서는 예술 또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거대한 포장지가 잠시 개인의 추한 욕망을 가려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시대에 진정성이 없는 조직은 지속될 수 없다.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교육,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환경, 학연과 지연이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곳,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이렇게 개인을 억압하는 환경에서도 개인의 역량은 뛰어나다는 것을 매번 내게 보여주는 나의 고향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의 생각이 더 이상 내가 받아온 교육에 갇혀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공부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지 않을 때 공부할 수 있고, 모르면 배워야 한다. 나의 잣대로, 내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내게 영향을 준 것들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익숙했던 공간을 또다시 떠났지만, 내가 작가로서 현재 느끼는 예술분야에 대한 불만과 더 나은 환경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 현재 진행형이다. 예술이 누군가에게 아주 유용한 포장지가 되지 않기 위해. 카뮈의 말처럼 예술이 삶의 근본적인 무용성을 완성할 수 있도록 나의 '반항'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