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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온 Jun 04. 2022

벨기에에서 첫번째로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39살이지만...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최근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뇌병변 1급장애에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30대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60대 여성이 긴급 체포되었다는 기사이다. (출처: 세계일보 2022/5/24)  30년간 장애 딸을 돌보아 온 어머니. 그 손으로 딸을 죽게 했다는 것이, 그리고 현재 그 손에는 포승줄이 감겨는 모습에 너무 슬프고 먹먹해 진다. 과연 누가 그 여성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나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 머리와 가슴으로 그 어머니가 이해가 간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기사를 접할때마다 해결책으로 안락사가 제시되곤 했다. 나는 장애인의 보호와 관리를 가족에게 전적으로 떠맡기고 있는 정부의 직무유기가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사안에서 안락사를 떠올리는지에 문제의식이 생겼다.


안락사 :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출처: 동아 새국어 사전)

이 정의에 따르면 위 어머니는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 한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안락사가 불법이지만 안락사가 합법화된 벨기에서는 어떨까? 법에서 허용하는 안락사의 정의와 기준 요건, 절차, 대상 범위 등...안락사라는 단어에 포함된 여러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함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던 중 5월 28일은 벨기에에서 안락사법이 제정된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2년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렇다면  벨기에에서 안락사를 제일 처음으로 선택한 이는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를 알게 되면 안락사법에 대해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은 바로, 마리오 퍼스트라터 (Mario Verstraete)였다.  

다행히 그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어 있어 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현지어로 영화 제목은  <Tot altijd >로 2012년에 제작되었다. (영어로도 제작되었다. <Time of my life>)  Tot Altijd . 이 두 단어는 따로따로 많이 사용되지만, 같이 쓰는 것은 낯설다. 문학적으로 만든 것 같다. '영원히 안녕.. '정도.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그의 생각을 쫓아가 보기로 했다.


영화 Tot altijd 의 포스터 


#1. 마리오와 친구들

 마리오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의 친구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 포스터에 마리오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장면을 사용한 것만 봐도 그렇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마리오이고, 흰 티셔츠를 입은 이는 친구 토마스로 의사이다. 그는 마리오의 투병 시작과 끝을 함께 한 베프 중의 베프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인 닉 발타자르는 토마스의 동생이기도 해서 영화 내용에 더 신뢰가 간다. 다른 친구들, 스펙과 린 또한 마리오 곁에서 그와 함께 하고, 마지막 날까지도 함께 했다. 


#2. 1992년.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젊고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마리오는 1992년 부인과 급작스런 이혼을 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눈에 이상을 느껴 친구 토마스를 찾아가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받게 된다. 검사 결과는 다발성 경화증. 다발성 경화증이란 뇌, 척수, 시신경으로 구성된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아, 나타는 증상들에 대응하는 것이 치료라면 치료였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중추신경계가 공격받으니 몸이 점점 마비가 되는 것이다. 마리오에게는 다리 근육에 이상이 와서 목발을 사용해야 했고 발병한 지 3년째부터는 그마저도 힘들어 전동 휠체어로만 이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밤마다 다리 경련과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마리오는 친구 토마스에게 말한다.  

 " 다발성 경화증, 이 병의 장점은 내가 이 병으로 죽지 않는다는 점이고, 이 병의 단점은 내가 이 병으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야...  " 


#3. 1998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다.  

 정치가였던 마리오는 "내가 더 이상 존엄하게 살 수 없다면,  나는 존엄하게 죽고 싶다"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 (RWS, Recht op Waardig Sterven) 라는 안락사 찬성 단체의 회원이 되어 안락사를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발표하기 시작한다. 의사인 토마스와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님은 모두 당황스러워한다. 토마스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생각을 바꾸라고 화를 내보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조용히 이해시킨다. 그러나 마리오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토마스는 그를 위해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하는 유명한 의사를 소개해주는데, 그 의사를 만나러 간 병원에서 마리오는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재활 치료사들과 재활 기계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환자들을 목격하고 더욱 절망하게 된다.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거다.     

# 2000년 4월 5일. 안락사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안락사 찬성 단체의 회원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무엇보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로서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도 그는 유명인이었다.  

공청회에서 발표하는 마리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삶을 정말로 사랑하는 만큼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면 진정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반대 발표자는  마리오가 악화되는 자신의 건강에 두려움을 느껴 이런 이기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눈덩이 효과가 발생해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킬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통증관리에 있어 많은 진전이 있는데 당신은 이에 관한 정보를 주치의에게 들었는지를 물었다. (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법제정자들이나 의료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에 의문이 생기는...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존엄하게 죽겠다는 것은 자살이며 광범위한 살인으로 의사의 전문 지식과 공모로 만들어진 살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반론자는 마리오를 향해 "당신이 살아갈 힘을 되찾길 바란다"며 마무리 지었다. 

살아갈 희망을 되찾길 바란다는 말을 듣고 있는 마리오. 영화 Tot altijd 중


# 증상이 심해지는 마리오 

  그의 능력을 존중하는 겐트 시장은 그가 편하게 출퇴근 할수 있게 집으로 차량과 운전사를 보내주었다. 나중에는 거동이 힘들어지자 재택 근무를 하게 해주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열살된 아들. 아픈 아빠의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그런 아빠를 위해 그의 침대에 함께 누워 장난도 치고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도 같이 들으며 곁에 있어줬다. 몸상태는 점점 안 좋아져 물리치료사가 집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는 대변을 가리지 못해 발생한 당황스러운 사건은 그를 더욱 절망감에 빠지게 했다. 어느 날 새벽, 그는 휠체어를 타고 조용히 강가로 나갔다. 버튼만 누르면 강물로 바로 빠질 수 있었다. 여러 차례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 결국 울면서 토마스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하는 마리오.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바라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고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마리오. 엄마가 마리오를 씻겨주는 장면에서, 자신이 아기가 되어가서 미안하다며 울먹거리고 그런 그를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 이 영화에서 나는 예전에 당연히 하던 일들을 점차 하지 못하게 되는 마리오가 느끼는 심경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영화 Tot Altijd 중에서


# 의사 친구 토마스의 변화

 토마스는 마리오가 안락사를 원할 때마다 통증은 관리하면 되지 않겠냐, 적응되면 나아지지 않겠냐면서 그의 결정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하지 못하게 되는 친구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고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가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진료해 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정기적으로 진료하던 환자들이 공허한 눈빛으로 의미 없이 삶을 연장하고 있음을 그 자신도 깨닫게 된다. 

당시 안락사 찬성 단체(RWS)의 대표 의사 프랭크 발라에스, 그는 닥터 데쓰라고 불렸다. 그는 안락사를 하는 과정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당사자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고, 그 생각이 변함없이 일관되고, 가족이나 타인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 아닌 순수하게 환자 자신의 생각임을 증인해줄 의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의 역할도 강조했다. 이에 안락사를 반대해오던 토마스는 마리오를 위해 결국 3명의 전문가 증인 중 한 명이 된다. 


# 2002년 5월, 안락사법 제정과 마리오의 안락사

 벨기에 의회에서는 2002년 5월 16일 안락사법 제정과 관련한 투표가 이뤄졌다. 찬성 86, 반대 51로 가결되었다. 같은 해 5월 28일 벨기에 국왕이 안락사법 제정을 공표하였고 네덜란드 이후 두 번째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3일 법 적용이 시작되었고, 일주일 뒤인 9월 30일 39세의 마리오는 안락사를 통해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떠나는 날 그는 9명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겁게 했고, 닥터 데쓰의 방문과 함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약을 준비해온 의사... 친구 토마스가 마리오에게 약이 든 물잔을 건네주었고 마리오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그 잔을 마셨다. 



벨기에에서 제일 처음으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이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니, 이 행위의 기준 잣대가 누군가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도움으로 보기보다는, 당사자가 진실되고 일관되게 죽음을 원하는 이의 선택을 존중해준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연명의료법이 있어 사전에 본인이 무의한 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환자의 자기결정권으로서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본다. 그에 비해 벨기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생명 종료 선택도 자기 결정권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가 영화속에 안락사를 반대하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걸 허용하면 더 많은 죽음이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음을 두려워하며 금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생각해볼 여지는 있는 것 같다. 아주 촘촘하게 대상범위와 절차를 정해서 우리가 우려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마리오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다 발견한 그의 생전 인터뷰. (출처 : focus-wtv.be28/05/2022)  

그는 말했다.

  "내가 더 이상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만나러 나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카페를 가지 못하고, 더 이상 오페라를 보러 갈 수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의미 있는 삶이 아니다."

마리오의 실제 모습 (출처: 책 Tot altijd, Lannoo출판사에서)

 마지막 순간에 난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마리오도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 것 같다.


 다시 자신이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어머니가 생각난다. 벨기에에서 이 어머니의 선택이 합법적인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30년을 돌봐온 딸과의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 보내야 했을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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