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쑤저우에서도 굉장히 조용한 외곽 지역에 있어서, 한국 마트나 맛있는 한국 식당을 이용하려면 택시를 타고 3-40분 정도 (차 막힐 때는 50분까지도 걸림) 이동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우버 택시나 디디 택시가 있지 않아서, 콜택시를 부르거나 길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는 방법밖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정말로 주변에 전신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곳에 위치 해 있었고, 택시가 지나다닐 때보다 지나다니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전화로 콜택시를 부르기엔 내 중국어는 너무 짧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며 생활해야 하는 삶은 날이 갈수록 그 불편함이 커지기만 했다. 게다가 비까지 오는 날이면... 저 멀리서 한 대 오는 택시를 향해 약 10명이 전력질주를 하며 택시를 타고자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호주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줄 서는 것과 새치기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나에겐, 달려오는 몇 무리의 중국 사람들과 몸싸움을 해서 그 택시를 쟁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한국에 비해서 싸다지만, 이동 할 때마다 택시를 타게 되니 어디 다녀올 때마다 드는 택시비도 나날이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중국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버스비는 겨울에 난방을 가동할 때와 에어컨을 가동할 때는 2원 (약 한국돈 350원 정도), 그렇지 않을 때는 1원 (170원 정도)란다.
너무 저렴한 버스비에 깜짝 놀라서 저 버스를 이용할 수만 있으면 돈도 아끼고 매일 택시 기다리느라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버스를 꼭 타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전 2원을 준비해 버스 정류장에 나가보니... 정류장에는 도대체 이름 모를 한자만 가득했다.
(내가 살던 곳은 아니지만) 버스정류소는 이런 이름모를 한자로 가득했다. 중국어 까막눈은 당황당황ㅋㅋ
내가 사는 곳 주소만 겨우 외운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 노선마다 경유하는 정류소는 또 어찌나 많은지 그걸 갖다가 누구에게 번역 해 달라고 한들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니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갑자기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1. 나는 시간이 많다.
2. 버스 노선은 약 10개가 지나가는 것 같다.
3. 여기는 버스 종점이라 항상 앉아서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4. 버스비도 정말 저렴하다.
1,2,3,4를 종합해 보니 재미난 결론이 하나 나왔다.
하루에 버스 노선 1개씩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떨까??
종점에서 타는 거니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앉아서, 이 버스가 어딜 지나가는지, 내가 아는 곳은 있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놨다가 버스가 다른 종점에 도착하면 다시 그 종점에서 같은 번호를 타고 여기로 돌아오면 어떨까?
아닌게아니라 정말 좋은 생각 같았다.
나는 다음 날 당장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버스 정류장에 나가보니 다양한 숫자가 있었지만
급행 2번이라고 쓰여진 버스가 제일 정류소 숫자가 작았다. 그때는 까막눈이라서 급행 2번이라는 한자를 읽지 못해 2번 버스라고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버스는 쑤저우 역까지 가는 급행 버스라 다른 버스들에 비해 정거하는 정류장의 숫자가 작은 버스였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2원을 요금통에 넣고 버스에 올라, 앞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에 앉았다. 창가에 바투 붙어앉아, 출발한 시각과 보이는 것들을 휴대폰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버스 번호: 2번
출발 시각: 13:00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내가 늘 힘들게 걸어갔던 야채 가게로 향했다. 난 나도 모르게 꺅 소리를 질렀다. 한 겨울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약 20분간을 걸어갔던 야채가게인데, 버스로는 바로 다음 정거장이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야채를 사고 힘들게 집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출발 후 바로 다음 정거장: 야채가게 (약 5분 걸림)
메모를 해놓고 나니 너무 뿌듯했다.
다음번에 당당히 남편을 데리고 요금통에 멋있게 2원을 짤랑 하고 넣은 후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딱 내리면 또 남편은 얼마나 나를 우러러볼까! 푸!하!하!하!!!!!
그렇게 버스는 조금 더 달리더니 무슨 도서관 역에 도착했다.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어였다.
도서관은 중국말로 두슈콴 이렇게 들렸는데 딱 들어도 완전 도서관이었다 ㅋㅋㅋㅋㅋ
그 도서관역을 지나는데 도서관이 너무 예뻤다. 엄청 넓은 잔디밭과 냇가가 흐르고 있는 도서관.
출발 후 약 10여분 후: 뭐시기 도서관 역 (도서관이 이쁨)
나는 뭣에 홀린 듯 그 역에 내렸다. 도서관이라면 책도 있을 테고, 도서관 안에 카페도 있을 것 같았고, 왠지 도서관을 탐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는 건 나 뿐이었다. 내리고 나서도 .. 도서관 근처라면 사람도 많아야 할텐데 사람이라곤 한명도 보이지 않고 근처는 적막하기만 했다.
잘못 내렸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은 적막했다.
다시 버스를 탈까 마음이 갈팡질팡했지만 그래도 이왕 내린거 조금 더 가보자 싶어서 도서관 쪽으로 걸어갔더니, 거짓말처럼 정말 너무 예쁜 풍경이 나왔다.
아래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내가 갔을 땐 3월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예뻤지만 사진은 5월에 찍은 사진. (풍경에 반해 자주 갔었다.)
두슈휴 도서관의 봄
이곳이 과연 중국인가!!!
너무 고즈넉하고 이쁜 풍경
강가의 버드나무만이 여기가 쑤저우라는 걸 알려주는 듯.. (앗 노란 표지판도 ㅎㅎ)
거짓말처럼 나타난 정말 이쁜 도서관의 풍경에 (그리고 사람도 한 명도 없음!!!) 나는 혼자 무릉도원에 온 것마냥 넋을 잃고 저 곳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절대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저 곳에서 혼자 힐링타임을 갖고 다시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길 건너 맞은편에 보니 과연 2번 버스가 우리집 쪽으로 다시 향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려 2번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마음이 뿌듯했다.
커다란 수확이었다.
버스도 타 봤고, 버스 타고 이제 야채가게도 갈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이쁜 곳도 찾았다.
훗날 나는 저 곳을 너무나 좋아해 어느새 남편과 나와 베프가 된 남편 학교의 반장 후아와, 내가 직접 싼 김밥을 들고 낚시도 하러 오는 등 자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낚시대를 들고 있는 나와, 옆에서 진지하게 낚시중인 후아를 남편이 찍은 사진. 두슈후 도서관 근처.
재밌는 것은, 분명히 저 근처에는 <낚시금지>라는 표지판이 거의 5미터마다 하나씩 있는데...ㅎㅎ 모두들 아랑곳않고 낚시 삼매경.
후아에게 물어보니, 낚시 금지 표지판은 보통 치어를 풀거나 수질이 깨끗해서 보호하고자 세우기 때문에 그 밑에서 낚시하면 깨끗한 물에 사는 고기를 더 잘 낚을수 있어서 ..... 사람들이 낚시 금지 표지판이 있으면 낚시 하기 좋은 곳으로 생각한다고.....
ㅋㅋㅋㅋ
그렇게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버스 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138번인가를 타면 스타벅스에 갈 수 있었고, 또 다른 번호를 타면 오샹 마트에 갈 수도 있었다. 버스 카드까지 만들어서 동전이 없어도 카드를 충전해 카드를 띡- 하고 찍으며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하루하루 쑤저우의 생활에 흠뻑 익숙해지고 있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