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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7. 2022

친구여! 이젠 뭘 하더라도, 그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슬램덩크, 그로부터 20년 후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여 술잔을 기울였던 어느 여름날. 친구 중 한 놈이 사회인 농구협회 임원을 맡아보고 있던 터라, 술자리에서 농구 이야기가 이어졌다. ‘왕년’의 추억에 취해 서로가 서로를 고무시키는 분위기가 불안하다 싶더니, 결국 술을 마시다 말고 농구를 하러 갔다.


  모두가 농구광이었던 그때 그 시절에야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이 미친놈들은 아직도 지들이 17살인 줄 안다. 옛날에 곧잘 덩크도 작렬시키던 녀석은 이제 바닥으로부터 한 10cm를 뛰는 것 같다. 현란한 드리볼과 재빠른 돌파로 상대를 유린하던 녀석은, 잠깐의 질주에도 욕지기가 올라올 판이다. 외곽슛은 아무도 안 들어간다. 그래도 게임을 뛰다보니 어렴풋이 옛날 가닥이 나온다. 여전히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로가 서로를 대견해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는 듯 내내 즐거워하던 김과장과 이주임, 예성이 아버지, 지오 아버지... 정말로 17살로 돌아간 듯 했던 아주 잠깐, 이젠 쏟아 부을 수 있는 열정이란 게 고작 그 정도이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대로 충동에 충실해 보는 잠깐. 그 결과가 내일 아침의 근육통일지라도... 아주 오래 전에 떠나보낸 여름날을 되찾아오기에는 이젠 너무도 후달리는 체력, 또 한 해의 여름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그래도 17살의 기분으로 37살의 여름을 놓아준 어느 날이었다.

  내 또래들의 학창시절엔 그야말로 농구 열풍이었다. 체육선생님이 공만 던져주면 알아서 놀았던 시절의 교육과정에선, 농구골대를 차지하지 못한 녀석들이 축구를 했을 정도이다. 전교 1등과 전교 꼴지가 따가운 햇살 아래 미끄덩거리는 살을 맞대고 어울리던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이키는 에어조던 시리즈 하나로 아디다스와 리복을 저만치 따돌리고 앞서가고 있었다. 뻔히 가지 못할 대학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연고전에는 어찌나 환호를 쏟아냈던지... 매주 화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주간만화잡지의 발행일에는, 반의 모든 아이들이 야자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이면 열혈 독자였던 친구 한 놈이 석식 시간을 이용해, 학교 근처의 서점에서 이번 주의 이야기를 사들고 왔기 때문이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는 지점이 공설운동장의 농구코트였다. 당시 우리 집이 그 근처였던 관계로 나는 항상 불려나갔다. 녀석들과 놀다 보니 농구공이 손에 익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농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잘 하기도 했다. 길거리 농구 대회의 지역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력도 지니고 있으니...


  “서른 살이 되어도 우린 이러고 있을까?”

  친구들 모두가 군에서 전역을 하고 다시 공설운동장에 모였던 어느 날, 또 한바탕 내일이 없을 것처럼 열정을 불사르고 난 뒤 서로에게 던졌던 질문인 동시에 그 자체로 대답이었다. 미래의 모습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라는 한심함으로, 하지만 서른의 시간이 다가와도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을 거라는 애틋함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대며 나누었던, 이젠 자못 먼 시간 너머에 두고 온 우리들의 대화이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우리는 ‘이러고’ 있지 못했다. 다들 저 사는 게 바빠서, 한 곳에 모여 ‘이러고’ 있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그 해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그 순간이 ‘이러고’ 있을 수 있었던 우리의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젠 그때처럼 자주 모일 수도 없을뿐더러, 모인다 해도 그 장소가 공설운동장은 아니다. 그 뜨거웠던 날들에 청춘의 온도만큼으로 불사르던 열정은, 이젠 지겹도록 반복하는 회상 속에서만 애틋할 뿐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가 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함께 농구를 즐겼던 기억이 많을 뿐, 그것이 유일한 매개였던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같이 보고 들었던 사람들, 그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멀어지는 뒷모습이 애잔해 보이는 이들. 어쩌면 함께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우리가 친구가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 민이언, 봄스윗봄, <그로부터 20년 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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