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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pr 12. 2023

넌 뭘 해도 예뻐

필름에서 의류로 - Kodak 브랜드 이야기

...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윤하 '사건의 지평선' 중



감각이 남다르다 생각한 회사의 디자이너 동료가 입은 셔츠가 그날따라 눈에 띄었다. 왠지 익숙한 듯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어색한 로고, 바로 우리 회사의 브랜드가 프린팅 된 셔츠였기 때문이다. 얼핏 봐선 커스텀 프린팅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로고와 옷이 조화로웠던 셔츠는 사실 디자이너분의 개인 소장 옷에 회사의 로고를 다리미로 열부착한 것이었다고 한다. 패션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투박한 느낌의 기술회사 로고가 생활 의류와도 멋지게 어울리는 건 그걸 입고 있던 디자이너분의 평소 안목과 센스 때문일까? 생각보다 괜찮아 옷을 팔아볼 생각에 회사 로고를 넣어 몇 벌 디자인해 뒀다는 디자이너분의 말에 어릴 때 자주 듣던 선생님의 이 말이 떠올랐다.


“넌 뭘 해도 예뻐”


물론 본인 얘기는 아니다. 평소 기본 행실이 단정하고 표정이 예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이런 칭찬을 주로 하셨다. 예의가 바르고, 친구들과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때때로 선생님을 돕기까지 하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선생님은 편애하며 웬만한 실수나 잘못도 넘어가곤 했다. 무엇을 하든 선생님이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던 아이들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친구들은 대체로 대답 잘하고, 숙제도 잘해오고, 늘 깔끔하게 옷을 입고 예쁜 표정을 짓는 등  평소 행실이 괜찮았던 것 같다. 이는 애초에 어느 정도 정해진 인상이나 외모가 아닌 행동과 생각이 빚는 ‘매력’의 영역인데,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이런 매력에 의해 형성된 신뢰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대형 사고를 쳐 누군가를 ‘크게 실망’시키지 않는 한.


대답 잘하고, 많이 물어보고 = 커뮤니케이션
늘 깔끔하게 옷을 입고 = 디자인 (스타일)
늘 예쁜 표정 = 콘셉트



뭘 해도 예쁜 이미지 = 브랜드


오래,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여 새겨진 어떤 이미지는 사람이든 제품이든 옅어지더라도 잘 사라지진 않는다. 거의 모든 브랜드는 태생부터 그런 목적을 추구하고 지향한다. 이런 의식 기능이 사람에게 작용하면 뭘 해도 이쁘다는 편애 혹은 선입견의 부작용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의 경우 지속 연명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잊힌 듯 보였던 미국의 필름 브랜드 코닥(KODAK)을 의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든 생각이다.



"A Kodak moments" 광고의 한 장면 (이미지: New York Times, 2010)




부활


LP가 음반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카세트테이프, CD, MP3 음원파일을 거쳐 디지털로 변화하며 LP는 자연스럽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여겼다. 사실 LP는 사라진 적이 없었고 일부 마니아층 위주로 소장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LP는 ‘번거로움’, ‘투박함’, ‘정제되지 않음’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의 3대 구성요소를 두루 갖췄다. 카메라계에서 이런 LP와 같은 존재가 바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필름 카메라와 필름이다.


코닥 필름 (사진: Unsplash의 Jakob Owens)


코닥은 후지와 함께 전 세계 필름시장을 양분하던 거대 기업이다. 카메라 제조사는 여럿 있었지만 필름만큼은 두 회사의 제품이 압도적으로 시장을 점유했었다. 또 카메라는 한 번 팔면 오랫동안 같은 고객에게 다시 팔기 어렵지만 필름은 소모품이라 계속 팔린다. 양사는 엄청난 경제 잠재력이 있는 아이템을 시장에서 선점한 셈이다. 그중에서도 코닥의 인기는 대단했다. 1990년대 코닥의 미국 필름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최초의 컬러 필름도 코닥이 만들었고, 1969년에 인류가 달에 처음 착륙했을 때 그 장면을 기록한 것도 코닥의 카메라와 필름이었다. 하지만 코닥은 자신들이 최초로 발명한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패권을 잃고 결국 2012년 파산 신청을 했다. 한때 세계 5대 기업이기도 했던 이미징 왕가 코닥은 이로부터 ‘망할 것 같지 않았는데 망한 기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불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LP와는 달리,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필름이라는 기술과 함께 소비자의 인식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코닥이 돌아왔다. 마치 LP처럼, ‘필름 카메라의 감성이 대중에게 되살아나 조용한 재 등장의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닌 세상 뜬금없는 ‘옷’으로 말이다.



죽지 않는 브랜드


코닥 어패럴(Kodak Apareal)은 대표적인 브랜드 콜라보 카테고리로 국내를 중심으로 빠르게 패션 시장에 침투해 확산되어가고 있다. 브랜드 론칭 직후 그 의외성에 단숨에 주목과 인기를 얻은 코닥 어패럴은 사실 코닥이 직접 론칭한 브랜드는 아니다. 하이라이트브랜즈는 한국의 패션 전문기업으로 코닥의 브랜드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계약해 코닥 어패럴을 출시했다. 코닥 어패럴은 코닥이란 필름 브랜드가 패션을 만난 가장 어색하면서도 획기적인 조합이라 평가받는다. 부조화의 조화가 성공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패션 (그것도 한국의!) 시장에서 성공의 하이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그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한몫했다. 과거에도 ‘A Kodak Moment’라는 캠페인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브랜드 헤리티지는 클래식한 감성의 어패럴로 되살아난 셈이다.


(사진: 어패럴뉴스)


곰표 (또는 말표) 맥주, 순 후추 아이스크림, 맛소금 팝콘 등 식품분야의 레트로 브랜드 콜라보는 이제 흔하다. 소비 인구가 줄어드는 요즘, 제조사와 브랜드, 브랜드와 브랜드 간 서로가 갖지 못한 시장 확장의 이점에 유희와 해학이라는 사용자 경험을 더해 시너지를 내는 전략으로, 빠른 변화와 지나친 첨단의 유행에 지친 소비자들 사이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모든 브랜드 콜라보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면밀하지 못한 기획은 의외의 경우에 소비자의 외면과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 ('모나미 매직 스파클링', '서울우유 바디워시' 참조)


특히 해외 브랜드를 라이선스 계약해 다른 모습의 제품으로 출시하는 일은 이제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코닥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위에 언급한 일부 식품 브랜드들과 달리 기술의 사양으로 사라졌다가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모습으로 돌아온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코닥 어패럴의 성공이 코닥이라는 기업의 재도약을 온전히 의미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코닥 브랜드의 패션 콜라보는 브랜드 가치가 강력하면 그 본질의 아이덴티티조차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은 확실하다.

 


스포츠와 여행의 동행 (사진: 뉴발란스 코리아)


브랜드 잠재력은 숯에 남은 열기 같다고 느낀다. 언제고 소재만 있다면 다시 타오를 정도의 브랜드 잠재력은 그만큼의 초기 소재와 기술, 오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코닥의 브랜드 헤리티지는 레트로를 갈구하는 현대의 지친 소비자들을 다시 만나 패션으로 거듭났다. 코닥 어패럴은 계량이 불가능한 비정형의 존재도 경제 가치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증명했다. 


소중한 순간을 잊지 않도록 자사의 필름을 사용하라며 'A Kodak Moment'를 말하던 기업이, 이젠 필름 없이도 잊히지 않는 브랜드로 돌아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표지 사진: Unsplash의 Annie Spratt

참고  

     첨단기술 갖춘 코닥이 망한 이유는 디지털 발전을 과소평가했기 때문, 한국경제 (2016)

     Modernizing the ‘Kodak Moment’ as Social Sharing, NY Times (2010)

     사진왕국 코닥의 몰락 … 도대체 무슨 일이, DBR (2012)

     코닥의 이유 있는 컴백, SM Blog (2021)


※해당 아티클은 인사 플랫폼 원티드 인살롱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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