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들뢰즈, 소쉬르
... 외침은 공포와 유사하지 않고, 내민 손은 배고픔의 감각과 유사하지 않다. 일단 합의되기에 이른 이 기호들은 자연에 의해 결정적으로 확립되었으므로, 여전히 ‘환상과 변덕’이 없게 되지만, 스스로 가리키는 것의 본질은 표현하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기호들이 결코 지칭의 대상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말과 사물>, 민음사, 이규현 역, p170 -
... 의성어는 자연 발생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물과 닮은 기호의 의도적인 분절, 즉 ‘명명하고자 하는 대상이 내는 동일한 소리를 목소리로 내는 것’이다. 또한 감각으로 경험된 닮음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 ... - 같은 책, p170 -
<도덕경>의 가장 유명한 첫 구절,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에 다름 아니다. 동물 울음소리를 표기함에 있어서도 나라마다 다르잖아. 울음소리가 다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듯 언어는 재현의 기호이지만,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과 일치하는 건 아니다.
담론은 언어 기호에 의해 재현되는 재현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언어 기호의 특수성, 그리고 언어 기호로 하여금 다른 모든 기호보다 더 적절하게 재현을 드러내고 분석하며 재구성하게 해 주는 이 이상한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모든 기호 체계 사이에서 언어의 속성은 무엇일까? ... - 같은 책, p134 -
명제는 언어의 가장 일반적이며 동시에 가장 기초적인 형태이다. 명제 아래에는 분명히 낱말이 있지만, 언어가 낱말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인간은 단순한 소리만을 외쳤을 것이 사실이나, 소리는 설령 단음절 내부에서일지라도 명제의 고유한 관계를 내포할 때부터서야 비로소 언어가 되기 시작했다. ... - 같은 책, p149 -
물리학자들이 칠판 가득 알파벳만 써놓고서 수학적 계산을 하는 것 보면 신기하지 않아? 기호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러나 교통표지판에 담긴 의미가 곧 언어는 아니라는 거야. 낱말도 그 자체로 언어는 아니고...
들뢰즈는 사랑의 기호를 예로 든 적이 있는데... 말 속의 낱말만 해석하면 오해의 여지가 없지. 그런데 말이란 게 그렇던가? 그만하라는 건지, 더 하라는 건지가 애매한 경우들이 있잖아. 오해가 없도록 말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굴까? 그런데 또 그런 이유도 있잖아. 그 오해의 범주 속에 자신의 도피처를 마련하기도 하는... 난 원래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는 이게 파롤과 랑그 개념이다. 푸코는 이 도식으로 ‘담론’을 설명하기도 한다. 언어의 기저에 존재하는 일반 문법, 이건 모두가 지키려 하는 ‘담론’이라는 거야. 이 문법 개념이란 게 꼭 통사론적 측면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논문 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그런 문체로 쓰면 안 된다, 논문에 그런 책을 인용하는 게 아니다, 였다. 즉 학계에는 그것이 논문으로서의 조건이 성립할 수 있는 담론이 있는 거야. 문단도 마찬가지지. 그것이 문학일 수 있는 담론이 있다. 그래서 이 문단에서 벗어난 문학을 장르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하잖아. 어찌 보면 유치하고 웃긴 거지. 그러나 정작 푸코의 철학을 설명하는 글들조차 그 담론 안에 있다는 거.
글쓰기 시장에서도, ‘반듯한 글쓰기’는 그저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 감흥이 있는 글들은 반듯하진 않잖아? 저자의 개성, 그 변주 속에서 말초를 건드리는 거고... 관공서의 공문은 반듯한 글쓰기가 필요하지. 문서를 주고받는 서로 간의 오해가 없어야 하니까. 그러나 문학은 독자의 오해 속에 더욱 풍요로워지는 해석이라는, 유행도 한참 지난 포스트 모던의 철학.
... 언어의 존재를 간직하고 자신을 위해 언어의 존재를 해방하는 담론, 그것은 문학이다. - 같은 책, p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