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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검 Sep 22. 2022

검도의 기본 예법과 에티켓

인간형성을 위한 기본 예법

2009년에 광화문에 위치한 대통령 위원회로 1년 간 파견나간 적이 있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 하다보니 집에 아무리 빨리와도 8시 반 이전에 도착이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1년간 검도를 쉬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근무지 지하 3층에 8단 선생님께서 지도하는 검도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는 서울시청 직원들만을 상대로 지도하셨는데 근처 직장인들까지 받아주시기로 했고 그렇게 선생님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96년도에 검도를 시작했으니 그때만 해도 이미 12년 정도 검도를 수련했고 미국에서도 일본 선생님 밑에서 4년간 함께 운동을 했기 때문에 잘은 못해도 웬만한 건 다 들어봤다는 근거없는 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첫 날부터 그동안 도장에서 듣지 못했던 말씀을 던져주시기 시작했다. 1기 회원이 모인 첫날 맥주집에서는 '검도는 인연' 이라고 화두를 던지시더니, 수업 첫날에도 '검도는 검의 이법을 통해 인간을 형성하기 위한 수행과정' 이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선생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정의한 검도의 '의의'가 바로 그것이며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모든 검도인들이 그렇게 알고 수행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검도의 의의가 인간형성이라고?. 건강이나 호신을 위한 취미생활이 아니고?. 그것도 전 세계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고? 부끄럽지만 이전에 한번도 도장에서 그렇게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검도가 인생같다는 추상적인 말씀을 간혹 듣긴했지만 '검의 수련을 통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머리 한 켠을 얻어 맞은 듯 했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그렇게까지 검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오래지 않아 항상 스스로 엄격하게 수련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검도수련 목적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아직까지도 나를 변화시키는 '수양으로써의 검도'는 여전히 부족하다. 


다음은 8단 범사 서병윤 선생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정리한 검도의 예법이다. 수업 중간 틈틈이 검도의 예절과 예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만 2010년 여름, 춘천 오월당에서 두 시간 넘게 강의하신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미 대한검도회 회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고, 중앙 연수원의 지도자 강습회 때마다 강조된 내용이라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검도회보나 지도자 강습회를 접하지 못한 초보검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검도의 예법 (대한검도회 범사 8단 서병윤)


검도로 더 낳은 사람이 되기 위해 수양을 하는 사람이라면 검도수련의 기본으로써 항상 예법을 지켜야 한다.  예법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것은 평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이 교회나 법당에 들어설 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검도인도 도장에 들어설 평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비로서  '예'를 행할 수 있다. 문제는 항상 풍성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교에서 '예법'을 정해 반복적으로 수련하며 자신을 수양하는 것처럼 검도에서도 검도만의 예법을 정해 이를 지키고 반복적으로 수련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법이 항상 자신의 마음수양과 검도를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법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까지 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까지 얻는다는 점에서 예법은 때론 칼보다 무서울 수 있다.

도장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 번, 두 번 인사하고, 그것이 쌓여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상대방은 마음을 열고 나에게 가까이 오게 된다.


인간관계의 단순하고도 간단한 예법이 궁극에는 사람의 마음까지 뺏을 수 있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예법을 행한 사람에게 긍정적인 결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예법은 결국 다른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지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법이 중요하다고 해서 형식적인 마음으로 지켜서는 안된다.  각각의 예법에 온 마음을 담아 진정으로 행할때 비로서 그 의미가 있다. 도장에 들어설 때나, 인사를 할 때 단순히 고개를 까딱까딱 하는 것이 아니라 뒤통수와 허리가 일직선이 되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하되, 인사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알고 마음을 담아 진실되게 예를 표하는 것이야 말로 예법수행의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도장에 들어설 때는 도장에 대한 예로서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목례를 해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니라 함께 수련하는 공간에 대한 감사의 '예'를 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도는 절대 넘어 다니지 말아야 하고, 피치 못하게 세워 놓을 때는 죽도의 선혁(칼끝)이 땅에 닿도록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병혁이 땅에 닿도록 세워 놓아야 한다. 진검이라면 칼날 끝이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장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는 아랫사람이 먼저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선배들도 후배를 먼저 보면 먼저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사하는 것만이 예법은 아니다.


시합에 임해 경기장에 앞에 대기할 때는 상대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경기장에 들어서서 두 걸음 전진 후에 상대를 마주보고 똑바로 선 후 눈을 보며 15도 정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인사가 끝나면 허리칼을 하고 오른 발부터 삼보 전진 후 개시선(시합장 중간에 그어진 선)에 오른발을 올리는 동시에 칼을 위로 빼들어 중단을 잡는다. 이때 절대로 선혁(죽도의 끝)을 병혁(손잡이)보다 높게 쳐들어서는 안된다. 진검이라면 칼집에서 칼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항상 병혁이 죽도의 선혁보다 높도록 죽도를 파지한다. 


시합이 끝나고 나서 물러설때는 칼을 납도(허리에 칼) 한 후 뒤로 5보 물러나서 허리칼을 아래로 내리고 상대에게 처음 인사했던 것과 같이 목례한다. 목례 후에도 등을 보이지 않고 2~3보 물러서서 완전히 시합장을 벗어난 다음에야 등을 보일 수 있다. 금이 그어진 시합장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때 까지 절대 상대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된다. 시합장을 완전히 나와서 뒤돌았을때 자신의 뒤에 대기하는 다음 선수가 있는 경우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시합 중에 죽도를 떨어뜨려도 절대로 상대에게 등을 보이고 죽도를 줏으러 가면 안되며 떨어 지거나 바닥에 있는 죽도를 잡을 때에도 무릎을 편 채 허리만 굽혀 주워서는 안된다. 왼쪽무릎을 땅에 대고 허리를 세운 채 죽도를 집어 들어야 한다. 예법에도 어긋나지만 허리만 굽혀 죽도를 집어 들다가는 나이 들어서 삐끗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필요할 때 몸을 쓸 수 있도록 항시 몸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도 자신의 신체에 대한 예법이다. 파손된 죽도를 교체할 때도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서는 안되며 자신이 가져온 죽도로 교체해야 한다.


도복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길어도 안되고 짧아도 안된다. 특히 심사를 볼때에는 남루하거나 지저분한 도복을 입어서는 절대 안된다. 소매를 접어 올려서도 안되고 이것저것 지저분하게 도복에 붙이거나 불필요한 문구를 쓰지 말아야 한다. 항상 단정하고 깨끗이 입어야 하고 중간에 끈이 풀어지지 않도록 견고히 매듭지어야 한다. 검도복 상의의 소매가 호완을 덮어서는 안되고, 하의도 너무 짧거나 길지 않도록 복숭아뼈 근처까지 오도록 길이를 조정한다.


호구와 도복의 끈이 단정하고 견고히 매듭지어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단호하다는 것을 표현한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자신의 마음과 의지가 단정하고 바르고 곧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도복을 깨끗이 바르고 단정하게 입고, 호구끈도 정확히 매듭짓고 꼬이지 않도록 단정히 해야 한다. 특히 호면의 끈이 호면 위에서 교차하거나 꼬이지 않도록 하고 매듭을 묶었을 때도 매듭에서 끈의 길이가 40cm 이내가 되도록 정리해 두어야 한다. 끈의 끝은 정확히 일치해야 하며 한 쪽 끈이 길거나 짧아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이 예법이다. 


잘못된 호면 끈                                                         가지런한 호면 끈



(가지런한 호면 끈)                                                                       (잘못된 끈 처리)



행동을 단정히 하고 결연히 함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시합 당일날 서둘러서 장비와 도복을 준비하는 것보다 미리 전날 정리하고 준비 함으로써 마음도 단정히 바로 잡을 수 있다.

면수건에 글씨가 써 있을때는 자신의 뒷통수에서 제3자가 보았을 때 글씨가 제대로 보일 수 있도록 바르게 써야 한다. 글씨가 거꾸로 보이거나 뒤집혀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호면 위에 면수건을 올려놓을 때도 이와 같다.


호면을 들고 자리를 옮길 때도 호면의 면금이 아래로, 호면의 턱 보호대(아고) 부분이 앞을 향하도록 하고 호완의 주먹부분이 호면 속에 들어가도록 정리해서 오른손으로 면금을 받쳐들고 겨드랑이에 고정시켜 이동해야 한다.


단체전에 들어가서는 열을 맞춰 자리를 옮기고 다섯 명이 자리를 잡은 즉시 모두 똑바로 서서 본부석에 인사를 하고 앉는다. 이때 상대방에는 절대로 인사하지 않는다. 작은 행동이지만 심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호구를 갖추고 앉을 때도 왼쪽 호완을 먼저 자신의 오른쪽 무릎 옆 약간 앞에 놓는다. 이때 주먹위치가 오른 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오른쪽 호완은 왼쪽 호완 앞에 수평이 되도록 놓고 주먹은 왼쪽을 향하도록 한다. 호면 위에 호구를 벗어 면금을 아래로, 호면의 턱(아고)부분이 몸쪽으로 오게 가지런히 올려 놓는다. 면수건은 글씨를 자신이 읽을 수 있도록 호면 위에 덮는다.이때 호면을 반으로 접어도 된다.


시합 중에 상대의 겨드랑이를 가격하거나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사과의 뜻을 표해 감정싸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법을 지키면 상대도 성내거나 화내지 않는다. 시합 중 쓰러진 상대를 일으켜 세워준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연습 중에 자신과 상대해 주신 선생님께는 끝나고 나서 반드시 좌례로 인사해야 하며 앉을 때도 왼쪽 무릎부터 꿇어 앉고 일어설 때는 오른쪽 무릎부터 일어선다.


일반 도장에서 가끔 구령중에 '국기에 대한 예'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확히는 '국기에 대한 경례' 라고 해야 한다. 선생님에 대한 경례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께 대한 예라고 하지 말고 정확히 '선생님께 경례'라고 해야 하며 상호간의 인사도 '상호간에 경례' 라고 해야 한다. 

후리기는 '시작' 이라고 구령해야 하지만, '1,2,3동작 머리치기'와 빠른 머리치기는 '머리를 쳐' 라고 구령해야 한다. '상하 후리기 10회 시작' 이라고 하거나 '일동작 정면머리치기 30회. 머리를 쳐!' 라고 하는 식이다. 


연격을 할 때도 선생님께서 연격! 이라고 말씀하시면 바로 기합을 넣고 시작해야 한다. 연격을 하는 사람이  '연격!' 이라고 복창하지 않는다.


대련 시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받아 주는 칼을 써서는 안되며 항상 공격하되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초보자에게 무리하게 공격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선생님과 대련 할때는 뒤로 가거나 하지 말고 기술을 써서 어떻게 든지 앞으로 뚫고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만, 선생님과 대련시에는 함부로 선생님의 죽도를 내려치거나 누르지 말아야 하고 연로하신 선생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받음은 삼가해야 한다. 선생님에게는 '기능'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힘을 사용하는 검도는 하지 않는다. 당연히 선생님에게 '찌름'이나 코등이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과 수련 후에는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배웠던 연습상대가 선생님 앞에 나가 좌례를 표한 후 호면을 받아 드려야 한다. 받아든 호면은 선생님 우측 호완위에 에 가지런히 놓고 좌례를 표한 후 자신의 죽도와 호완을 챙겨 자리로 돌아온다. 


 


덧붙이며.. 

오래 수련을 한 검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몸에 숙달이 되어 있지만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위의 내용을 숙지하고 제대로 지키기에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항상 불평이 따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한검도회의 검도예법은 전 세계 모든 검도인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지키고 있는 최소한의 예법이다. 일본과 함께 항상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검도인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지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직접 방문했던 핀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네덜란드의 검도인들 보다 예법수련을 엄격히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중앙심사와 각종 연수를 통해 지속적으로 교육 받는 사범급 지도자들은 대부분 엄격하게 예법을 지키고 있지만 도장의 초보자들도 모두 예법을 검도 수련의 한 축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Imafuji 선생(Kendo guide for Beginners)은 도장에 출입할 때 모자와 겉옷을 벗어야 하고, 도장에 착석하는 순서마저 도장의 출입문을 기준으로 구분해 앉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발을 벗고 도장에 들어설 때도 도장 정면에 자신의 엉덩이가 향하지 않도록 옆으로 돌아 신발을 정리 해야하며, 나갈 때도 마찬가지로 옆으로 돌아 다시 신발을 정리해 신고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외국의 일선 도장에서는 예법을 훨씬 더 엄격하게 가르친다. 안식년으로 1년 간 머물렀던 미국 클리블랜드 도장에서는 도장의 바닥을 수련이 끝난 후에 모든 수련생들이 함께 쓸고 닦았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걸레질을 하되, 자신의 엉덩이가 절대로 도장 정면을 향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이들 조차 항상 죽도의 칼 끝이 바닥을 향하지 않도록 세워놓았고, 도장을 아무리 여러번 드나들어도 도장 정면을 향해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도장 바닥에 눕고,벽에 기대거나 다리를 펴고 주저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 일본 도장에서 신전을 모실때 처럼 신발까지 방향을 두고 정리하라는 식의 일본식 예법을 우리 검도의 예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거부감을 느낀다.그래서 대한검도회에서는 '정면에 대한 예' 와 같은 일본식 검도예법을 생략하고 국기예 대한 경례를 추가했는지 모른다. 일부 예법에 있어 일본과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검도의 예법은 전 세계인의 검도예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칼에 대한 존중, 안전한 수련, 상호간의 예의, 스승에 대한 존경, 도장에 대한 감사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 검도의 예법을 엄격하게 지도 받은 사람들은 검도의 예법과 검도수련을 따로 보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예법을 갖추지 못했다면 검도를 '수행'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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