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습관처럼 물으신다.
“너 예전에 유럽에서 ㅇㅇ했던거 기억나?”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도 나는 것처럼 얼버무려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승자의 표정과 핀잔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한 의심의 눈초리는 어쩔 수 없지만.
유독 기억력이 좋은 아버지는 아주 오래 전의 사소한 사건도 잘 들춰내신다. (예를 들자면) 처음 해외에 나가서 역무원에게 영어로 무엇을 좀 물어보라 했더니 쭈뼛거리며 가서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고는, 이해도 못하고 돌아와서 아무 방향이나 가리켜 한참을 역사를 헤매었던 일이나, 기차에서 사기꾼에게 당해 여권이며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려 많이 곤란했던 일, 아버지가 좀 빌려달라던 립밤을 여자친구한테 선물 받은 (그 아이가 쓰던) 거라 안된다고 해서 무척 서운했다는, 그런 소소하고 감상적인 일 말이다. 그런 흑역사는 세세한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불리하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고 했던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역사는 기억력 좋은 아버지가 쓴다.
나에 대한 흑역사가 대부분이지만, 아버지께서 기억하는 사건들을 옛날이야기처럼 듣고 있으면 그것들의 사이를 채운 현장의 공기와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해 나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주 디테일한 기억보다 전체의 흐름과 분위기를 새기는 것 같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
앞으로의 여행은 글로 남겨보려고 다음 문집의 제목을 미리 적어 보았다. 최근에 한 베를린 여행에서 현지에 사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가보고 싶어진 바다, 바로 지중해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내 머릿속의 지중해>. 그러자면 떠나야 한다.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그런데, 글의 서문을 먼저 적어뒀더니 에피소드에 대한 의지가 생겨 실제 떠나게 된 일도 있어 이번에도 글의 빈 공간이 채워짐의 준비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기억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처럼, 먼 훗날 그 기억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가장 좋았던 감정을 견인하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