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실전이다
김대리는 종잣돈이 다 모이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어떻게 굴릴지 미리 고민했고,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 사무실 책상 위에서, 그는 늘 재테크 카페 글을 정독했다.
추천 도서 목록이 올라오면 주말마다 도서관을 뒤졌다.
앞선 누군가가 밑줄 쳐둔 책을 들춰가며 그는 공부를 이어갔다.
사실 그에게는 주식으로 쓴맛을 본 경험이 있었다.
철없던 신입사원 시절, 김대리는 자신에게 ‘타이밍을 읽는 눈’이 있다고 착각했다. 업무시간에도 눈치를 보아 가며 단타를 쳤고,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구석에 숨어 주가를 확인했다. 건마다 거래세며 수수료를 내어 가며 매수·매도를 반복했다.
처음엔 요행처럼 수익이 났지만, 오래갈 리가 없었다.
결정타는 이듬해 가을이었다.
출근길부터 사무실 공기가 묘하게 무거웠다. “미국에서 큰일 났다더라”는 말이 어디서나 들렸다.
뒤편 흡연장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몰려 있었다.
바로 그 때, '쾅'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김대리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겨진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울부짖으며 식용유 통으로 만든 재떨이를 걷어차고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왜 그랬는지 알겠다는 듯, 그를 애써 외면한 채 담배만 피웠다.
김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주식창을 켰다.
화면은 새파랬다.
시장 자체가 녹아내리며, 계좌 잔고가 토막토막 사라지고 있었다. 대응할 틈조차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청난 규모는 아니었지만, 자신만만하던 초보 투자자에게는 뼈아픈 충격이었다.
원룸에서 종잣돈을 모으던 몇 년 동안, 투자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건 그때의 공포 덕분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절대로 돈을 잃어선 안 된다.”
어디선가 주워 들은 워렌 버핏의 조언을 손이 근질거릴 때 마다 떠올렸다.
개미처럼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리는 꾹 참고 꾸준히 지식을 쌓아나갔다.
김대리는 국내 최고라는 재테크 까페 몇 곳을 드나들며 게시글을 꼼꼼히 읽었다.
자산 형성 과정을 공유한 글이면 자신의 방식과 비교하며 정독했다.
투자 수익률 계산이 나오면 엑셀을 켜고 글쓴이의 숫자를 따라가며 직접 계산해 봤다.
부동산 글이면 네이버 지도를 열어 해당 지역을 확대하며 글쓴이가 본 포인트를 눈으로 따라갔다.
부동산, 그 중에서도 토지는 김대리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직 하늘 아래 지분으로라도 땅 한 평 가져본 일이 없는 김대리는, 토지를 개발하여 돈을 번다는 사람들의 글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토지는 용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사실,
따라서 농지는 농작물 수익, 상업용지는 상업 수익 등 그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이 중요하고,
그 수익에 위험을 감안한 할인율이 적용되어 가격이 정해진다는 내용,
그래서 ‘선수’들은 토지의 용도 변경에 목숨을 건다는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물론 카페에 고수만 있던 건 아니었다.
허세로 치장한 사람도 있었고, 자기 홍보성 글도 많았다.
그중 가장 위험한 건 사기꾼들이었다.
그들은 번듯한 글 몇 개를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올려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며, 실전 투자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끌어냈다.
글이 잠잠해진 뒤 몇 달이 지나면, 카페 게시판엔 어김없이 “당했다”는 글이 하나둘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김대리는 코웃음을 치며 혼잣말했다.
“대체 어떤 바보가 이런 수작에 속는 거야?”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사기는 바보가 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