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되찾은 시간
"헛되이 보내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이다. … 우리의 게으른 삶이 바로 우리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전 생애가 하나의 천칙이다." -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자주 패러디를 하는 문장이기도 한데, 누구보다 프루스트를 사랑했던 들뢰즈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에 대한 소회를 적은 것. 쉽게 말해, 어떤 과거도 지금에 미치고 있는 모든 함수이며,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는 이야기.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는 듯 했던 권태의 날들조차도, 결국엔 내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간이다. 들뢰즈를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내겐 들뢰즈의 철학 자체가 그런 천칙이기도 하다.
글쓰기 관련 어록에 관한 기획과 바로 잇대어 출간된 철학자들의 어록에 관한 기획은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이었다. 예전에 서머리 노트에 적어놓았던 것들을 다시 뒤적거리다 보면, 도대체 이런 책은 언제 읽고 정리해 둔 것일까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들도 꽤 많이 있었다. 그 잊혀진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되찾은 시간'으로 각색해 본 것. 그런데 머지않은 미래에 이런 기획을 맡을 줄 알고 적어둔 어록들이었겠는가.
때론 저걸 어디다 쓸 때가 있을까 싶어도 그냥 혹시나 해서 적어 놓았던 것들이, 나중에 문득 적소의 사용처가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다. 들뢰즈는 ‘발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들뢰즈의 철학 서사는 대개 이 전제로부터 뻗어나가거나, 이 결론으로 수렴하거나이다. 우리의 인생은 모든 시간에 걸쳐 그런 발생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당장에 ‘아직’ 모를 뿐이다.
그림은 박상희 작가님이 보내주신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