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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25. 2024

쓰레기통에 처박힌 명함

회사문화 답사기 9

명함은 직장인, 특히 남성 직장인에겐 또 하나의 신분증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전역 후 신입사원 발령을 받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았던 내 이름 석자가 선명했던 명함은 회사 로고와 함께 멋져 보였다.

영업사원이었으니 수없이 많은 명함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고객의 명함을 받아 명함첩 매년 쌓아 나가는 것이 내 영업의 역사적 기록물이기도 하였다.


명함도 성장을 하면서 이름 석 자 앞에 ‘대리’, ‘과장’, ‘팀장’ 등의 직함이 달려 나갔고 이름만 있던 신입사원 시절 명함은 친구들에게 “나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어”라고 대신 말해주는 용도였다면, 직함이 달린 명함은 “나 이젠 좀 잘 나가”라고 으스대는 느낌도 조금은 주고 있었다.


복사기 세일즈로 직판영업을 마스터한 후 삼성전자로 이직했던 나는 직장생활 7년 차쯤에 과장이 되었다.

진급에 누락 없이 승진을 한 것이었고 영업실적도 꽤 탄탄하게 달성해 내면서 인정받으며 영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공공기관에 대한 컴퓨터 판매영업을 하는 전담팀을 맡은 후 규모가 큰 기관은 직접 영업현장을 맡아서 방문하고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공공기관 대상 영업은 조달청에 등록된 자사의 제품을 구매신청하게 만드는 영업이어서 선행영업(pre sales)을 통한 선호도를 만들어야만 경쟁사와의 판매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머리와 발에 밸런스가 잡힌 세일즈’를 실천하는 것을 영업의 제1 계명으로 명심하고 매일 공공기관에 대한 방문계획을 수립하고 Door to Door 방문을 지속하였다.


96년  어느 여름날.


한 여름에도 나는 긴 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수트 상의까지 입었고, 무대 위에 서는 연예인처럼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고객방문을 했다.


고객이 오라고 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찾아가서 인사하고 명함부터 건네는 당돌함(단,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와 함께)으로 방문을 시작했고,  그날도 방문타깃으로 정한 공공기관 사무실로 들어섰다.


지금의 KT, 시내에 있는 지역전화국 총무팀이었다.

1층 로비에 붙어있는 층별 안내도를 보고 3층으로 올라간 나는 거침없이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하여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조달용 장비 구입을 담당하시는 분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3층 왼쪽 책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리 중 창을 등뒤로 두고 혼자 앉아있는 분이 구매담당자임을 알았다. 책상이 두줄로 마주 보고 있고 ㄷ 자로 배치된 좌석 중에 1인용 책상이니 직급이 높은 분임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공공영업 5년 차였던 나는 1도 두근거림 없이 그분에게 다가갔고 인사를 했다.


“실례지만 인사 올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성전자 000이라고 합니다. 조달용 컴퓨터 영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명함을 내어 밀었다.


그분은 무언가 서류 작업에 한참이었고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힐끗 보곤 반사적으로 명함을 받았다.


“괜찮으시면 잠깐만 시간 좀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건넨 삼성전자 그것도 사원이 아닌 과장 명함은 순식간에 그분 책상 옆 휴지통으로 처박혔다. 그리고는 바쁘니까 오지 말라고 한마디 하곤 본인이 하던 서류 작업을 위해 얼굴을 책상에 묻어버렸다.


'명함은 제2의 내 얼굴이고 나의  아바타인데…'


순간 치밀어 오른 모멸감에 당황했으나 꾹 참고 차분하게 말하고 물러났다.


“바쁘신데 방해드린 것 같아 송구합니다. 판매에 대한 제품설명을 드리고자 함이 아니고 차후 구매계획을 여쭈어 보고 기관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드릴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방문하였습니다. 실례하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3층 문을 열고 나오니 속상함과 모멸감과 스트레스가 밀려왔고 순간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영업에 성공하고 싶었다.


방금 명함을 휴지통에 버린 그분에 대한 정보파악이 필요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탑승한 직원에게 혹시 구매담당하시는 분 성함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이름을 알아냈고, 경비실에 붙어있는 비상연락 당직 전화번호를 보고 얼른 메모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퇴근 무렵이 되어, 나는 공공기관의 당직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꺼? 저는 000 과장님 고행 후배인데예, 오늘 저녁에 선배님 집으로 오라고 전화번호를 받았었는데 고속버스 타고 오다가 수첩을 잃어버려서 전화를 할 수가 없습니더. 꼭 만나야 하는데 실례지만 과장님 자택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꺼?”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나였지만, 의도적으로 경상도 시골청년 흉내를 내면서 읍소를 하였고 마음씨 착해 보이는 전화기 건너 편의 경비아저씨는 그분의 자택번호를 알려주었다.


얼른 114에 전화를 했다. 그 번호의 주소를 물었고 대략의 위치가 파악되었다.


그날 오후 6시.

나는 그분의 집 근처로 가서 자택위치를 파악하였고, 미리 준비해 간  과일바구니를 들고 그분이 퇴근길로 이용할만한 하나뿐인 골목입구를 선택하고 기다렸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낮에 명함을 휴지통에 던져버린 그 구매담당 과장님이 한눈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겪은 모멸감에 그분의 인상착의는 지금도 선명할 정도이니 단 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오는 과장님께 다시 한번 90도로 몸을 굽히며 인사했다.


“000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낮에 불쑥 찾아가 번거롭게 해 드린 삼성전자 000입니다”


그분은 너무 놀라며 왜 여기에 있냐고 했고, 나는 선약도 없이 찾아가 회사와 영업하는 나의 이미지를 나쁘게 전달해 드린 것 같아 사과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과장님 자택을 알아내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쑥 과일바구니를 내밀고 사과의 뜻으로 사과바구니를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 바구니에 사과만 들어있지 않고 여러 과일이 혼합된 특대사이즈였다^^


과장님은 “거 참 대단하네요! 밤이 늦었으니 오신 김에 식사대접은 못하겠고 차 한잔 마시고 가이소”

라며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고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으로 들어서면서 손님이 왔다고 과장님의 사모님께 소개를 시켰다. 사모님도 다소 놀라긴 했으나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시고 미소와 함께 따뜻한 홍차를 내어주셨다. 간단한 티타임 후 정중히 인사하고 과장님 댁을 나서는데


“다음 주 수요일 오후 두 시쯤에  사무실로 오이소.”


약속된 방문일.

과장님은 구매요구서를 건네주시면서, 다른 회사에도 조금씩 배정을 해주어야 하니 이해해 달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연간 구매수량 350대 중 250대였다.


휴지통에 처박혔던 명함은 내가 자리를 떠난 후 미안한 마음에 다시 꺼내어 잘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후 그 과장님과는 부서를 이동하기 전까지 몇 년간 편안한 고객과 영업담당자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매일 사용하는 명함을 볼 때마다

25년 전 휴지통에 처박혔던 명함으로 인해 세일즈 인연을 맺었던 그날이 종종 생각난다.


세일즈맨에게 명함은 얼굴이다.

가끔 수모를 당해도 당황하거나 분노하지 말 일이다.

고객에게 어떻게 나를 인식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진전성과 끈기로 고객에게 다가가면 될 일이다.


오늘도 나는 명함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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