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음유시인의 등장

김광석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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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세기에 이르러 궁정시인과 가인들은 그들(미무스)과 엄격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와 다음 몇 세대의 교황중심주의의 결과 이들 궁정시인은 상류사회의 고객을 잃고 하층민 사이에서의 미무스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비로소 그 경쟁에서 견디기 위해 스스로 미무스 연기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 아트놀트 하우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옛날의 시(詩) 개념은 무대 상연과 연회에서 쓰이던 것까지를 포함했다. 봉건의 구조에서는 전업 시인의 수요가 있었던 것. 그러나 기독교 사회가 되어서는, 교회에서 발주하는 예술품에 시가 끼어 있었을 리 없잖아.


미무스(mimus)는 광대라는 뜻으로, 대중들을 위한 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던 엔터테이너였다. 현대 영어 단어 ‘mime(마임)’의 어원이기도 하단다. 오갈 곳이 없어진 궁정시인들이 이 시장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두 장르가 융합된다. ‘음유시인’의 등장이었다.


한국 가요사에서는 그 표상인 김광석. 클래식은 아니지만, 또한 그의 음악에 격조를 따져 묻지도 않잖아. 격식에 얽매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내가 더듬더듬거리며 찾아가는 방향성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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