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인생 첫 떡볶이
집에서 누나들과 둘러앉아 먹었다.
물에 씻어 먹었다.
싱거웠지만 매워서 고생하는 것보다 나았다.
작은 구멍 안에 구슬을 한주먹 집으면 안 빠진다는 얘기처럼 조금 포기하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구나.
교문 앞 문방구에서 파는 떡볶이
6학년 큰 누나가 1학년 나에게 50원어치 사줬다.
굵은 당면이 들어있는 떡볶이는 처음이었다.
씹는 재미가 좋았다.
둘 다 쫄깃쫄깃한데 다르게 쫄깃쫄깃했다.
집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
9살 나는 100원어치 사 먹었다.
지나가던 어떤 형이 30원을 냈다.
떡볶이 3개 집어 먹고 갔다.
형네 집이 가난한지, 형이 배부른지
엄마가 절편으로 해준 떡볶이
못된 3학년 나는 장사로 바쁜 엄마에게 떡볶이를 해달라 졸랐다.
떡볶이 떡 사러 갈 시간이 없었던 엄마는 냉장고에 있던 절편으로 해주셨다.
참기름 냄새나는 절편 떡볶이도 맛있었다.
나는 항상 나빴고, 엄마는 항상 고마웠다.
오뎅 국물을 공짜로 준다던 문방구 떡볶이
키 큰 4학년에게는 150원어치가 적당했다.
150원어치를 시키고 오뎅 국물을 두 번 먹었다.
떡볶이를 두 개 남겼다.
떡볶이가 아니라 국물을 남겼어야 했다.
누나가 주산학원 끝나고 사준 즉석떡볶이
누나, 누나 친구, 5학년 나 셋이 학원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쫄면, 양배추, 튀긴 만두가 들어간 떡볶이를 끓였다.
재료가 다양해서, 직접 해 먹어서 더 맛있었다.
나도 언젠가, 뭐든 직접 해보면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
졸업식 날 엄마가 사주신 가래떡 떡볶이
엄마가 졸업 선물로 비싼 맞춤형 롤러스케이트를 사주셨다.
탕수육이나 고기 같은 비싼 걸 먹이려고 하셨지만, 나는 그냥 시장 경미 분식으로 가자고 했다
내 졸업식 때문에 돈도 많이 쓰셨고, 가게도 오래 비우셔야 했다.
부모님 걱정도 해야 할 나이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사 먹던 떡볶이
중학교 2학년 말까지 롤러스케이트장을 다니며 팝송을 듣고, 춤을 배웠다.
형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서 나도 피웠다.
교복 입고 다니는 학교는 싫었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롤러스케이트장에 가는 주말만 기다렸다.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
학원 마치고 용희와 함께 먹었던 떡볶이
전교 2등이었던 우등생 친구 용희를 나는 한때 심하게 괴롭혔다.
인문계, 실업계를 결정해야 하는 3학년, 담임은 나를 비꼬으며 공업고등학교를 강요했다.
나는 용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같이 공부해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소중한 내 친구는 나를 이끌어 줬고,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던 난 담배도 안 폈다.
입시를 앞둔 고 3 시절 떡볶이
1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2학년이 되면서 자만했고, 일탈은 심해졌고, 성적은 무너졌다.
고3 때는 나이를 속여 술집을 자주 드나들었고, 주된 안주는 떡볶이였다.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은 없고, 후회만 있을 뿐이다.
대학시절 동기와 떡볶이
공대 토목공학과 동기 여학우 한 명, 이성을 만나기 힘든 환경이었다.
여대와 단체 미팅을 셀 수 없이 많이 했고 그때마다 1, 2 지망을 적어 남녀 짝을 지었다.
나와 두열이는 지명받지 못했고, 그들이 흥겨워할 때 남은 술은 우리 둘이 다 마셨다.
인천행 지하철 막차이건만 오바이트 나온다고 뛰쳐나간 두열이, 녀석이 토해낸 궁중 떡볶이.
동기들은 군대 가고 후배들과 정문 앞 매운 떡볶이
제대하고 복학한 형들과 군면제인 나는 성향이 영 맞지 않아 후배들과 어울렸다.
과외도 하고 용돈도 받아 늘 두둑한 주머니, 후배들을 데리고 떡볶이 집으로 갔다.
맵긴 엄청 매운데 케찹이 들었는지, 후추를 넣었는지, 당면도 섞인 것이 참 맛있어서 두 그릇 먹고 나왔다.
땀범벅, 벌게진 얼굴로 괴성을 연발하는 추한 모습을 길건너에서 보고 웃는 그녀, 내가 찍었던 예쁜 편입생.
성공의 꽃길 위에서 먹는 떡볶이
어깨 펴고 강남역을 당당히 걷던 30대 초반, 서민 음식이라며 농담했지만, 사실 그 떡볶이 맛있었다.
밴쿠버, 토론토, 몬트리올 다운타운 한인 식당에서 내가 보낸 학생들과 먹었던 떡볶이도 맛있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밤낮으로 큰돈 벌며 야식으로 시켜 먹었던 떡볶이 역시 맛있었다.
모든 게 여유로워서, 그 시절 모든 기억이 아름다워서 그랬던 게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절망에 늪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며 홀로 떡볶이
가장 믿었던 사람에 속아 돈을 잃고, 신용도 잃고, 친구를 잃었다.
입맛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떡볶이에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떡볶이 마저 맛없게 만드는 맛없는 세상
나를 일으키는 나를 위한 떡볶이
남을 미워하며 남에게서 원인을 찾다 보니 내가 보이지 않았고, 나를 치유할 수 없었다.
모든 잘못은 나에게서 시작됐고, 나에 의해 커졌다.
나를 성찰했고, 나를 위로했고, 나를 응원했다.
남은 돈을 털어 할인 마트에서 최소의 필수 재료를 사고 나를 위해 끓인 원기 회복, 국물 떡볶이
과거와 정반대의 위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 그리고 떡볶이
체력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발로 뛰고 땀 흘리는 일을 찾아야 했고, 오토바이를 배워 배달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내는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의연했다.
형에게 늘 무시당하던 동생이 오히려 형을 응원하고 오토바이를 사줘서, 나는 미안했다.
떡볶이 배달해서 번 돈으로, 두 딸에게 배달 어플로 떡볶이를 시켜주었다.
꿈꾸는 미래의 한 조각, 떡볶이
여러 브랜드 주점과 식당을 운영하던 사촌동생이 가맹 사업 구상을 위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영상으로 포토샵을 배워 디자인을 하고, 시장분석을 위해 다양한 브랜드를 연구했지만 관건은 맛이었다.
업계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은 믿음직한 녀석들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메뉴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용한 새벽, 우리의 레시피로 만든 떡볶이로 방금 배를 채우고, 난 지금 글을 쓴다.