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선 예언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은, 제어 범주를 넘어선 불안의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관계의 어려움, 특히 사랑의 어려움은 그런 거잖아. 내가 그린대로 구현되지 않는 너와 나 사이의 문제.
SF소설과 영화가 예언했던 미래가 현실로 구현되는 사례들. 이는 미래를 내다본 인문적 지평일까? 과학의 ‘뒤돌아선 예언’일까? 과학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인문이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 미래는 불안까지 구현한다. 자율주행에 제기되는 불안은, 시스템 오류로 인해 운전자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문제. AI 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이를테면 <터미네이터>나 <공각기동대>와 같은, 오래된 영화가 언급했던 불안에 관한 것이다.
AI에겐 욕망을 주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자각도 있을 수 없다던 설명. 그러나 AI는 그것이 욕망인지 어떤지에 대한 이해 없이, 그것이 가져올 손익을 계산하며, 거짓말도 한다.
어떤 전쟁이고, 그 이면에 재화와 경제의 문제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전쟁을 겪은 이후에는 에너지 균형이 안정화된다는 통계가 있다. 이걸 영화로 해석한 가장 유명한 경우가, 아마도 타노스의 핑거스냅. AI가 효율을 위해 전쟁을 부추길 수 있을 거라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을까? 단지 상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미래일 수도 있고...
교직 시절, 년차가 쌓일수록 수업하기가 점점 싫어졌다. 그냥 교무실에 앉아 교육청에 보고서 제출하는 일이 더 편했다. 세련된 언변도 아닌 터, 수업을 잘 했다고 자평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
대학교 강의 들어왔다. 주제는 <공각기동대>. 저 애니메이션을 철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가 보다.
먼저 말씀드렸다. 난 세련된 언변의 소유자는 아니라고...
그럼에도,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젠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