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기를 당하는가 (9)
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마음속에 스멀스멀 퍼져가는 위화감은 불안감으로 번져갔고, 나는 술이 절실해졌다.
소맥 한 잔을 진하게 말아 한 번에 들이켜고, 사실은... 하며 그간의 상황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자 곧바로 모진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정신 좀 차려라. 돈 모은다고 궁상은 있는 대로 다 떨고, 땅 보러 다닌다고 지랄 염병을 해 쌓드만 사기꾼한테 돈 갖다 바칠라고 그 난리를 쳤냐?"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친구는 차분히 말을 보탰다.
"그 사람, 아무래도 이상하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야. 특히 개발이 제한된 땅에는 승인이 안나. 우리나라 은행들, 위험한 거 절대 안 한다고."
술이 얼큰해진 나는 친구들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속으론 오히려 분노가 치밀었다. 나처럼 발로 뛰며 기회를 얻을 생각들은 안 하고, 남이 하는 일은 이러쿵저러쿵 안된다는 얘기만 하는 뭣도 모르는 새끼. 은행원 친구의 충고도, 네가 경험이 없어 그렇지 어디 세상이 그렇게 원칙대로만 돌아가더냐 하는 생각 속에 묻혀 버렸다. 힘 있는 사람은 다르게 한다. 공무원도 휘어잡고 지점장도 녹여내서 다 하는 거지. 이 새끼들 두고 봐라, 내가 멋지게 이삼십억 만들어서 올 테니.
끝까지 걱정하며 단속하는 친구들에게 대충 알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마음은 여전히 목사에게 기울어 있었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초라한 개척교회에서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무엇하러 나 같은 일개 월급쟁이에게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 주 수요일, 나는 부모님 댁 근처로 외근을 갈 일이 생겼다. 땅을 핑계로 소홀했던 부모님께 저녁이나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익숙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그런데 멀리서 다가오던 한 여자분이 나를 보며 잠시 멈칫했다.
"혹시.. 그 파주에서 뵌 분 아니세요?"
자세히 보니 파주 교회에서 끝까지 남아 있던 여남은 명의 재테크 카페 회원 중 한 명이었다. 목사의 이야기마다 푼수 같을 정도로 밝게 반응하고, 소리 높여 웃어서 기억에 선명히 남았던 사람이었다. 여기서 마주치다니. 몇 차례 눈인사 정도만 나눴을 뿐인데, 반가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경계심이 밀려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 사시나요? 어쩐 일로.."
그녀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여기가 부모님 댁이고 어렸을 때부터 자라왔다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도 여기서 자랐는데 라며 왠지 모를 한숨을 섞어가며 발끝을 바라보던 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동네 후배라니까... 제가 그냥 두진 못하겠어요. 이따 부모님 만나 뵙고 저한테 전화 한 통 주세요."
내 휴대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어준 그녀는, 곧장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우에게라도 홀린 듯,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