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통큰냄비 블로그
어릴 적, 동네마다 골목마다 중국집이 하나씩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풍겨오는 기름지고도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전혀 고프지 않던 배도 갑자기 고파오게 하는 신비한 그 향기를 지닌 곳.
토요일 오후, 온 가족이 늦잠을 자고 엄마와 아빠가 라면을 끓여먹을지 동네 중국집에 짜장면을 먹으러 갈지 상의할 때 제일 심장이 두근거렸다. 라면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동네 중국집 나들이란 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동네 중국집에 가는 발걸음은 참으로 행복했다.
매일같이 상상만 해야 했던 그 기름지고도 묵직한 냄새를 당당하게 따라 들어가, 한자가 적혀 있는 간판 앞에 서서, 미닫이문을 끼익 옆으로 밀고 촤르르륵 떨어져 있는 하늘색 플라스틱 발을 옆으로 젖히고 들어가면 펼쳐지는 낙원과도 같은 전경. 타일이 깔린 바닥과 싸구려 테이블에 딱딱한 의자지만, 짜장면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천년만년도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아빠는 짬뽕 둘, 짜장 곱빼기 하나요. 하고 외쳤다. 엄마랑 아빠는 늘 짬뽕을 드셨고, 나랑 동생은 짜장 곱빼기를 나눠 먹을 만큼 어렸다. 아빠가 그렇게 외치면 누군가 주방에서 짬뽕 둘 짜곱 하나 있슴다! 하고 큰 소리로 따라 외치고,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나무젓가락을 뜯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곧 단무지, 양파, 춘장 셋이 한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누렇게 변색된,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동그란 멜라민 접시는, 하나지만 자른 피자마냥 정확히 3분의 1씩 나눠져 있어서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이 섞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단무지 칸은 꽉 차서 자리가 없고, 양파 칸은 반쯤 자리가 남았으며, 춘장은 아주 조금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왜 단무지 칸을 더 크게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내가 아주 단무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품은 그런 의문이었지만.
신나게 단무지를 먹으며 주방의 덜그럭, 덜그럭거리는 웍 소리를 한참 듣고 있자면 짜장면이 나왔다. 엄마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해서 짜장면을 반을 덜어서 나랑 남동생이 나눠먹을 수 있게 해 줬는데, 그렇게 둘로 나뉜 짜장면 곱배기를 두고 서로 본래 나온 큰 그릇에 있는 걸 먹겠다고 싸웠다. 아무리 나눈다 해도 어린아이들 눈엔 큰 그릇이 더 탐이 났다.
그리고, 짧게 산 인생이었지만..... 경험상, 원래 나온 그릇에 짜장 소스가 더 많았다. 엄마가 그냥 대충 덜어낸 그릇엔, 면 위주로 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덜어낸 그릇의 짜장면을 한참 먹다 보면 짜장 소스가 부족해 뻑뻑해지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큰 그릇에 있는 걸 사수하기 시작하자 지는 법이 없던 동생도 그걸 고집부리기 시작했고 곧 그 일은 커다란 경쟁이 되었다. 나랑 동생이 더 커서 각자 짜장면 1그릇씩을 비울 수 있을 때까지 그 싸움은 계속되었다.
간혹 아빠는 짜장면 대신 간짜장이란 걸 시켜 먹을 때가 있었는데, 각종 야채가 가득 든 간짜장은 덜 달고 더 짠 어른의 맛이었다. 이렇게 맛난 짜장면을 두고 왜 그런 걸 시키는지 참으로 이해불가였다. 어느덧 부른 배를 두드리며 중국집을 나올 때면 언제나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매주 올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도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많이 벌어 매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어야지. 짜장면을 좋아하던 아이는 굳게 다짐하며 중국집을 떠났다.
그때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너 나이 들면 짜장면 안 먹어~ 너도 엄마 아빠처럼 짬뽕 먹더라!'라고 했으면 콧웃음만 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