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개인적으로 수상 이력의 권위를 신뢰도로 삼는 편은 아니지만, 네티즌 평점은 성실히 참고하는 편이다. 대중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재미있는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나 평점의 타탕도로 감상해 봤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알겠고, 마지막 장면에 담긴 상징에서도 충분히 감동을 해줄 용의도 있으며, 단 하나의 사건으로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을 뽑아내는 감독의 역량도 알겠는데...
‘정말 이거 재미있는 건가?’
라는, 세간의 평을 향했다기 보단 내 자신의 소양을 향한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꾸역꾸역 봤다는 느낌.
감독은 내심 <어린 왕자>의 포맷을 의도한 것 같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어른들을 통해 진부하고도 노회한 ‘권위’를 비판하고자... 그런데 굳이 왜 집어넣었을까 싶은 러닝타임들도 꽤 있다. 영화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인에게 이 영화의 주제를 대리하는 듯한 선문답을 맡김으로써, 감독의 철학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뭐 그렇게까지 세련된 문법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아랍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연기자들의 연기가 어색하다는 사실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고, 아역배우들의 부단히도 흔들리는 동공에서는 마주하고 있는 카메라감독의 시선이 느껴질 정도이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의 87년도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사촌 집에 놀러갔다가 공책을 두고 온 한 학생이, 다른 종이에다 숙제를 해왔다. 숙제를 안 해온 것도 아니건만, 선생은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있을 시에는 퇴학을 시키겠노라 그야말로 '쥐 잡듯'이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아니 어느 교육과정이었건 간에 뭔 퇴학 사유가 이토록 간단한가 싶지만, 또 아이들은 그 도덕에 수긍하며 자라난다.
그런데 선생에게 호되게 혼이 난 친구의 공책을 그 짝꿍이 가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죄다 똑같은 공책을 사용하는 학급인지라, 친구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가방에 넣었다. 친구는 또 다시 다른 종이에 숙제를 하게 생겼다. 이는 곧 퇴학을 의미하지 않던가. 영화는 친구의 퇴학을 막기 위해, 어디인지도 모르는 친구의 집을 찾아나서는 동심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지정된 공책에 숙제를 해 오지 않으면 퇴학을 시켜버린다는 선생의 으름장, 그리고 획일화된 교육의 상징으로서 전 학급의 학생이 똑같이 사용하고 있는 공책이, 아이가 떠나는 여정의 원인인 셈이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도중에 마주치는 어른들은, 아이가 왜 친구의 집을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이가 그토록 성실히 설명을 해댔건만, ‘그래도 된다’, ‘이래야 한다’의 소신만으로 일방적이다. 어른들은 교사의 교육방침을 따르려는 아이의 순수함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다. 그리고 저마다가 생각하는 도덕을 늘어놓는 일에만 열정적이다. 실상 어른들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훈육 방식에 아이만 환장할 지경이다.
저 놈은 저걸 하라고 하고, 이 놈은 이걸 하라고 하는 어른들. 주체적인 선택은커녕, 무작정 어른들의 말을 따르려 해도 하나를 선택해야 할 판국에, 선택되지 못한 충고의 주체들은 서로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느냐고 아이에게 따져 묻는다. 그러면서도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믿음으로 자기 말만 해댄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님에도...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어떠할까? 저 건조한 모래 바람 사이에서 여전히 굳건한, 보수적이고도 권위적인 풍토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