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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Dec 18. 2020

구원... 그 따스한 손길

그녀의 닉네임은 영국 언니


처음 우리를 만나서 친절히 저녁까지 사 주시며 중국 생활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와 많은 조언을 주신 교수님 부부가 호주로 떠나시며 (첫 만남에 이별했음 ㅜㅜ) 내게 남겨 주었던 한 사람의 휴대폰 번호.


며칠 뒤 그 생각이 나서 휴대폰 번호와 그 분의 위챗 (중국판 카카오톡)을 내 친구 리스트에 등록했다.


그리고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구누구 교수님 부부에게 소개받고 톡 드린다면서 첫 인사를 건넸다. 교수님 부부가 그 분께도 이야기를 하신 모양인지 이미 알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는 그 분.


그 분은 같이 점심 약속이 어떠냐고 하셨지만.. 그때 당시 남편은 매일같이 우리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고 있었다.


남편 학교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몇 안되는 학생 식당은.. 너무 위생과 맛에서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차라리 거기 갈 바에 굶기를 택했고, 내가 점심을 챙겨놓지 않으면 하루종일 쫄쫄 굶은 채 일만 하다가 집에 와서 저녁 때 폭식을 하곤 했다.


그때는.. 나름 신혼이었나 보다.


난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 나 혼자 집에서 맛난 점심 먹느니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했고, 남편은 신이 나서 매일 점심 집으로 밥을 먹으러 왔다. 남편도 나도 매일같이 적응하느라 고생 중인 시기였다.


그래서 그 언니와 나의 첫 만남은 비가 무지 오는 어느 평일, 점심시간이 지난 어느 카페에서였다.


훗날 이야기지만 남편 점심 걱정을 하며 첫 약속을 점심 먹고 만나자고 했던 내가 언니는 아주 놀라웠다고 했다. ㅋㅋㅋㅋ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지금 누가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한다며 점심약속을 거절하고 커피 약속을 잡자고 한다면 아주 이상하게 볼 건데...


하지만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집에 점심이 없으면 하루종일 굶고 살이 쭉쭉 빠져대는 그가 안쓰러웠다 ㅠㅠ


여튼 약속시간에 맞춰 카페에 나가니 언니는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인상이 너무 좋았다.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니도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언니는 영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내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은 아무리 이름을 말해줘도 계속 까먹는 남편 때문에, 남편하고 이야기 할 때마다 언니를 영국 언니라고 지칭하기 시작했고, 아마 남편은 아직까지도 언니 이름을 모른 채 영국 언니라고 알고 있을 거다.


언니는 쑤저우에 온지 그때 약 3년인가 4년째 되던 시기였는데, 정말 맛집부터 볼거리까지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중국말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해서 난 영국언니를 점점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첫 만남때 내가 쑤저우에 온 이후로 너무 맛없는 것만 먹었다, 여긴 맛있는 게 하나도 없다, 음식이 너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자 어디어디 갔었냐고 물어보더니, 내가 간 곳을 듣곤 미간을 찌푸리며 왜 그런델 갔냐며 다음엔 딤섬을 먹고 싶을땐 여기, 한식이 먹고 싶을땐 여기를 가 보라고, 아마 내가 간 데보단 맛이 나을거라며 두세군데를 알려주셨다.


며칠 뒤, 언니가 친절하게 택시 기사님께 보여줄 주소까지 알려주었기에 언니 덕분에 수월하게 딤섬 집을 찾아 갔는데..


언니는 그냥 딤섬 먹기엔 그 곳이 괜찮아~ 라고만 했는데...


나는 한입 먹고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진짜 너무너무 맛난 딤섬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문을 닫음) 새우 만두 하가우, 샤오롱바오, 가지 요리... 하나같이 다 일품이었다.


그리고 또 언니가 가르쳐 준 한식당도 갔다. 과장 없이 한국의 어중간한 데보다 훨씬 맛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언니는 식당이나 맛에 대한 스탠다드가 아주 높았다. 나랑 남편은 크게 까다롭지는 않아서 평균만 하면 뭐 괜찮네 하고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언니는 그렇지 못해서, 언니가 거기 그럭저럭... 가볼만 해- 하는 식당에 가면 우리 둘은 물개박수를 치면서 나왔고 언니가 맛있다고 추천해 준 식당에 가서는 만세 만세 만만세를 부르고 나왔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언니를 평생 따라다니기로 맹세하고야 말았다.


(여담이지만 맛에 대한 스탠다드... 이거 정말 중요하다. 몇년 뒤 중국에서 정 교수님이라고 다른 한국 남 교수님을 언니 부부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데.. 그분은 정말 아무거나 잘 드시고 맛나게 드셔서... 정말 맛없는 식당도 맛있다고 마구 추천해 주셔서 그분 추천대로 가기만 하면 그날의 식사는 ..읍읍....ㅜ 정교수님 죄송합니다 ㅜ)


그 후 언니 교수님 부부와도 자주 만났는데, 정말 언니는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어서 한국 파리바게트, 미국 브런치, 맛난 맥주 파는 곳, 태국 음식이 맛있는 곳, 인도 음식이 맛있는 곳, 맥주 맛은 덜하지만 뷰가 정말 좋은 곳... 게다가 왠만하면 진짜 다 맛있음... 여튼 매번 언니를 만날 때마다 나는 보석같은 새로운 곳을 알게 되었고 언니가 그 상황마다 하는 중국어까지 열심히 엿듣고 외웠다. 언니는 아마 지금도 모르겠지만 내 초기 중국어는 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앵무새처럼 외워 따라한게 8할이었다. ㅋㅋㅋㅋ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른다.


또 어느 하루는 내가 버스 타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버스가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시간 날 때마다 버스 종점 to 종점 투어를 한다고 하니 언니는 기겁하면서 버스 노선이 어디를 지나가는지 싹 다 알려주었다.


몇번 버스는 유명한 관광지에 가고, 몇번 버스는 쑤저우 역에 가고, 몇번 버스는 급행 버스라 정거장이 많이 없고.... 언니를 만난 후 내 버스투어는 그날로 막을 내렸다. 무식했기에 용감했던 일이었다.


정말 언니를 만나고 쑤저우에서의 내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더욱 더 소름 돋는 사실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네이버에 쑤저우에 관한 정보가 정말 많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내가 항상 검색하고 의지하던 네이버 블로그 하나가 있었다. 그 블로그 주인도 한국 사람이 드문 우리 동네에 사는지 정리해 놓은 버스 노선이나 자주 가는 곳이 상당히 나랑 겹쳐 나는 그 블로그를 통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마무시한 도움을 받고 있었다. 내 쑤저우 생활의 구글이랄까...


그런데...


영국 언니와 그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그 블로그를 아냐고 물어보는데, 언니가 씨익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가 뭔가 의미심장했다.


약 3초의 정적 후..


나는 꺄악!!!!!!!!!!!!!!!!!!!!!!! 하고 소리를 꽤액 질러버렸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언니의 미소로 짐작이 가능했다.


바로.. 언니가 그 블로그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ㅠㅠㅠㅠㅠㅠ 세상에.... 이런 영광이.. 정말로 손등에 싸인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로 나랑 어디 갈 때 그 식당이 괜찮은 경우엔 언니 블로그에 우리가 간 곳이 올라왔고, 그때마다 나는 뭔가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쑤저우의 연예인은 언니라구요... 1호 팬이라구요 ㅜㅜㅜㅜ


중동에 살때도, 호주에 살 때도, 그리고 중국에 살 때도 여기 다 쓰지는 못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해외에서는 한국 사람을 제일 조심하라는 말도 있지만, 낯선 곳에서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그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사람들 또한 한국 사람이었다.


언니를 우리에게 소개해 준 교수님 부부에게도,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몰라서 도움만 받아야 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처지임에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아는 걸 나눠주고 늘 도와준 영국 언니 부부에게도 매일 매일 생각만 하면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다.


지금 나는 한국, 언니는 쑤저우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든 코로나가 풀리면 언니가 있는 쑤저우로 날아가서 따뜻한 훠궈를 같이 먹고 싶다.


 오늘따라 언니가 유달리 보고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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