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아홉 살이었던 내 어느 날
평소에는 냄새만 나고 바닥을 훤히 드러낸 채 한 줄기씩, 두 줄기씩 느적히 흘러가던 강이었다. 그런 주제에, 가끔 비가 많이 오면 엄청나게 불어나 검게 넘실거리며 무섭게 흘러가기도 했다.
그 강의 이름은 똥강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붙인 이름이다.
사실 그건 강이 아니고 사실 주변 하수도가 모여 내려오던 폭 4-5미터의 물줄기 같은 거였는데 어릴 때는 그 시꺼멓고 냄새나는 물이 정말 무서웠다. 물이 많을 때는 그 더럽고 냄새나는 물이 나를 삼킬 것만 같아 무서웠고, 물이 적을 때는 드러난 바닥과 널브러진 쓰레기들이 싫었다. 그 바닥엔 악취가 가득했는데, 그 냄새는 아직도 방금 맡은 마냥 콧가에 매달려 있는 듯 생생하다.
똥강은 지대보다는 한참 낮고 내려가지 못하게 담이 쳐져 있어서, 내려다볼 수는 있었지만 내려갈 수는 없었는데, 그 똥강 담길을 따라 오밀조밀 작은 주택들이 많았다. 경아의 집은 그 똥강 바로 옆이었다. 경아와는 똥강 근처에 돌아다니던 강아지를 같이 따라다니다 친해지게 되었다. 경아네에 놀러 가는 길이면 하수도 냄새를 졸졸 따라가면 되었다. 냄새를 따라가다 묵직하고도 묵은 내음이 끊길 즈음이면 친구 집이 나왔다.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경아 엄마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점심시간인데 라면 먹어라. 하며 안성탕면을 두 개씩 끓여주었다. 우리 집에서 먹던 라면은 항상 신라면이었기 때문에 라면 맛도 다를 수가 있구나, 맵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가끔 같이 집에 있던 삼촌이랑 셋이서 같이 라면을 세 개 끓여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라면이 불어 별로 맛이 없었다.
경아네 집엔 갈 적마다 매일 다른 삼촌들이 계셨다. 왜 그렇게 너는 삼촌이 많아? 물으니 경아는 자기는 삼촌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나는 삼촌이 둘 밖에 없어서 경아가 부러웠다. 매일 다른 삼촌들은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 우리가 오면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곤 했다. 삼촌이 토끼눈으로 경아 엄마를 쳐다보면, 경아 엄마는 태연하게 응, 우리 딸내미. 했다. 침대에서 나온 경아 엄마는 늘 이쁘고 부드럽고 하늘하늘한 짧은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종종 경아 엄마는 우리더러 술병을 슈퍼에 팔아오라고 했다. 식탁에는 늘 이상한, 뭔가 썩은듯한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갈색병, 초록색 병이 많았다. 우린 병이 많을수록 신이 났다. 그 병을 가득 들고 똥강을 따라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과자 한두 봉지는 바꿔먹을 수 있었다.
푹푹 찌고 습한 여름엔, 술병에서 그리고 똥강에서도 너무 냄새가 많이 나 괴로웠지만, 바삭하고 고소한 과자를 생각하며 열심히 다녔다. 하루 묵은 술병 냄새와 똥강 냄새는 묘하게도 비슷했다. 색도 비슷한 것 같았다. 이 병엔 저 강물이 들어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술병으로 과자도 바꿔먹고, 라면도 하나씩 뚝딱한 후엔 경아네 집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다락방엔 인형도 많았고 장난감도 많았다. 좁고 어둡고 군내가 나는 다락방이었는데, 그럴수록 더 재밌고 은밀했다. 그곳엔 늘 낡고 먼지 가득한 퍼런색 선풍기가 탈탈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인형과 종이로 저녁 배 고파지기 전까지 거기서 놀았다. 거의 매일 갔다. 저녁때가 되면 경아 엄마가 이제 집에 가야 할 때라고 해서 집에 와야만 했다. 저녁에도 거기서 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왠지 안될 것 같았다. 아마 그때, 눈치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집에 오는 길도 똥강을 따라 걷고, 건널목을 건너서 상가를 쭉 따라오면 되었다.
그 똥강이, '대연천'이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20여년 후에 알게 되었다.
*글의 '경아'는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