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웨이브컴퍼니의 로컬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 이야기
오는 5월 1일 오픈을 앞두고 있는 강릉의 로컬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을 기획하고 만드는 경험을 기록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파도살롱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브랜드와 공간을 A부터 Z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소중한 기획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에서는 아이디에이션부터 리서치, 기획 그리고 브랜딩까지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브랜드나 공간을 만드는 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많은 케이스에서 예산 이슈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무언가를 만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고향인 강원도 강릉으로 내려온 지 만으로 1년이 지났다. 이 열두 달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해보는 공간 기획과 운영 그리고 지역에서의 관계와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고민들을 가져다주었다. 주로 '기획'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에 문제를 개선하는 디자인적인 접근을 이용했다. 지역이 가진 문제는 무엇일까.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와 배경이 있겠지만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강릉의 경우에는 도시가 가진 바다와 자연이라는 큰 자산을 활용하여 동해안 최대의 관광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기에 강릉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정주하거나 거주하는 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거나 지역이 가진 경쟁력과 개인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창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위의 두 접근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두 방법 모두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강원도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지역에서의 창업이나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우리는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른다. 밀레니얼이 가진 다양한 인생에 대한 접근법과 여러 외부환경으로 인해 이러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강원도에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실험에 부스팅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 LCA(Local Creator Accleration) 프로그램이다. 초기 창업자들에게 지역에서 잘 자리를 잡고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다. 과거 서울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보자면 관계의 밀도가 매우 높은 커뮤니티다.
강원도에 대한 외부의 관심도 결코 적지 않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강릉에도 1,000 객실 이상의 대규모 호텔이 두 곳이나 늘었고 강릉-서울역을 연결하는 KTX선이 생겼다. 강릉과 같은 작지 않은 규모의 관광도시가 2018년 전년대비 약 15%의 방문객 증가율을 보였다. 접근성과 도시 인지도가 높아지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먹거리 콘텐츠 등이 성장한 결과이다. 누군가가 말하는 포스트 제주로서의 가능성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강원도가 제안할 수 있는 여행이나 여가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심은 비단 관광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디지털노마드나 리모트 워크 등의 키워드가 연결되기도 한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회사에 다니거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강원도를 찾는다. 해외를 논외로 한다면 국내에서 원격 근무지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제주도이다. 섬이라는 고립이 만들어 주는 느낌과 이국적인 풍경 그리고 다양한 로컬 콘텐츠들을 경험할 수 있기에 리모트 워커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재미있는 것은 많은 지인들이 제주도 다음으로의 원격 근무지로 강원도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자연환경과 접근성이라는 좋은 이유를 가지고 강원도를 방문한다. (강원도 중에서도 강릉이나 속초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보통은 오랜 기간 거주의 목적이 아니라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둔 리모트 워크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은 강릉이나 동해안 여러 지역에서 이런 리모트 워커들이 원하는 숙박 공간이나 오피스 공간이 많지 않다.
지역에서는 아직 코워킹 스페이스는 생경한 말이다. 무언가를 기획할 때 감에 의존하기보다는 정량적인 지표나 정성적인 인터뷰를 통해 근거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로컬들을 인터뷰할 때 코워킹 스페이스를 설명하는 일과 수요 조사나 그에 대한 리서치를 추가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여러 번의 서베이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강릉에는 현재 코워킹스페이스를 선호할 만한 회사나 프리랜스 직군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게 발견한 사실은 대학생들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관심이었다. 지역에 남고자하는 대학생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들은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거나 창업의 프로세스에 대해 직, 간접적인 경험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두 번째로 우리 회사에 대한 평판이 있었다.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며 커뮤니티를 만들다 보니, 코워킹스페이스의 ‘워크스페이스’ 자체보다는 우리와의 네트워크를 원하는 분들의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디에이션이나 리서치가 끝나면 브랜드를 정의하는 단계가 온다. 파도살롱의 경우에는 약 3주 동안 브랜딩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가 핵심가치로 정한 키워드는 기업가정신, 편암함, 효율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다. 첫째로는 기업가정신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지역을 만드는 창업을 돕고자 하는 뜻을 가진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편안함과 효율성이라는 가치는 오피스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일 하는 공간이 불편하거나 업무 효율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테니.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을 가치로 삼고 싶었다. 지역은 세이프 플랫폼이 아니다. 별다른 안전망이 없다. 그렇기에 파도살롱이라는 코워킹스페이스 그리고 커뮤니티에 있는 분들에게는 지속가능성의 중요성과 방법들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약간의 마케팅과 세일즈에 대한 예상도 해보았다. 전체 타깃을 로컬(80%)>방문객(20%)으로 러프하게 나누고 마케팅 포인트와 투어, 프로그램, 세일즈 등 카테고리별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어보는 것을 진행했다.
코워킹스페이스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워킹스페이스의 본질은 ‘일 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오피스로서의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같이 일하는 경험’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보았다. 같이 일하는 이유는 혼자서 일하기 심심해서일 수도 있고 같이 일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현재의 코워킹스페이스를 단순하게는 커뮤니티와 부동산 임대업의 콤비네이션으로 규정한다. 대도시의 프라임급 빌딩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는 부동산업의 느낌이 조금 더 많이 나고 커뮤니티 레벨이 높은 코워킹 스페이스는 반대로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크다. 이는 사람들이 코워킹스페이스에서 기대하는 가치와도 연결시켜볼 수 있는데 결국 지역에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대규모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오피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로컬에서의 코워킹스페이스는 공간 비즈니스에 기반을 두지만 결국 커뮤니티 비즈니스다. 파도살롱의 브랜드 도큐먼트 첫 번째 장의 텍스트가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커뮤니티로 바뀌어질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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