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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y 11. 2023

조용한 브랜드

편지가게 글월

일련의 브랜딩 과정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많은 경우 좋은 브랜드의 히스토리는 그 이름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이 가진 힘은 정량적 수치로는 증명이 어려우나,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갈수록 ‘네이밍’에 집착하는 현상이 그 중요성을 나타낸다. 이름부터 신경 쓴 사업이 그 형상과 색을 갖추고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몇몇 사례로 살펴본다.




편지가 된 브랜드


글, 편지, 카페. 글을 떠올리자면 우선 생각나는 세 가지 단어다. 글은 책도 되고, 편지도 되고, 짧지만 깊이 있는 단문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쓰고 지우는 것이 간편해 쓸 말 못쓸 말 다 적기 편해진 세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글 쓰는 도구, 공간, 책상 등 좀 느리고 무디게 변하는 것들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처음 ‘편지 가게’라는 사업을 접했을 때 세밀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었다. 어느 웹 개발 플랫폼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글월’이란 편지가게의 강연에 ‘편지’란 단어가 있어 주저 없이 참여버튼을 눌렀다. 들어보니, 상상했던 그런 분위기의 가게와 브랜드였다.


글월 대표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브랜드 스토리를 전했다. 글월의 시작은 프로젝트성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직무상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걸 즐겨하던 대표는 현재 모두를 둘러싼 디지털 콘텐츠를 벗어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비공개 콘텐츠인 ‘편지’에 매력을 느꼈고, 생각보다 주위에 편지 관련 소품을 파는 가게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편지 가게를 열기로 한닼 처음엔 1년 정도를 기한으로 예산 계획을 세웠다. 해 보고 사업성이 없다면 접을 각오로 시작했고, 그렇게 편지를 닮은(월세도 저렴한) 그런 공간을 찾아다니다 연희동의 한적한 골목에서 글월의 둥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글월의 브랜딩 과정은 간단했고 원칙적이었다. 이름과 공간이 정해지자 로고와 서체를 정하고,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브랜드페이지를 만들어 꼭 필요한 소통을 했다. 단기간의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서비스 인지도가 올라갔다. 여러 브랜드와의 콜라보 등 더 다채로운 이벤트도 진행했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한 자체 홍보의 메시지는 여전히 절제되고 느리고 안정된 분위기를 유지했다. 콘텐츠 게재 빈도도 지나치게 잦지 않게 유지하며 바이럴이나 노이즈 마케팅은 지양했다. 1년을 계획하고 시작했던 글월은 수년이 지난 지금, 성수동에 두 번째 점포를 열었으니 성공한 브랜드가 된 셈이다.


글월은 편지의 순 우리말이다.


글월 홈페이지



간판 없는 카페


‘가배도’는 강남과 삼성, 명동 등 시내 요지에 위치한 성공한 프랜차이즈 카페다. 가게마다 인테리어 콘셉트가 다른데, 특히 신논현역 인근의 점포는 눈에 띄지 않아 인상적이다. 가배도는 ‘커피의 옛말인 '咖啡(가배)’에 ‘섬’을 뜻하는 ‘島(도)’가 더해져 도심 속 커피가 있는 작은 섬의 호젓한 정서를 담은 이름’이라고 브랜드 의미를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유독 신논현점은 다른 커피를 파는 카페들과 다르게 해가 잘 드는 건물 2층에 위치하며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지나다 발견하기 쉽지 않은 외관이 마치 섬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배도는 특유의 디저트와 커피 메뉴 외에도 그 분위기가 바이럴로 전해져 알음알음 찾게 되는 카페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공간에서 가배도를 검색해 보면 창에서 비추는 자연광이 차분히 내려앉은 레트로 감성의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공간을 채우는 클래식 원목 가구와,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스타일의 테이블웨어의 조화가 눈에 편하다. 사업의 철학과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일관된 언어로 각기 다른 표지의 노트에 적어둔 것 같은 가배도, 그중 신논현점은 그걸 펼쳐 읽는이 모두의 자유로운 메모가 가능한 정도의 충분한 여백과 같은 여유있는 공간 구성이다.


가배도에서

 


상식 부흥의 시대


더몰상식, 르네상식 모두 ‘늘 먹는 밥’이란 의미의 상식 브랜드 패밀리에 속한다. 더몰상식은 한식 간편식을 판매하는 몰이고 르네상식은 프랜차이즈 한식 카페다. 더몰상식은 ‘늘 먹는 국’이라는 의미의 ‘늘숲(neulsoup)’ 제품을 판매했다. ‘몰상식’이라는 부정적 어감엔 ‘비상식적 먹거리의 파괴’라는 함의로 브랜드 스토리를 꾸몄다.


상식 브랜드 패밀리의 형성 과정은 글월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름을 먼저 지었고 브랜드 컬러는 디자이너와 상의해 정했다. 의미를 담고자 디자인을 가장 잘 구현할 디자이너를 포트폴리오를 보고 선정했다. 프로젝트성이라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들인 자원 중 진정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서인지 여러 브랜드 작업 중 제일 애착이 간다.





좋은 브랜드에 그저 불현듯 의 아이디어로 0원을 지출한 창업자가 있는 반면 수억부터 수십억 원을 들인 고가의 브랜드 기획도 있다. 그러나 투자한 비용의 크기가 성공의 크기와 꼭 같지는 않다. 아니, 성공의 크기와 브랜드 가치는 때론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글월의 브랜딩을 위해 창업자가 했던 일은 이름 정하기, 디자이너 섭외하기, 디자이너의 가이드대로 결과물을 상품과 서비스에 잘 적용하기였다.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이루는 모든 요소에 서비스의 본질과 대표의 스타일이 녹아들었으니, 대표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균형이 쉬이 깨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표지 사진 : UnsplashKate Ma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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