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근이 남겨준 것

- 한번 야근과 맞바꾼 사생활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by Kelly Kenye Kwon

"야! 언제 나올거야?"

"미안, 아직 다들 남아 있지?"

"남아 있기는 한데, 몇몇은 가야된다고 하고, 너 오면 더 기다리고 아니면 이쯤에서 헤어질까 싶은데......"

"벌써? 나, 아직 좀더 걸릴 것 같은데...... 어쩌지?"

"야! 무슨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시간까지 일을 해? 그냥 접고 나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 그러니까 연인들에 치이기 전, 친구들과 송년회를 하기에 적절한 날, 12월 23일이다. 대학을 2번 입학한 나는 운이 좋게도 한 학기만 다닌 학교의 친구들과 꽤 긴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각자의 대학생활을 보내고, 제 적성과 전공을 살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까지 올라와 있었다. 근 한달 간 시간을 맞춘 이 모임에 나는 아직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바로 보고서 때문이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우리 회사는 12월 셋째주 주말 이후부터는 자율 출근이었다. 하지만 실상 진정한 자율이 되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클라이언트. 즉 고객사이므로 고객사의 일정에 따라 쉴 수도 있고 쉬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 고객사는 후자에 속했고, 나의 내부 고객 즉 사수인 차장님은 고객의 그 스케줄링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예스!'를 외쳤다.

'젠장'

중간 보고서 일정은 1월 첫째주 월요일. 이런 x같은 스케줄이 있나. 결국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연말에 어느정도 진도를 나가야했고, 그나마 25일 이후는 좀 여유를 부리기 위해 23일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정은 갑작스럽게, 나의 개인적 일정은 모두 무시된 채 결정되었다. 외부 클라이언트와 내부 클라이언트에 의해서.


사실 이 작은 부티끄 리서치 회사에 들어온 이후 내 사생활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래. 인정하자. 송두리째 뿌리 뽑혔다. 매일 귀신처럼 출근했다 좀비처럼 퇴근하는 나날이 반복되었고, 내 앞에 앉은 동갑내기 과장 선배 은환이와 웬수 같은 사수인 차장님을 하루에 20시간씩 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런대로 버틸만 했는데, 12월 23일. 오늘은 좀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막내라지만 한달 전에 결정한 내 스케줄이 나의 의지와 완전히 무관하게 이렇게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시계는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년에 4살이 되는 딸이 있는 차장님은 집에 좀처럼 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진동소리가 차장님에게 거슬릴까 싶어 허벅지에 올려 놓은 핸드폰은 친구들의 문자로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결국 일어났다.

"저, 차장님. 언제쯤 가실 생각이세요?"

"음. 글쎄. 이미 애는 자고 있을거고, 기왕 이렇게 된거 1시 쯤 갈까하는데. 넌 진도 좀 나갔니? 얼마나 했어?"

"아, 그게요. 미국 가구 내 인종 비율 데이터만 찾으면 거의 다 될 것 같아요. 지금 Race ratio 데이터와 Household 데이터까지는 찾아 놨는데, 결합된 것을 못찾고 있어서......"

"아, 그래? 그럼 좀더 찾아봐"

"저, 그런데 차장님. 사실 제가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었거든요. 좀 늦게 간다고는 했는데, 친구들이 곧 집에 간다고 해서요. 제가 그 데이터는 크리스마스 연휴 때 좀더 찾아보고 드리면 안될까요?"

"아, 그래? 그럼 약속이 있었다고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럼 그 데이터까지 보강해서 25일 중으로 보내줘. 얼른가. 친구들 기다리겠다"


'아...... 그런거였나?'

차장님이 모를리가 없었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지만 계속 문자가 오고, 전화 받으러 몇 번이나 들락날락을 했는데......! 그래도 먼저 가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어서 내내 눈치를 봤었는데, 결국 내 스스로 약속을 무시한 꼴이 되었다.

'영악한 차장님!'

뭔가 기분이 분했지만, 사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짐을 챙겨 나왔다.


금호동에서 강남역까지 택시는 엄청나게 밀렸다. 택시 안에서 친구들 전화를 서너번 받았을 때는 결국 먼저 들어간다는 말들을 해 왔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해 찾아간 감자탕 집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새 신랑까지 포함해 달랑 세 명만 남아 있었다. 그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술을 1잔도 하지 않는데, 그 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진짜 미안하다. 많이 마셨어?"

"야~ 드디어 왔네! 어, 지금 24일이네? 야! 우리 약속은 23일이었어. 애들도 다 갔는데, 조금만 더 일찍오지......"

술에 취한 친구는 앉은뱅이 자리에서 상채를 흔들흔들 거렸다. 이미 간 애들한테 전화를 돌리겠다며 난리를 피웠다.

"그렇게 바빠서 어떻하냐? 저녁은 먹었어?"

새 신랑이 된 녀석이 숟가락을 챙겨주며 말했다.

"미안하다. 사실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뭔가 꼬여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정말 내가 친구들 약속을 못 지킬 정도로 바빴던 것이었나. 미국 가구내 인종 비율을 찾는 일일 일분 일초를 다툴 정도로 급한 일이었을까? 내 상황을 눈치채고도 아무말 안하는 차장님이지만, 사정을 얘기하면 안된다고 할 만큼 몰지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을 내심 알고 있었는데 왜 진작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보다 앞서 보고서 일정이 정해진 뒤 내부 일정을 조율할 때 난 왜 23일은 안된다고 주장하지 못했을까. 게다가 어차피 25일에도 일은 해야 할 상황이다. 그냥 적당히 하다가 나와서 약속시간을 맞추었으면 친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고, 비싼 택시비도 날리지 않았을텐데......


사실 회사 일을 앞에 두고 개인적인 일을 얘기하기가 싫었었다. 이미 일은 나의 개인시간을 침범하고 있었지만, 난 일 앞에서, 그리고 상사 앞에서 무턱대고 잘 보이고 싶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내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더 자극했다. 미국 가구구조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데이터를 찾는 일은 클라이언트가 사업을 진행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은 당연히 친구들 만나는 것보다 중요해 보였다. 사실 친구들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내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얼마 없지 않은가!

약속시간을 넘기는 동안 이런 생각들이 드나들었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어쩌면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해가며 계속 책상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은 조금 늦게 오고, 먼 길로 돌아서 와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내 마음대로 약속시간을 무시하고 우선순위를 새로 매긴 것이다. 이런 속내를 무시할 수 없어, 그 친구의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늦게와서"

"아니야. 일하다 늦은 건데 뭘. 그런데 그렇게 일이 많아서 걱정이다. 건강은 챙기며 일해"


다른 친구들은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감자탕은 보글보글 끓고 있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퍼 먹지 않았다. 국물만 몇 수저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을 택시 태워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난, 오늘 내 사생활을 야근과 바꿔 먹었다. 그렇게 양보를 받은 야근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뭣도 모르고 양보를 강요당한 내 친구들은 끝까지 나를 걱정하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 주었다. 그 크리스마스에 난 또 데이터를 찾고 있겠지. 왜 양보는 계속 한쪽만 하게 되는 것일까. 은근히 그 양보를 강요하는 내 속내는 또 무엇인가.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그리고 음흉한 마음이 실타래 마냥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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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년 간 리서치 회사를 다니면서 얻고 잃은 것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백수이고, 이 업계로 돌아갈지 말지 (물론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바닥을 뒹굴며 계속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나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이 업계에서 경험한 다사다난한 일들, 그리고 비단 리서치 종사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일과 나의 관계에 대한 많았던 고민들을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사건 역시 실제 일어난 일에 상상을 더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리서치 업계나 특정 회사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