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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Dec 01. 2015

스물여덟

응답하라 1988. 올림픽에  태어난..




  88년생 올림픽 베이비


나는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는 추억 드라마 응답하라 1988년의 그 88년에 태어났다.

쌍팔년도식 이란 비유 , 88 담배 , 굴렁쇠 소년과 같은 나의 갓난 애기적 시절 이야기들과 88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회자되고 있다.   설상가상 내가 다니던 유치원 이름마저 호돌이 유치원 이였으니 말이다.





저때 우린 티비속 꼬마보다도 어렸지.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동시에 다니며 7차 교육과정을 배타 테스트당했고 급식과 도시락을 모두  경험했다.

팩 게임부터 도스용 게임 ,  피시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초등 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의 길지 않은 시간. 여학생들은 고무줄과 종이인형 남학생들은 미니카나 팽이 같은 것을 가지고 놀이터에서 놀던 거의 마지막 골목 세대이며 지금은 토토가로 통하는 90년대 한국 가요의 르네상스를 또렷이 기억한다. 아빠의 백만 원짜리 최초의 벽돌 핸드폰과   삐삐에서 아이폰 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동시에 경험하고 또 적응해야 했던 호돌이들이 어느새 각자의 인생의 방향성을 안고 진정한 어른의 세계로 힘겹게 들어 선 지는 채 몇 년이 안되었다.



그리고 한 달 반 뒤면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처럼
서른은 아닌   "서른 즈음" 이 된다.




세월을 실감하게 하는 그냥.  벽 .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일단 되고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식이였다.

남들보다 최소한 세배 이상의 시간을 앞서 달린 뒤 거기에 감내해야 하는 것은 역순으로 천천히 풀어 나가기로 했다.


친구들이 대학 졸업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겪거나 취직 준비를 할 때 나는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업자등록을 했다. 개인 과세자  종목은 화랑 , 미술품  판매. 블로그를 개설하고 카드결제기도 단숨에  구입했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섯에 화랑 대표가 되었다. 모든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 사실 크게 어려운 것은 없다.  자신의 마음이나 의지에 따른  것이니까.



중국작가 리판 Li Fan






그로부터 삼 년 동안 버텨낸 결과 내 인생의 향기는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원했던 어른의 모습으로 가까워져 가는 내가 이루어 낸 것 들에 대한 만족감으로 홀로 가는 길 위 밀려오는 고독을 위로했다. 영향력 있는 멋진 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나는 스스로 만든 부담스럽던 인생의 무대장치에도 어느덧 익숙함을 느끼게 되었다.





마음껏 헤어진 벽. 결코 새것이 아닌 낡은 벽.



나 만큼이나  너희도 변해있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나와 내 친구들은 , 그러니까 호돌이들은 적잖은 공통점을 안고 살았다.  만나서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멋지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대화를 나누었다. 갖가지 시답잖은 연애로 함께 울고 웃어주고 전화통을 붙잡고 위로하는 덧없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

그러나 그들의  오빠아빠가 되던 순간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아기를 낳았다. 또는 멀리 유학을 갔다.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

20대의 일 년은 마치 십 년 과도 같았다.

더 이상 명절날 모여 새벽까지 수다 떨 일은 없어진 것이다.



나 또한 고향을 떠난 서울생활과 세계를 두루 섭렵하느라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흔들리는 변화의 크나큰 세계와 반대인 안락한 고향에서의 제도화된 삶을 꾸려가는 이들에 대해서는 답답하다며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나의 일과 주변에 한 껏 몰입된 나는 더 이상 내 울타리 밖의 친구들을 만나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어주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비로소 각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다름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호돌이들은 어른으로서
새로운  삶의 궤도로
이제 막 진입하기 시작했다.



권오상 드로잉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때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들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아련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었으며

그것은 어설펐기에 아름다웠다.


그 어느 하나 위태하거나 모호하지 않았던 것이 없지만

열심히 부딪혀 보았다.


위태롭긴 해도 젊음이 주는 불확실함이나

서툰 과잉과 결핍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순수한 열정이 영원하길 바랬다.

하지만 시간은  빨리 흘렀다.


현실과 세월 이란 그 시절 아무리 굳게 걸었던 약속도 ,

 가슴속 열정의 불씨도 꿈도 모두 잠 재워 버리는 대단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꿈이 있었던

호기심과  열망으로 가득 찼던

수많은 약속들


스무 살 때  함께  나누었던

저 모든 찬란한 젊음의 파편들이

가슴속에 남아있기를


그리고

그저 행복 하기를.









                                                   LUV contemporary art

                                                       갤러리스트 임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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