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동양의 龍
... 원시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신, 즉 인격을 가진 자연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그 대부분의 내용은 비를 내려달라거나 홍수를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것 같은 인간의 일방적인 염원이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대표적인 자연신은 용(龍)이다. 그 이유는 중국의 지리적 환경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광대한 국토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장대한 두 개의 물줄기, 황하(黃河)와 장강(長江, 양자강)은 한국이나 일본 같은 작은 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강의 이미지를 넘어선다. ... 이런 모습을 상공에서 보면, 틀림없이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괴로워서 몸부림치는 광경처럼 보일 것이다. 이처럼 황하와 장강은 그 자체로 용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 마노 다카야, <도교의 신들>, 들녘, p211 -
용은 비를 내리고, 물을 공급하며, 홍수를 일으키는 등 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이다. 따라서 용은 바다와 호수, 하천, 연못, 우물을 비롯하여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살고 있다.
용은 원래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구렁이(大蛇, 산스크리트어로 Naga)였다. 그리고 불교 전설에서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구름과 천둥 비를 부리는 동물로 석가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팔대 용왕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네 다리를 가진 거대한 구렁이의 모습에 사슴 같은 뿔과 빛나는 눈, 촉수처럼 긴 혀를 가지게 되었다. ... - 같은 책, p212 -
용의 이미지는 서양과 동양의 것이 다르면서도 유사성은 지니고 있잖아. 어느 쪽이든 뱀과 관련한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인도는 힌두의 민간전승에 등장하는 용(nāga)을 불교도 사용했고, 그게 중국으로 넘어온 거라는 설이 있다. 그 설을 반박하는,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용(龍)의 존재가 확인되는 문헌들도 있단다.
한자 치(治)는 물길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많은 인구가 물가에 모여 살았던 농경 시대에는 강의 범람이 민감한 사안이었다. 때문에 치수(治水)의 능력이 곧 정치(政治)적 역량이기도 했다. 용은 강의 상징화란 설도 있다. 용과 왕의 상관성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는 필요한 순간에만 용으로 변하고, 평상시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신화 속에서의 용왕이 이렇단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스토리텔링에서도 용왕은 인격적 신의 이미지였던 것처럼...
12지지에서는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이잖아. 나머지 동물들은 농경사회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경우. 달리 생각해 보자면, 당대 사람들은 용을 상상의 동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지. 그만큼 일상 안으로 친근히 들어와 있는 상징계(라캉)였던 것.
여러 동물들의 특징을 모아 놓은 형태라고 하잖아. 그래서 사주팔자에 辰이란 글자가 있는 사람은, 재주가 많다고들 해. 세운, 월운, 대운과 달리 일진(日辰)이라고 하잖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나절의 분주한 시간이기도 하기에, 辰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바쁘게 살아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