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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Sep 14. 2018

이젠 일기장처럼

- 힘을 빼고 브런치를 대한다

한 2년 전, 몇 년 전에 마친 원고를 책으로 낸 뒤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었다. 

로그인만으로 들어올 수 없고, '작가신청' 과정을 거쳐야 브런치 멤버가 될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신선했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 말고, '작가신청'과정을 거쳐 들어온 다른 멤버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꽤 정돈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제대로 된 글을 쓸 매체를 찾지 못했던 나에게 그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곳이 좋았다. 


그래서 브런치 글 기고는 시작되었다. 


깜박이는 커서와 흰 화면 밖에 없는 배경도 좋았고, 글 폰트도 적정했다. 

이미지도 원하면 넣을 수 있었고, 열심히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맛도 좋았다. 

사실 '발행'이라는 말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참 설레는 단어이다. 


습작노트처럼 끄적거리고 '발행'하기엔 부끄러워 슬며시 넣어 둘 수도 있는 '작가이 서랍' 메뉴도 은밀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난 브런치에 글 쓰기를 즐겼다. 


작년 번아웃 증세로 퇴사를 한 뒤, 브런치 기고는 백수의 생활에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 기세를 몰고자 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까페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기고도 시작했었다. 

둘다 무보수 였지만 불특정 다수가 읽는 글을 쓴다는 것, 무엇보다 글을 읽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들춰보는 매체에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쓴다는 건 어느정도의 무게감과 책임을 지우는 일이었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고, 나름대로 두 매체에 주제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었다. 


매거진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시작했지만, 월간지와 주제가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편집장의 말에 매달 쓰고 싶은 꺼리를 가지고 어디에 실어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런식으로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 매거진은 몇 개의 흥미로운 주제를 양보하기도 했다. 


그런 글쓰기가 6~7개월 정도 이어지고 나니 내 안의 변화가 느껴졌다. 글쓰기가 나의 즐거움이자 스트레스의 탈출구였는데 이것도 매월 하다보니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올라 두 곳 중 한 곳에 쓰면 (주로 월간지에 썼는데, 아무래도 브런치는 내가 안올리면 그만이지만, 월간지는 편집자와의 약속으로 꼭 글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충분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관심사가 고만고만 하기에, 다양한 주제나 분야의 소재를 찾는 것도 한계였지만, 나름 글을 좀 읽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이니 '제대로 정보를 찾고, 내 시각을 정돈하고, 그것을 잘 mix하여 뭔가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하는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이 더 문제였다. 이 강박은 점점 강해져, 매달 10일이 넘어가면서 불안증세가 시작되었고, 도서관에서 생각한 주제를 뒷받침할 참고자료를 찾고, 읽고, 해석하는 데 며칠을 보냈다. 물론 이런 노력은 거의 월간지 기고글에 쏟아 부었다. 그렇다고, 브런치 글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 과거 온갖 기억과 추억을 소환해 있는 감정, 없는 감정을 쥐어 짜 가며 글을 써 내려갔다. 


둘 다 모두 성실히 써 내려간 글이다. 문제는 내가 질려버린 것이다. 글은 더 이상 만만한 놀이가 아니었고,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는 듯 했다. 요즘 매거진 글이 멈춘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일기장에 끄적거리며 즐긴 '글쓰기 놀이'가 뭔가 주제를 정하고 거대한 감정과 정보를 믹스해 내 안의 알을 꺼내 듯한, 과장을 붙여 산고의 고통에 비견되는 글쓰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단한 글을 내 놓은 건 아니다. 그냥 내 안의 과정이 그랬다는 것)


글은 쓰고 싶은데, '브런치 쓸 만한' 글은 자신이 없고(피곤하고), 그렇다고 안 쓰자니 안에서 곪고 썩어가는 게 느껴지고....... 일기장도 쓰고, 다이어리도 쓰지만, 키보드를 다닥거리며 쓰는 맛은 또 필요했다. 


그래서, 그냥 브런치를 일기장처럼 쓰기로 했다. 옛날 블로그 하듯이. 

사실 네이버 블로그도 했지만, 그 툴이나 편집 옵션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적당히 쓰다가 멈춰버렸다. 


다행인지 아직 브런치에서는 그런 불편함을 찾지 못했다. 심플함과 깨끗한 화면은 다행히 유지되고 있고, 커서가 반응하는 속도도 마음에 든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그리고 '작가신청-심사'과정을 거친 플랫폼이기도 하지만, 그냥 일기장처럼 '브런치'를 대하기로 했다. 어차피 신변잡기라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므로, 공개된 내 일기장으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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